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많았어, 조금 쉬어도 돼"

긴장과 보람 사이, 내가 강의를 계속하는 이유

by 외로우니까대표다

7월, 나는 ‘강의봇’이었다.
25일 중 13일을 강의를 하며 보냈고, 총 32시간 동안 말을 했다. 상담까지 합치면 40시간.
한 달 내내 나는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면 바로 작동하는 기계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고생했어. 조금 쉬어도 돼.”


내가 강의를 시작한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강의를 하게 된 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2000년이 떠오른다. 작은 연구원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강사님의 권유로 12주 동안 매주 3시간씩 ‘데일 카네기 리더십’ 교육을 받게 됐다.

첫날, 회사 일이 늦어 교육장에 들어섰을 때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가 마치 무언가에 몰입한 집단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나에겐 그 공기가 낯설고, 어쩐지 조금 불편했다.
마침 비어 있던 맨 앞자리 1번에 앉았는데, 그 자리 덕분(?)에 자기소개를 제일 먼저 하게 됐다. 긴장한 채 이름과 몇 마디를 겨우 건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교육은 매번 모든 사람이 순서대로 3분간 마이크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당시 내향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목소리가 떨리고 손에 땀이 났다. 사람들 앞에 서는 시간이 너무 싫었고, 그 3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3개월 후, 나는 ‘개선상’을 받았다. 시상품은 만년필. 그때의 나와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내 모습을 스스로도 느꼈다. 목소리의 떨림이 사라졌고, 여전히 긴장은 되었지만 손에 땀이 나지 않았다.

아마 그때가 내가 ‘강의’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 나도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구나.’


적성보다 중압감이 먼저


사실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주를 보면 늘 ‘누군가를 가르치는 업’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 일의 절반 이상은 강의와 상담이 차지한다.

그렇지만 누군가 “강의가 적성에 맞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YES’보다 ‘NO’에 가깝다.
강의 전, 나는 매번 긴장이 앞선다. 그건 단순한 설렘이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중압감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한 번도 스스로를 ‘강의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ppt 자료가 몇 장 안 돼도, 화려한 디자인 없이도 강의 스킬 하나로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강사들이 부럽다.

여기에 ‘대표이자 박사’라는 타이틀은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강의평가 점수 앞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낮은 점수를 받으면 마음이 작아진다.


피할 수 없는 과업


하지만 이 일을 하는 이상, 강의와 상담은 피할 수 없는 과업이다.

옛말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피할 수 없으면 맞선다’ 쪽에 가깝다.
강의 후, 누군가 정성껏 남긴 서술형 평가는 나를 춤추게 한다.

지금 내가 받은 최고의 평가는 이것이었다.

“3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쇼미더머니를 보는 줄 알았어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아, 이래서 강의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즐기진 않아도 계속하는 이유

나는 강의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강의가 끝난 뒤 느끼는 뿌듯함과 보람은 강의 전의 긴장보다 훨씬 크다. 즐기는 것이 오래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면, ‘가치’는 그 일을 계속할 이유가 된다.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내 시간이 그 사람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만하다.


그러니, 이번엔 좀 쉬어도 돼

7월 한 달, 나는 온 에너지를 강의와 상담에 쏟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고생했어. 조금 쉬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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