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라는 이름으로 부끄러웠던 하루

비용을 아끼려고 바둥거렸던 내가 결국 지키기로 한 것

by 외로우니까대표다



지난 해 말부터 본부장에게서 회사 막내 직원의 노트북이 자꾸 말썽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대표인 나는 새 노트북을 바로 사주기보다는, 퇴사한 실장님의 노트북을 직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문제 있는 컴퓨터는 아니니, 일단 이걸로 써보세요.”

며칠이 지나도 그 노트북을 쓰지 않길래 이유를 물었다.

“왜 제가 드린 노트북은 안 쓰나요?”

업무가 너무 바빠서 노트북을 옮길 시간이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속으로는 ‘아직 그렇게 급하지는 않나 보다’ 싶었다. 시간 나면 바꾸겠지 싶어, 그날은 그냥 웃고 넘어갔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본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팀장 노트북이 고장이 나 AS센터에 갔는데, 수리비가 60만원이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전날 교육 결과보고서를 150장이나 작성했다고 했으니, 혹시 업무중에 노트북이 과부하가 걸린 건 아닐까?
그렇다면 회사가 부담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물었더니, 퇴근길에 노트북 가방에 생수병을 급히 넣다 뚜껑이 덜 잠겨 물이 쏟아졌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아, 그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 업무 중 사고라기보다는 개인 과실에 가까웠다.

나는 본부장의 생각을 먼저 물었다.
본부장은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노트북이니 회사가 부담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역시 온전히 맞는 말은 아니었다. 해당 노트북은 회사가 공식적으로 지급한 장비도 아니었고, 퇴사 시 개인 소유로 가져가는 노트북이었다.

그래서 회사가 수리비를 전액 부담하는 건 어렵겠다는 뜻을 전했다.본부장도 내 판단을 이해했고, 다행히 팀장 역시 회사에 전액 지원을 요청한 상황은 아니어서 그날은 일단 더 조치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도 제대로 된 업무용 노트북 하나 지급하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직 쓸 만하다며, 10년은 훌쩍 넘은 노트북을 막내 직원에게 건넸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 순간, 솔직히 좀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참에 직원들 노트북을 전부 새 것으로 바꾸자고 결심했다.

본부장에게 S사 노트북 사양과 가격을 알아보라고 했더니, 요즘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서 노트북 값도 만만치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날 우연히 이마트 일렉트로닉스 매장을 지나며 진열된 S사 노트북을 보는데, 사양도 괜찮고 가격도 생각보다 합리적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노트북 네 대를 결제하고 말았다.

창립 이후, 직원들 업무용 노트북을 그것도 S사 제품으로 한꺼번에 교체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작년 영업 성적표를 보며 “돈 더 벌자”, “고정비 아끼자”라고 말해놓고 정반대의 결정을 한 대표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일하는 환경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고. . . 그래야 더 크게 보고,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오늘, 직원들에게 새 노트북을 건넸다. 다들 깜짝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기뻐했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 마음이 직원들에게도 전해졌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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