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 쉰의 런던 출근기 10

2022년 6월 16일 목요일 - 더블 베이비 샤워

by 진영순


팀에서 두 명이 곧 출산 휴가에 들어간다.



카드 쓰기


서른 명이 넘는 우리 팀은 대부분 20-30대 여성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에 대한 소식을 나누게 된다. 생일을 포함한 이런 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여기에선 축하 카드를 쓴다. 누군가 카드를 준비해 와 돌리면, 축하 메시지와 함께 이름을 남기는 것. 팀원이 서른 명이 넘으니, 생일 카드만 한 해에 서른몇 번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과 출산을 축하하는, 그리고 퇴직과 이직을 아쉬워하고 새로운 성공을 기원하는 카드들을 쓴다. 9년 여 있으면서 내가 사인한 카드가 얼마나 될까? 셀 수도 없이 많다. 우리 팀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 카드들도 더러 오므로, 어떨 땐 몇 개의 카드가 동시에 돌기도 한다. 너무너무 바쁠 때, 이런 카드들과 돈 걷는 봉투들이 오면 순간 멍해지면서 이번엔 뭘 써야 하나, 매번 똑같은 메시지 쓰기도 식상해 색다른 축하 멘트를 찾아 구글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첫 번째 베이비 샤워


첫 번째 베이비 샤워는 2019년 여름에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당시, 이탈리아인 동료 A가 출산 휴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그전에 축하 카드가 돌고, 선물을 주려고 십시일반 현금도 얼마 거둔 상태였다. 대개 이런 조촐한 팀 내 행사는 퇴근 시간 대략 1시간 전에 시작해서, 샴페인 및 케이크와 함께 퇴근 때까지 돌아가며 수다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된다. 긴 출산휴가를 앞두고 1층 회의실에서 팀장과 인수인계 마무리 미팅을 하는 사이, 우리는 2층 사무실에서 풍선도 불고 음료 및 비스킷도 준비해 두었다. 미팅을 마치고 2층 자리로 돌아오던 A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서프라이즈였을 것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임산부에게는 주스를 따라주고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임산부가 맞추어야 할 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에, 깜짝 퀴즈 이벤트를 하자며, 영국인 AB가 팀원들더러 아기 때 사진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이 아기가 우리 팀원 가운데 누구인지 맞춰야 하는 것. 아이디어를 낸 AB가 사진 파일을 모두 모아 사진관에 가서 인화를 해왔다. 한쪽 벽에 아기 사진들이 주렁주렁 걸려있고 A는 팀원들 얼굴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아기 이름을 맞춰 나갔다. 아울러, 그 뒤에 둘러 서 있던 우리들도 아기 사진들을 보며 저마다 품평이다. 너무 귀엽다, 웃기다, 튼실하다, 여자애 맞냐, 뭐 그런. 팀원들의 아기 적 사진을 보는 것 자체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내 백일기념사진은 가장 알아맞히기 쉬운 아기였다. 단박에 아시아인 아기였으니.



두 번째 베이비 샤워


팬데믹 동안은 이런 행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봄 볼로냐 도서전 전에 영국인 AB의 깜짝 베이비 샤워가 어린이팀 팀장 V의 주도로 열렸다. 아직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인 때였으므로, 산모 보호 차원에서, 행사 참여자는 모두 그 전날 밤이나 당일 아침 코비드 자가 테스트를 하고 참여해 달라는 팀장의 사전 당부가 있었다. 산모는 얼마 전 코로나에 걸린 후 회복한 상태이긴 했지만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필요할 터였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예상치도 못했던 베이비 샤워에 AB는 얼굴이 발그레 기쁜 미소가 한가득이다.


이번에도 게임이 빠질 리 없다. V는 팀원들이 태어난 나라와 도시 이름을 사전에 수집했다. 베이비 샤워가 열린 3층 회의실에는 커다란 지도가 걸려 있었다. 팀원들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AB가 각 팀원의 이름을 압정에 꽂아 지도에 표시하면 된다. 이번에도 제일 쉬운 사람은 나. 내가 제천에서 태어난 걸 굳이 몰라도 한국 태생은 나 혼자이니 압정이 한반도를 제일 먼저 공략했다. 나는 쉽지만, 태어난 곳이 제법 어려운 동료들이 많다. 현재 가족들은 모두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지만 벨기에에서 태어난 M 등, 유럽 내에서 이래저래 이주한 동료들도 많고, 프랑스 동료들은 대여섯 명이나 되기 때문에 누가 파리에서 태어났는지, 알프스 밑자락에서 태어났는지, 어지간히 서로에 대해서 시시콜콜히 알지 않고서야 도시까지 맞추기는 쉽지 않다.


