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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디 Oct 26. 2022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내기 4

런던예술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20년 넘게 해오던 대로 '정답'만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치느라 방향을 전혀 못 잡고 있던 나에게 다행이게도 느긋이 기다려주고 적절한 때에 따뜻한 질문을 던져준 튜터가 있었다.


석사 수업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튜터와 만나 그룹으로 자신이 그동안 해온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 형식이었다. 그는 나의 첫 번째 학기의 담당 튜터였고 그도 학교에 와서 시작한 첫 학기였다. 처음에 나에게 그는 정말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루에 몇 마디 할까 말까 한 알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그가 조금 무서웠다. 그가 어떤 사람과는 전혀 관계없이 내가 그를 이해 못 하고 대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두려움에 빠뜨렸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는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에 무채색 옷을 입고 양말 위에 검정 샌들을 신는 그런 쿨 cool한(?) 사람인 것을.


하지만 난 꽤 오랫동안 방황했고 뭘 해야 하는지 몰라 전날 밤 밤을 새워서 닥치는 대로 해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완성? 한 작업을 들고 발표를 하면 나의 튜터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안 하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내게 꼭 하곤 했다. "이걸 왜 골랐니?" "왜 이걸 했니?" 처음에 나는 내가 뭘 잘못해서 비꼬아서 묻는 건데 내가 눈치가 없어서 못 알아듣고 있는 걸까 의심했다.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을 하다 보면 저절로 깨달았다. 나는 이것을 고른 이유가 없고 나조차도 이걸 왜 했는지 몰랐다. 그냥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이게 정답인 것 같아서 해본 것이다.


세계 최고 디자인 대학 중 하나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석사를 했다고 하면 다들 내가 엄청난 스킬이나 능력을 갈고닦았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실은 난 그것보다 훨씬 엄청난 발견을 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왜 원하는지, 무슨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정말 바보 중에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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