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사랑했으나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잘 해보려 노력할수록 더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 그와의
관계는 언제나 기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친구일 뿐 연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자극적이다. 두 아이의 아빠가 이런 고백을 하다니. 광심끌기도 적당해야지, 도가 지나치면 가정에 위협이
된다. ‘그’는 운동이다.
앞선 글에서 말한 것처럼 운동신경은 모두 형에게 보낸 유전의 장난으로 운동과 가깝지 않은 삶을 살았다. 중고등학교 때 남들 다 하는 축구 정도는 했고, 직장에서 동료들과 배드민턴을 즐기기도 했지만, 특출나지 않았다. 남자들 사이에서 운동 잘 하면 그만큼 학교생활, 사회생활 편하게 해주는게 없는데 내 삶에는 없는 얘기였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건 교환학생 때였다. 우리와 미국의 학기 운영 차이 때문에 3개월 가까운 긴 여름방학을 미국에서 보낼 방도를 찾아야 했다. 잠시 귀국할까 했던 생각은 기왕 간 김에 뽕을 뽑아야 한다는 엄마의 강경한 입장에 바로 기각. 학생비자여서 취업도 못 하고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마음만 있으면 할 수는 있었다. 젊음과 패기는 비례하지 않았다.) 다운타운 구경 나가는 것도 한두 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는 와중에 달리기를 했다. 거창한 운동복도 없이 캠퍼스 근처를 달렸던게 지금까지 왔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달렸다면 너무 인간미가 떨어진다. 달리던 때도, 달리지 않던 때도, 달리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취미를 묻고 답할 때 취미를 묻고 답하지 않는다. 취미를 묻고 답하지만 사실 전제되는 건 취미 이상의 실력이다. 참 부담스럽다. 그림을 취미로 그리지만 못 그릴 수도 있고 배드민턴을 좋아하지만 셔틀콕을 잘 못 맞출수도 있는데 그게 우리나라에서 묻고 답하는 취미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처럼 다들 산책이나 음악감상을 말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이제 나는 달리기를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린다고 말할 수 있고, 달리기와 관련된 숫자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축구나 농구처럼 내게 사랑을 되돌려주지 않은 구기종목 말고도 내가 즐겨 하는 운동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
여러 운동과 다른 달리기만의 특색을 말하자면, 달리기는 마치 책 읽는 것 같다. 축구나 농구는 액션 영화 한편을 보는 기분이라면, 달리기는 감정의 진폭이 적고 점진적이라는 점이 사랑할 만하다. 처음 1-2km는 숨이 고르지 않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후 호흡이 안정되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목표한 거리의 말미에 이르면 어느새 가빠진 숨이 느껴지고 내 나름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는 즐거움이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달리기는 거의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서 그 도시를 즐기고 기억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그 도시에서 달려보는 것이다. 달리기 관련 어플을 켜고 달리면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도 그 거리와 기억을 추억할 수 있다.
누군가 예전에 축구를 두고 공 하나만 있으면 되고 둥그런 공이 상징하듯 평등한 스포츠라고 했는데, 달리기는 공이 없어도 된다. 요즘 러닝 열풍은 마치 좋은 러닝화와 옷이 필수인 것처럼 사람들을 몰아세우지만, 원래 달리기는 그런게 아니었고, 그저 편한 신발과 옷만 있으면 된다. 숨쉬기와 걷기 다음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운동이랄까.
같은 이유로 러닝이라는 이름을 부정한다. 러닝이 곧 달리기인데, 달리기라는 친근하고 문턱 낮은 이름을 굳이 쓰지 않는 이유가 뭘까? 영어로 지칭하면 더 있어보이기 때문일까? 영미권 사람들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내 친구 달리기가 영어이름 때문에 본질보다 더 있어보이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취미가 나를 설명한다면, 나는 러닝이 아니라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