낼모레 쉰의 런던 출근기 11

2022년 8월 15일 - 18일 - 로마 3박 4일

by 진영순


두 번째 방문하는 로마


로마를 또 가게 될까 했었다. 안 가 본 도시들도 수두룩한데. 카라바조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자신의 그림들이, 후대 사람들이 로마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되리란 걸. 이번 여행의 목적은 카라바조와 판테온. 그리고 호텔 아닌 색다른 곳에 묵어보고 싶었다.



숙소 Santa Lucia Filippini (www.romacasaperferie.it)


승효상의 수도원 기행문 <묵상>을 통해 알게 된 www.monasterystays.com. 이 웹사이트를 통해 Santa Lucia Filippini를 예약하고 도착해 보니, 이곳은 예전에 수녀원으로 쓰였던 곳. 현재, 세 분의 수녀님이 관리하고 계시고 건물의 반 정도는 학생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고 나머지는 개조하여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이라 한다.


3성급 호텔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건물 안에 채플이 있고 중정이 있다. 17세기에 지어진 곳이니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도 있고, 수녀원 분위기를 내는 방 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미니 냉장고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침대가 다소 푹신해서 허리가 아팠고 모기에게 뜯기느라 잠을 설쳤다. 하지만 위치가 썩 괜찮다. 콜로세움과 판테온이 도보 거리 이내이다. 이번 3박 4일 동안 나는 세 차례 버스(1.5유로 x 3)를 제외하고는 모두 걸어 다녔다.



Caravaggio (무료입장)


카라바조(1571-1610)는 이탈리아를 포함하여 미국 및 러시아 등에 산재되어 있는 90점 정도 되는 그림들 외에는 관련된 문서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 기록이 17건이 남아 있고 그중에 하나는 1606년도의 살인. 그리고 그 이후로 도망자의 삶을 살다가 자객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만 39년이 못 되는 생을 마친다.


그림들도 끔찍한 순간을 포착한 그림들이 많다.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메두사, 적장의 목을 베는 유디트(Judith),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목 댕강 한 골리앗의 얼굴은 자화상이다. 그림의 대부분이 신화와 성경 속 장면들인데, 성자들의 모델을 길거리에서 캐스팅한다. 홈리스나 매춘부. 성모 마리아를 보러 간 당시 사람들은 동네에서 유명한 성종사업자 레나의 얼굴을 보고 질색하고 교회는 그림을 거절한다. 표정이 생생한 얼굴들이 빛과 어둠 속에서 말을 걸고 있는 듯하다.


이들 교회(basilica 또는 chiesa)에 가면 카라바조의 그림을 무료로 볼 수 있다. San Luigi del Francesi(3점), Sant'Agostino(1점), Santa Maria del Popolo(2점). 무료입장이 가능하지만 1유로 동전을 넣어야 2분 정도 불이 들어와 그림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교회 안 이들 그림 앞에는 대개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누군가는 기꺼이 동전을 투척, 덕분에 한참 동안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점심 녘부터 4시까지 문을 닫는 곳도 있으니 시간을 확인하고 가야 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그림은 첫 번째 교회 안 매튜 채플 왼쪽에 걸려 있는 그림. 예수가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가 될 매튜를 부르는 장면. 그림 오른편에서 예수가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이 마치 '자네'하고 부르는 거 같다. 세금 징수원이었던 매튜(마태복음의 저자)는 '저 말입니까?'라고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여전히 테이블 위 동전에 가 있다. 그림 상단에서는 나무틀 창문이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빛을 뿌리는데, 채플의 중앙 제단 위쪽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과 이어지면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Caravaggio (유료 입장)


