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17) - 서대문구 북가좌2동의 '봉일천 장군집'
돼지 삼겹살, 소고기 구이를 즐기다가도, 이따금 생각나 찾으면 쉽사리 만나기 힘든 돼지부속. 드디어 서울 서부 지역에서 제대로 된 집을 하나 우연히 만났다. 서울에서 이전 세대의 감성과 함께 파주 봉일천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 북가좌동에 위치한 '봉일천 장군집'이다.
※ '봉일천 장군집' 요약 정보 ※
- 영업시간 17:00 ~ 02:00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 코로나 탓으로 앞으로 2시간씩 당겨 운영하다가 이젠 정상화가 된 것으로 추정
- 주차는 불가하다.
- 연탄불+고깃집 스테인리스 원형 테이블의 형태 / 화장실은 의외로 내부에 위치 (남녀 공용)
- 서울에서 파주 봉일천의 명목을 잇는 듯한 집, 부속구이의 정통 인파이트 복싱을 펼치는 돼지 부속구이 전문점.
- 단점이라면 동네 주민이 가족 단위로도 많이 방문해 만석 시 다소 시끄러울 수 있음.
- 아무래도 자투리 부위다 보니,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 분위기도 굉장히 올드한 감으로 노포스러운 구이집을 선호하는 경우 방문 권장.
- 굉장히 저렴한 가성집이다.
'봉일천 장군집'으로 향하는 길. 멀찌감치 노란 옆간판이 보이는데, 이름도 그렇고, 강렬한 노랑 빨강 조합으로 인해 흡사 점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속으로 유명한 봉일천에서 볼 수 있는 장군집 상호다.
범상치 않은 외관의 포스. 깜깜한 동네 골목 탓도 있겠지만, 적시적소만 비추는 불빛으로 인해 가게 외부와 내부는 단절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흡사 들어가면 과거로 타입슬립할 것 같은 기분. 화려한 네온사인이 오래된 영화의 타임머신 불빛과도 같아서 그랬을까? 빨려 들어가보도록 하자.
오호, 틀리지 않았다. TV와 요새 전등만 빼면 옛 시절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필자는 굉장히 짜글짜글한 곳이다 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러한 느낌이다. 역사와 세월이 흠뻑 밴 곳이다. 고기마저 맛난다면 금상첨화, 소주가 꼴딱일 수밖에 없는 환상의 분위기.
테이블엔 연탄 화구가 가운데로 달려있는데, 다 때운 연탄이 보인다. 얼마만인가? 아주 어린 시절 필자의 집 마당에서 연탄불을 때우던 기억이 엊그제인데, 이렇게 만나니 세월이 야속하다. 오늘 제대로 된 연탄구이로 반가움의 하이파이브를 하자.
장군집의 메뉴판이다. 가격은 심히 저렴하다. 부속인 탓도 있을테지만, 그래도 다른 부속구이 대비 저렴한 가격. 라면이 3,000원이란 점도 놀라웠다. 괜히 동네 주민분들이 가득한 것이 아니었구나.
필자는 모듬과 꼬들살을 소주 한 병과 함께 주문했다.
가게의 벽면으로는 낙서가 가득한데, 마침 보이는 99년 방문 메모. 사장님이 말씀하기를 99년도에 시작된 집이라 하신다. 20년 넘은 뿌리 박힌 집이었구나. 외환위기로 힘들었을 세대들의 삶들이 녹아난 곳일 것이다. 더불어 그 시절 삶의 애환을 겪던 사람들을 달래고 어루만져주던 곳일 것이다. 천장은 당시의 한숨이 쌓여 올라가 어둡게 그을린 것이 아닐까?
가게 안의 안내판의 영업시간은 웹에서 검색한 것과 다르다. 영업시간이 앞으로 2시간씩 당겨진 것이 아닐까 싶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장군집의 기본찬. 고추와 편마늘과 함께 다진 고추, 다진 마늘이 함께 나오는데 사진 속에 보이는 특제 소스에 섞이게 될 녀석들이다. 함께 나온 김치는 후에 나올 은박 그릇에 버터와 함께 구워주신다.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과 두 개의 은박이 세팅되었다. 하나는 소스+파절임으로. 버터가 들어간 하나는 김치를 넣어 풍미 한 가득 김치버터구이로 즐기면 된다. 없어선 안될 부속의 필수 조합이겠다.
드디어 등판한 모듬부속구이. 방문 당시에는 테이블 수가 적었기 때문에, 여사장님이 친절하게 부위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셨다. 물론 이후에 테이블이 가득 차기 시작하자 그럴 여유는 사라져버린 듯하다. 친절하시면서도 뭔가 수줍어하시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염통, 유통, 항정, 새끼보, 갈매기, 생막창까지. 가격대비 구성하고 있는 부위는 참으로 실하다. 다만 그만큼 부위별 호불호는 갈릴 수도 있으니 이 점을 유의하면 좋겠다. 부속은 자투리 부위다 보니 양념이 되어있지만, 그래도 돼지향이 강한 부위도 있을 수가 있다.
급 치고 들어온 붉은 벽돌 형제의 설명도 뺄 수가 없겠구나. 연탄 화력에 타는 것을 방지를 위해 테이블 이격으로 쓰이는 벽돌 두 개를 양쪽에 턱 하니 깔아주신다. 저런 붉은 벽돌 또한 오래간만에 보는 느낌. 벽돌 또한 세월을 함께한 것인지 따뜻하게 느껴지더라.
이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익기만을 기다리며 연탄불에 뚝뚝 떨어지는 기름과 함께 마음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한 부속 녀석들.
빨리 익어가는 녀석들부터 시작해 맛을 보기 시작하자.
한 입 하는 순간 직감하고 말았다. 이 돼지 부속 병정들과 같은 녀석들을 자주 상대하지 않을까? 제대로 된 화력으로 탄생한 연탄구이 부대다. 기름은 좔좔 빠지고, 센 불에 빠싹 구워 서걱거리는 식감 또한 일품.
물리지 않는 양념과 적절한 숙성탓인지 고기의 필수 요소들이 여기저기서 핑퐁하듯 입에서 놀아난다. 소주를 상대할 부속 병정들이다. 소주 한 잔과 부속 한 점이 빠질 수 없는 순간.
고추장 베이스의 달콤한 소스 또한 빠질 수 없는 지원군이다. 아까의 다진 마늘과 다진 고추를 투척해 함께 즐기기 참으로 좋다. 파절임 쌈에 한 점, 특제 소스 찍어 한 점. 다운된 톤의 가게 내부 색상이 따뜻하게 감싸안아 주는데, 잘 익은 부속은 안을 지피듯 치고 들어온다.
2차 구이는 달큰한 맛이 일품인 꼬들살로 시작. 이후 사진 찍기를 놓아버리고, 그냥 잔과 고기를 접할 뿐이었다.
필자는 당시 오랜 과거, 그리고 파주 봉일천의 부속집으로 타임슬립해 버렸다.
3천원의 라면이 흥분된 입 안의 전투를 진정시켜준다. 불과 화력, 투박하고 거친 부속 한 상의 진정제. 마무리 또한 실망을 시키지 않는구나.
참으로 숨은 집이다. 위치적으로나 이런 곳에 이런 곳이 있었나? 동네 사람들만 알고 있던 곳이었나? 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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