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휘둘리지 않되, 숫자에서 눈 돌리지 않기
근 한 달 만에 브런치 연재글을 쓴다.
매주 금요일마다 연재하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해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머릿속에서는 '이번 주는 꼭 써야지'라는 다짐이 수십 번 오갔지만, 손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엇을 쓸지 떠오르지 않아서라기보다, 쓰고 싶은 마음이 자꾸 미뤄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요즘 나의 마음이 조금 지쳐 있었던 탓이었던 걸까? 아님 너무 달리기에 빠져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었던 걸까?
올 10월은 여느해와는 좀 다르게 일이 느슨한 달이었다.
긴 추석 연휴에 대학들의 중간고사까지 겹치면서, 실제로 일할 수 있는 날이 고작 열일곱 날 남짓이었다.
캘린더를 보며 ‘이번 달은 그냥 이렇게 지나가겠구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쉰 것도 아니다.
자격과정을 듣기도 하고, 또 직접 강의를 하기도 했고, 그 사이사이에 새로운 콘텐츠를 구상하고 정리했다.
일은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허전했다.
그리고 오늘, 급여일.
팀원들이 “벌써 급여일이에요?” 하며 놀랬지만, 사실 나에겐 며칠 전부터 마음의 무게가 쌓여 있었다.
급여일은 늘 대표에게 ‘책임의 날’이다.
이번 달은 3분기 부가세 납부까지 겹쳐서, 자금 사정을 더 꼼꼼히 들여다봐야 했다.
지난달에는 예기치 않게 대출 상환이 발생해 숨이 좀 막혔고, 결국 회사 명의로 들어둔 보험 하나를 해지하기로 했다. 해지환급금이 들어오자 일시적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며칠 전, 습관처럼 홈택스에 들어가 매출 세금계산서 발급 내역을 확인했다.
그런데 눈을 의심했다. 매출 세금계산서가 단 한 건도 없었다.
13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중순이 지나도록 매출 계산서가 ‘0’인 달은 처음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뿔사, 나는 지금까지 뭐한 거지?'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부랴부랴 본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번 달에 앞으로 계산서 발행될 곳이 있나요?”
잠시 후 돌아온 답장은
“거의 대부분이 11월로 넘어갈 것 같아요.”
그럼 이번 달은 정말 0원이라는 뜻이었다.
다음 날, 박 과장이 두 건의 계산서 발급 요청 메일이 들어왔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다행이다'라는 말이 속으로 새어나왔다.
고작 두 건이지만, 그 두 건이 나에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그날 오후, 나는 지난 5년간의 매출을 엑셀로 꺼내어 막대그래프로 정리해봤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의 매출 추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직원 수는 늘 4명 안팎으로 비슷했지만, 고정비는 매년 올라갔고, 특히 급여는 매년 상승했다.
순이익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매출 역시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상승세였다가 그 이후로는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차트를 보고 있자니, 이건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내 지난 시간의 흐름, 그리고 회사의 영업성적표였다.
그동안 이런 분석조차 하지 않고 ‘감’으로만 버텨왔다는 게 부끄러웠다.
나는 정말 대표가 맞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아침 러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요즘사 팟캐스트에서 오니스트의 김재현 대표 인터뷰를 들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직원이 30명, 매출이 100억이라니.
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생각.
'나는 사업을 13년이나 했는데, 매출이 이 정도밖에 아니라니, 혹시 난 너무 무책임한 대표는 아닐까?'
물론 머리로는 안다. 사업의 종류도, 시장의 크기도, 대표의 철학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비교가 의미 없다는 것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대표의 숫자를 듣는 순간, 내 안의 자신감은 한순간에 작아진다.
누군가는 매출 100억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직원이 50명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저 “그래도 나는 잘 버티고 있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작게 쪼그라든다.
이런 때면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진짜 대표가 맞는걸까?'
외로우니까 대표다 TV, 브런치, 블로그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것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직원들은 이런 대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오늘은 챗GPT를 켰다.
회사 매출 데이터를 넣고 지난 5년간의 흐름을 함께 들여다봤다.
그리고 “5년간의 매출분석과 2026년 재무적 관점에서 방향을 제시해줘”라고 물었다.
의외로 AI가 제시한 아이디어 몇 가지는 현실적이었고, 당장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제 올해도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무슨 일을 벌인들, 올해의 매출이 급격히 나아질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려 한다.
숫자에 휘둘리지 않되, 숫자에서 눈 돌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10월의 마지막 주,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2026년, 만족스러운 영업성적표를 받기 위해서 지금부터 나는 대표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조만간 답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13년 차 대표의 10월, 숫자 앞에서 작아진 마음을 이렇게나마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