이들 미술관(Galleria)은 표를 사야 들어갈 수 있다. Doria Pamphili(15유로), Palazzo Barberini(12유로), Borghese(15유로). 지금은 미술관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있지만 이 건물들은 모두 17세기 교황 내지는 추기경들이 짓고 그들의 이름(family name)을 딴 대저택들이다. 당시 대개는 추기경(cardinal)의 직함을 가진 조카들이 막강한 교황 삼촌을 등에 업고 비서실장처럼 또는 측근으로 그림이나 조각들을 수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리아 팜필리에 4점, 바베리니에 3점, 보르게제에 6점의 카라바조가 있다. 보르게제의 주요 전시품은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조각상들이지만, 카라바조나 라파엘로 등의 그림들도 중요 작품들이다. 애석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다윗과 골리앗 그림은 밀라노로 출장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전날 오전에 도리아 팜필리와 두 개의 교회를 들른 후, 포폴로 광장(piazza) 한편에 있는 산타 마리아 교회는 4시에나 문을 다시 열어 시간이 비었다. 밖은 팔월 땡볕이고. 그래서 들어가게 된, 교회 바로 옆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15유로). 다빈치의 여러 빛나는 업적들을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는 곳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최후의 만찬 설명에 꽂혔다.


예수와 열두 제자가 일렬로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긴 테이블에는 초라한 음식들이 보인다.


"너희들 중에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 (One of you will betray me)."


열두 제자들은 놀라고 슬픈 얼굴로 술렁인다. 그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그림 정중앙에서 일어날 일을 조용히 알리는 예수. 그 말이 파장이 되어 표정과 몸짓이 시끄러운 제자들. 그 대비가 성큼 한눈에 들어왔다. 감정의 일렁임,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구현하기 위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심과 관찰에 대해서 알게 된 하루였다.


벽화는 밀라노에서 2019년도에 봤지만 로마에서 다시 설명을 들으니 좋았다. 시간을 때우고 열을 식히기 위해 들어갔을 뿐인데 뜻밖의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번에 묵는 숙소 안 채플에도 최후의 만찬 그림이 있다. 그 당시 흔한 주제 중 하나였던지 여기저기에서 여러 버전의 최후의 만찬을 볼 수 있어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Pantheon


대략 2천 년 전에 지어진, 천장에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신들의 집 판테온. 입장은 무료이지만, 8.5 유로의 오디오 가이드가 매우 훌륭하다. 전날 저녁과 다음 날 아침 두 번을 갔다. 건물 내부의 지름이 43.3미터. 그 위에 지름 9 미터짜리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으로 빛이 들어와 건물 내부를 두루 비추고 수런수런 사람들의 소음들을 감싸 준다. 여긴, 여름 아닌 다른 계절에 와글와글 비 오는 날 다시 와보고 싶다. 빗방울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또는 떨어져 내리는지 보고 싶다. 유현준 교수 및 여러 유튜브 짤 설명들도 도움이 된다. 라파엘로가 여기 묻혀 있다.



Crodino


이탈리아 친구들이 알려준 파스타 (Pasta cacio e pepe: 가치오 치즈와 후추 파스타) 등 이것저것을 먹었지만 제일 맛있었던 건 숙소 근처 식당에서 두 번이나 먹었던 6유로짜리 커다란 수박 조각. COOP 슈퍼에 가면 내 머리통 만한 수박이 4유로 안팎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득템은 Crodino라는 10cl짜리 작은 병의 무알콜 음료. 식당에서 오렌지 한 조각이랑 얼음과 함께 서빙하는데 5유로. 숙소 근처 코압(COOP)에서 모양 재밌는 건조 파스타를 사 와 런던에 돌아오자마자 시도한 요리는 Baked Beans로 손쉽게 만드는 Pasta Soup. 마땅한 유튜브 레시피를 못 찾아 대충 만들어 보았는데 먹을 만하다.


로마에 또 가게 될까? 다음번에는 어떤 이유로 가게 될까? 나의 여름휴가가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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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Crodino 무알콜 음료 (중간) Santa Lucia Filippino 숙소 안 중정의 한 쪽 벽면 (우)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넣지 않았건만 또 찾게 된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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