또한 V는 AB의 베이비 샤워를 위해 각각의 팀원들에게 세 가지를 더 수집했다. 출산일과 아들 이름 알아맞추기 그리고 각자의 부모님한테 여쭤보고 육아 팁 하나씩 제공하기. V는 이를 모두 모아서 조그만 소책자로 꾸몄다. 팀원 가운데에는 출산일을 맞춘 사람도 있고, 이름은 나중에 프레드릭으로 지어졌는데 역시 이 이름도 누군가가 적어낸 예상 명단에 있었다. 여긴 같은 이름이 돌고 도니 말이다.



C와 S의 더블 베이비 샤워


그리고 6월 중순의 어느 목요일 4시, 우리는 또 다른 둘의 베이비 샤워를 한 날 가졌다. 이번에는 성인팀 E가 준비했다. 핀란드인 S가 둘째 딸을 곧 출산할 예정이라 집에서 온라인으로 행사에 참여했고, 인도인과 결혼한 프랑스인 C는 사무실로 출근한 상태였다. 인도에서 시부모님들이 몇 달 와 계실 예정이기도 하고 첫아기라 예정일이 아직 한두 달 남았지만 미리 출산 휴가를 쓰는 경우였다. 딸인지 아들인지 알고는 있으나 서프라이즈로 남겨둘 거라며 아직 비밀이라고 했다.


우리는 3층 회의실을 조촐한 파티를 위한 공간으로 꾸몄고, 샴페인과 주스 그리고 케이크를 준비했다. 이번에도 게임이 행사의 하이라이트. 이번에도 또, 팀원들의 아기 적 사진 맞추기였는데, 2019년 여름 이후로 사람들이 반 이상 바뀐 터라 사진 보는 느낌이 새로웠다. 사진을 안 낸 동료들도 있어 한 스무 개 남짓한 사진 가운데 내가 맞출 수 있는 사진은 한 두어 개 되려나? 아직 아기 적 얼굴이 남아 있는 20대 동료들도 있으나 흑백 사진을 낸 40대 동료들도 있었고, 꽤 난이도 높은 게임이라 S는 두 명 밖에 못 맞추었다. 그 두 명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


E는 두 번째 게임도 준비해 왔는데, 엄마 이름과 그 자녀들 이름 맞추기. 자녀들 이름을 자녀들 순서대로 맞추면 보너스 점수가 있다. 이를 테면, 설명글을 보고 안젤리나 졸리임을 맞추고, 그 여섯 자녀들의 이름을 맞춰야 하는 것. C와 S는 자녀 이름들까지는 못 맞추었지만, 우리 동료 중에는 그 여섯 자녀 이름까지 순서대로 기억하는, 연예계 소식에 빠삭한 내지는 한 번 들으면 그냥 외워지는 어마 무시한 기억력의 20대들이 있다. 새삼 무섭고 부럽다. 한 열 개쯤 되는 문제는 나한테 꽤 어려웠지만 기억에 남는 이름 가운데에는 미셸 오바마, 다이애나 공주, 소설 작은 아씨들 등이 며칠 지난 내 기억 속에 있다.



맺으며


이런 게임을 하다 보면, 실제의 또는 소설 속의 어머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각자의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길렀는지 육아 팁에 대해서도 대화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즐거운 사내 행사를 위해 발가벗은 전라의 아기 적 사진을 기꺼이 공유해 준 팀원이 둘이나 되었는데, 키득키득, 사랑스럽다. 우리 팀에 이제는 남자 직원도 한 명 들어왔는데, 감히 사진들을 가까이에서 볼 생각은 안 하는 거 같다. 이번에는 수금도 꽤 된 모양이다. 각각 180 파운드 짜리 바우처를 축하 카드 외에 선물로 받았다. 내가 그동안 이런 행사 때마다 헌금한 게 한두 푼이 아니다. 내 인생에 베이비 샤워 같은 행사는 있을 리 만무하고, 이직을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낼모레 쉰의 런던 출근기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