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을 둘러싼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배운 것
지난해 10월 말 이후, 꼬박 석 달 만에 브런치 앱을 다시 열었다.
핑계를 대자면 그 즈음부터 강의와 상담 일정이 줄줄이 잡혔고, 지난 3개월은 대표라기보다는 강사이자 컨설턴트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0여 개 대학, 750명이 넘는 학생들을 만나 강의를 하다 보니 회사 대표로서의 ‘모먼트’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났다. 팀원들의 목표를 점검하고, 성과를 관리하고, 대표로서 돈을 벌어오는 역할 말이다.
물론 내가 하는 강의와 컨설팅이 회사 원가를 줄이는 데 분명 도움이 되긴 하지만 눈에 띄는 ‘대표의 성과’라고 말하긴 애매한 영역이다. 괜히 팀원들 앞에서 면이 서지 않는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2026년이 시작됐다.
1월, 과장에서 팀장으로 승진한 팀원이 있다. 연차로 치면 올해 1월 2일을 지나며 8년 차가 됐다.
우리 회사는 직원 수가 많지 않아 입사 월을 기준으로 연봉 협상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다만 이 제도도 올해까지만 유지하고, 내년부터는 전 직원이 1월에 함께 연봉 협상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급여일은 매달 26일. 그래서 늦어도 15일 전에는 개인 평가, 상급자 평가, 연봉 협상을 모두 마쳐야 한다. 연봉 수락서를 받고, 세무사 사무실로 급여 대장을 넘기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사실 꽤 타이트하다. 이번 건은… 솔직히 조금 늦었다. 여러 사정이 겹쳐 임박해서 진행하게 됐다.
절차대로 연봉 수락서를 보내고 응답을 기다리던 중, 마감이 거의 다 되어서야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연봉을 수락하겠다는 메일이 아니라 ‘연봉 산정 기준이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텍스트였지만, 메일 전반에 흐르는 무례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 메일을 지인들과 저녁 약속이 있던 자리에서 열어봤다. 대충 훑어본 순간,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이런 식이네.’ 그렇게 메일을 덮었다.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 다시 한 번 메일을 찬찬히 읽었다.
그때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 이 친구는 정말 연봉 산정 기준이 궁금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내일 출근해서 차분하게, 친절하게 답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나는 챗GPT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우리 회사의 연봉 산정 기준과 대표로서의 생각이 잘 드러나게, 메일 초안을 써줘.”
정말, AI는 대단했다. 내 머릿속에 있던 생각과 의도를 놀랄 만큼 정제된 문장으로 꺼내놓았다.
연봉산정기준은 다른 팀원들도 궁금해할 내용일수도 있어 조만간 전사 메일로 공유하겠다는 말과 함께 메일을 보냈다. 반나절 정도가 지나 회사가 제시한 연봉을 수락한다는, 올해 팀장으로서 더 책임 있게 역할을 해보겠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이 과정을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대표 14년 차가 되어서야 조금은 성숙해지고, 조금은 의식 있는 대표가 되어가는 걸까?
사실 이런 메일을 받으면 많은 대표들은 바로 ‘뚜껑이 열린다’. “중소기업에 무슨 연봉 산정 기준이냐”
“저 친구 안 되겠네” 이런 말들이 쉽게 나온다.
그러니 대표와 직원 사이가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오래동안 알고 지낸 대표님께 털어놓았더니, 처음엔 여느 대표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더니
끝까지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대처를 정말 현명하게 했네요. 김 대표님 같은 자세로 팀원들을 대하는 대표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듣고 괜히 마음이 오래 남았다.
아마도 나는 아직 완성된 대표는 아니고, 그저 조금씩 ‘진짜 대표’가 되어가는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