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어쩌다 눌러앉은 런던이지만 영국, 런던은 나의 첫 유럽이었다. 어릴 때 닳도록 읽은 셜록 전집도 한몫했겠고 뒤늦게 입학해 칼졸업을 위해 죽어라 휴학 없이 지방대를 졸업한 27살 나에게 이제 취업을 언제 하냐고 닦달하던 사회도 한국을 떠나는데 그 당시 큰 한몫을 했다.
아빠는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말없는 경상도 남자에 매우 보수적이셨기에 내가 학교 졸업했으니 좋은 직장 찾아서 얼른 시집이나 갔으면 하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았지만 딸내미가 영국의 유명한 대학에 합격해서 그 자랑을 남들에게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마지못해 허락하리라는 것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반면 엄마는 항상 나에게 굳이 한국에서 취직하고 결혼할 필요 없다며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대부분 지지하는 당신의 세대 치고는 꽤 개방적인 분이시다. 하지만 내가 매우 예민하고 유별나게 어려운 애라고 항상 말하던 분이었다. 그러니 뭐 별 수 있나, 예민하고 유별나지만 욕심이 많아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눈에 띄던 나는 여길 떠나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몰래 대학원을 준비했다. 유학원도 알아보았지만 어마어마한 그 비용을 낼 돈도 없었거니와 가족들 몰래 하는 대학원 준비이고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데 대놓고 광고를 할 수도 없었기에 별 선택권 없이 나는 모든 걸 혼자서 검색하고 준비했다.
우선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계랭킹에 드는 학교여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무식하게 세계 디자인 학교 랭킹 top 100을 뽑아 놓고 내가 가고 싶은 코스들이 있는 학교들만 뽑아서 정리했다. 그러니 한 열댓 학교로 추려졌는데 이게 또 나라마다 지원방법도, 요구하는 지원서류와 시험들도 너무 다른 게 아닌가. 모든 종류의 지원서류를 다 준비하고 모든 종류의 영어시험들을 다 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라도 줄여야 했다. 여기서 나의 개인 취향이 녹아들지 않았을까. 지금은 정확히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셜록의 나라, 영국을 선택했다. 그 뒤 아이엘츠, 추천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도 한 3-4달 만에 준비해서 영국의 디자인 대학 몇 군데에 5월 즈음에야 겨우 지원을 완료했다. 후회는 없었지만 기대도 없었다. 8월부터 선착순으로 지원을 받기 시작해 6월이면 아예 정식 마감을 하고 그전에 선착순으로 자리가 다 차면 충분히 더 빨리 마감이 될 수도 있었기에 5월에 지원한 나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려 세계 랭킹에 드는 저명한 학교에만 지원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영국의 브렉시트 확정 발표로 온 세계가 시끄러웠던 6월 말, 나는 런던 예술대학으로부터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