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던 몸과 마음을 깨운 작은 시도
4km. 그리고 20년.
올여름 내가 새롭게 마주한 숫자이다.
집 근처 공원을 달린 거리, 그리고 물을 두려워하며 수영장을 멀리한 세월.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지난 일주일을 곱씹어 보니,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쉼의 기억보다도 두 가지의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이다. 수영과 런닝. 익숙하지 않아서 두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 경험이었다.
20대 때 잠깐 수영장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물을 잔뜩 먹은 뒤로 물속은 내게 공포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 20년 넘게 수영장에서 마음껏 즐겨본 적이 없었다. 수영은 나에게 오랫동안 금기어와도 같았다.
아이들과 신랑은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았지만, 나는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은 늘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었기에,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배워보려는 마음은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휴가 때는 달랐다. 수심이 80cm 정도 되는 깨끗한 수영장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깊이가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래서 무심코 신랑에게 말했다. “나도 수영 한번 배워볼까? 가르쳐줘봐.” 신랑은 늘 하듯 음파와 발차기부터 가르쳐주었다. 발차기는 어떻게든 해냈지만, 음파는 너무 무서웠다.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나 못하겠어. 괜히 한다고 했나봐”라며 물 밖으로 나와 한참을 앉아 수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사람이 제부였다. 제부도 처음 배우고 있었는데, 신랑에게 한 번 배우더니 제법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묘한 자극이 올라왔다. ‘제부도 오늘 처음 배우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겠어. 다시 해보자.’ 그렇게 다시 신랑에게 다가가 가르쳐달라고 하니, 신랑이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다. “머리를 물속에 넣지 않으면 방법이 없어. 음파가 어렵다면 잠수부터 해봐.”
그 말에 숨을 참고 머리를 물속에 넣는 연습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잠수가 되었고, 이어 잠영으로 이어졌다. 물속에서 몸이 가볍게 나아가는 경험은 단순히 수영을 해냈다는 성취감 이상의 것이었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두려움을 깨뜨린 해방감, 그리고 ‘아직 할 수 있구나’라는 가능성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수영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신랑은 “잘 하네?”라며 웃어주었다.
일요일 아침, 또 하나의 시도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늦잠을 잘 시간이었는데 눈이 이상하게 일찍 떠졌다. 무심코 스마트폰을 열었는데, “위대한 12주”라는 책을 소개하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1년 계획을 12주로 쪼개 목표와 행동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글이었다. 절반쯤 읽었을 때, 내 안에서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그렇게 4km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 오래 달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런닝과 걷기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었다. 걷기는 걸으며 온갖 생각이 떠오르지만, 뛰는 동안에는 숨이 차서 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와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땐 걷기,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땐 뛰기’라는 나만의 솔루션을 발견한 셈이다.
30분쯤 달리다 보니 다리가 풀려 잠시 걸었지만 곧 다시 달렸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던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였다. 몸이 가뿐했고, 공복에 유산소 운동을 해서인지 체중도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샛털처럼 가벼운 몸이 되자 하프 마라톤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번 휴가에 도전한 수영과 런닝은 결코 거창한 도전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작은 시도를 통해 나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아직 내 안에 시도할 용기가 남아 있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걸 시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실패가 두려워서, 혹은 그냥 귀찮아서. 하지만 막상 해보면 그 안에서 몰랐던 또 다른 가능성과 활력을 만나게 된다.
교육업을 하는 대표로서 늘 무언가를 가르치고 이끄는 자리에 서 있다 보니, 정작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은 채 살아온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번 경험이 분명히 알려주었다. 인생은 결국 ‘츄라이(try)’라는 것. 트라이가 아니라 츄라이다. 입을 삐죽 내밀며 소리내는 그 발음이, 마치 용기를 꺼내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잘할 수 있을지, 늦지 않았는지 따지기보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 그 작은 츄라이가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나를 깨워줄수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제는 늦었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은 어쩌면 현실이 아니라 습관일지도 모른다. 늦었다는 두려움이 나를 붙잡고 있을 뿐, 실제로는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수영장에서 숨을 참고 머리를 물속에 넣은 것처럼, 단순하지만 결심이 필요한 행동 하나가 한계를 바꿔놓기도 한다. 내가 생각했던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굳은 틀을 살짝 흔드는 순간, 새로운 길이 열린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이제 나이도 있고, 예전만큼 에너지도 없는데…”라며 주저하고 있다면, 거창할 필요는 없다. 물속에 머리를 잠깐 넣어보는 것처럼, 집 앞 공원을 몇 분 달려보는 것처럼, 작은 츄라이로 시작하면 된다. 그 순간이 일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그 작은 용기가 지금의 나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