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혐오가 큰 편이다. 정직을 타고난 투명한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 해서 계산적인 자아를 억누르기 바쁘다. 타인의 잘못을 참아줄 줄 몰라서 관계에 인색하다. 부모님이 운동신경은 모두 형에게만 물려주셨는지 구기종목에도 딱히 재능이 없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낮아 스스로를 사랑하기 어렵다.
나를 돌아보게 된 건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입시와 취업에서 자유로워지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할 여유가 생겼는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조금씩 수용하고 인정하게 된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 고쳐 쓰는거 아니라는 말이 나에게 꼭 맞아서, 내 못난 모습을 바꾸는 것보다 인정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매끄러웠다.
나와 어느 정도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무렵 아이가 태어났다. 육아는 그 합의를 무참히 깨부쉈다. 아이의 성향을 고치려 드는게 좋지 않은 양육법이라고 하는데, 아이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어느새 아이를 고치려 하고 있었다.
건강하게만 커달라는 거짓말이 들통나는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내가 미워하는 내 모습이 네게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빠처럼 가지런한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를, 아빠와 달리 사람과 잘 어울리기를, 고집 굽히는 방법을 일찍 배우기를 바란다. 서글서글하고 유연해서 사람 관계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기를, 아빠의 삶보다 정서적으로 더 여유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또한 부모 욕심이다.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제 성향을 수용하고 극복해 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내가 지나온 길이라고 해서 같은 길을 따라오게 하면 결국 그 결과는 지금의 나니까, 더 나은 길을 스스로 찾도록 도와야 한다.
윤종신의 “사라진 소녀”라는 곡은 딸이 엄마에게 독립을 선언하는 내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곡이다. 딸은 “그늘진 낯선 골목도, 외로운 밤도 혼자 걸어”보겠다고 한다. 제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건강하게만 커다오”와 같은 거짓말로는 아이를 멋있게 독립시킬 준비를 할 수 없다. 아이에게서 발견되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연민과 사랑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지만 결국 나와 화해하는 것이다. 아이가 독립할 때 나는 아이와 나 두 사람을 지금보다 더 사랑하고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