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니 채워졌다

생각이 쏟아진 새벽에 찾아온 선물

by 외로우니까대표다

지난 목요일은 우리 회사 이본부장과 박과장, 그리고 저. 셋이서 처음으로 술자리를 가졌어요.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제안은 제가 했습니다. 상반기 매출은 나쁘지 않았지만, 하반기 매출이 걱정이라 마음을 모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업무를 조금 일찍 마치고, 5시쯤 미리 예약해둔 회사 근처 와인바로 향했어요. 와인이 한두 잔 들어가니 기분도 풀리고 취기도 오르더군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본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대표님, 책 한 권 내셨으면 좋겠어요."


옆에 있던 박과장도 거들며,

“대표님이 유명해지면 우리 회사도 좀 더 알려질 수 있잖아요.”

라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는데,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솔직히 놀라웠어요. 예전에도 한 직원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던 것 같아요.
책을 쓰면 정말 유명해질까요? 요즘은 유튜브 하고 책 내서 작가가 되는 게 하나의 성공 방정식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이 따라야 하는 걸까, 저로서는 여전히 고민이 됩니다.


그날 저는 두 사람에게 3년 후 어떤 모습으로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지 물어봤어요.

박과장은 “지역 비즈니스를 컨트롤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는데, 그 답변에 조금 놀랐습니다. 지역 비즈니스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니, 미처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본부장은 “Plan B, 즉 B2C 사업을 주도하고 있을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본부장의 대답은 술기운에 정확히 다 기억나지 않아 아쉬워요.

그렇게 셋이서 5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고, 와인 네 병을 비워냈습니다. 오랜만에 술이 거하게 취해서 집에 돌아왔고, 양치도 하지 못한 채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어요.


이튿날은 재택근무일이라 다행히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팠습니다. 몸을 일으키려 하면 와인이 울렁거려 구역질이 올라왔고, 결국 다 토해내고 나서야 진정이 됐어요. 오후에 두 시간 반을 깊이 자고 나니 조금은 정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일을 시작했지만, 늦은 밤까지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다음 날은 주말이었는데, 시댁 쪽 결혼식 일정이 있어 대전으로 가야 했어요. 그래서 일찍 자려고 12시가 넘어 침대에 누웠는데, 낮잠을 두어 시간 잔 탓인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동안 머릿속은 오히려 더 분주했어요. 수많은 생각이 들락날락하다가 아이디어가 번쩍 떠오르면 네이버 메모장에 적고, 또 잠을 청하다가 다시 떠올라 적고… 이런 과정을 새벽에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은 개운치 않았지만 마음은 달랐어요. 바로 실행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몇 가지 있었고, 직원들과 함께 나눠보고 싶은 이슈도 생겼거든요. 가슴이 벅차오르고, 열정이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난 아직 살아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지난 금요일, 숙취로 몸과 속을 비워내니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저를 가득 채워줬습니다. 역시 옛말이 틀리진 않아요. ‘비우니 채워진다’는 게 이런 걸까 싶었어요.

당장 그 새벽녘에 떠올린 아이디어들을 팀원들과 나눠보고 싶습니다. 물론 직원들은 새로운 일거리라 반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되고, 다시 채워진 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전 09화인생은 트라이가 아닌 츄라이(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