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by 마음은런더너

헤겔의 변증법, 정반합의 개념은 인류가 이뤄온 진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인류의 진보. 국뽕이 아니라 인류뽕을 고양시키는 표현이다. 배경에 우주선이 날아가고 반도체 사진이 지나갈 것만 같다. 그렇게 초중고 12년을 배웠다. 과학은 위대한 발견을, 역사는 위인을, 사회는 민주주의를, 문학은 언어로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아름다운 일을 보여준다. 마치 인류에게 퇴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그러나 진보는 당연하지 않다. 특히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격적인 면, 정신적인 면에서의 진보는 우상향과 거리가 멀다.

간단한 예시를 육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육아는 템빨이라고, 전동 바운서, 분유포트, 열탕기, 건조기 등등 여러 이모님들이 노동의 짐을 덜어준다. 기술은 잘 계승되었다. 그러나 인격은 그렇지 않다. 지치지도 않고 같은 장난을 수십번 수백번 하는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부모는 지쳐서 인격과 감정의 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을 했다. “내 부모님은 나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난 왜 이러지.“

인격이 물려주고 계승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현대에 전쟁은 없었어야 한다. 인격은, 그러니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문제는 개개인의 싸움이다. 부모가 재산 물려주듯 할 수 없다는 것을 구약성경 속 사무엘(자녀들이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지 못하고 타락)과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그의 아버지가 가정폭력 행사)의 인생이 잘 말해준다. 어떻게 그런 부모에게서 그런 자식이 나오냐고 묻는다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주인공은 평생 자기 친자인 줄 알고 키워온 어린 아들이 생물학적 자식이 아니었음을 깨닫고는 그간 아들이 자기 눈에 차지 않았던 이유를 발견한 양 군다. 뒤늦게 아들의 소중함과 자기 잘못을 깨닫고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아들을 쫓아가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데, 아들은 아버지보다 위에서 앞만 보고 걷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자기 잘못을 고백하는데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부자가 걷는다. 그 길이 한 길로 모이면서 부자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데, 관계 회복을 길로 시각적으로 묘사한 점이 인상 깊었다.

인격성장에 있어서 세대를 이어가는 우상향은 없다. 노력해야 한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인격은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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