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23) - 종로구 낙원동의 '유진식당'
면을 뽑는 기계인 듯한데, 동시에 설렁탕. 국밥 등의 사골 육수의 향이 코를 스친다. 아마 평양냉면 육수의 일원이 되는 비법 육수도 이곳 어딘가에 담겨있지 않을까 싶구나. 작은 주방이 종로의 스멜을 물씬 내뿜는다.
종로3가 탑골공원 인근의 유진식당. 매번 종로3가에 들리면 지나치기만 했던 이곳을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요새 평일은 여유가 되어 주말 웨이팅이 기본인 집들을 손쉽게 찾아갈 수 있으니, 참으로 꿀같은 나날이 아닐 수 없다. 유진식당의 향이 좋은 독특했던 평양냉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 유진식당 요약 정보 ※
- 영업시간 11:30 ~ 21:00 (브레이크타임 14:30 ~ 16:00, 라스트오더 14:00)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 주차 불가 (불가피하다면 종로3가는 '종묘공영주차장' 이용을 권장)
- 대중교통 이용 시 종로3가역 5번 출구 도보 3분가량 소요
- 화장실은 취약하기 때문에 근처 지하철 화장실 또는 공중화장실을 이용을 권장.
- 가성비 맛집, 평양냉면집 중에서는 단연 가성비로 최고가 아닐까?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나 싶은데, 여타 종로의 뼈대 있는 집들 또는 평양냉면집과 다르게 간판이 귀여운 분식집을 연상케 한다.
방문 당시도 가게 앞 공터로 시끌벅적한 어르신들의 투닥거림이 있었으니, 많은 풍파를 거쳤으리라.
들어가는 중 평양냉면과 녹두지짐이 만들어지는 작은 주방을 거친다.
면을 뽑는 기계인 듯한데, 동시에 설렁탕. 국밥 등의 사골 육수의 향이 코를 스친다. 아마 평양냉면 육수의 일원이 되는 비법 육수도 이곳 어딘가에 담겨있지 않을까 싶구나. 작은 주방이 종로의 스멜을 물씬 내뿜는다.
내부는 상당히 좁아서 놀랐다. 작았던 2인석은 옆 테이블과 거의 붙은 간격으로, 몸이 응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이러한 간격을 '긴장하게 되는 간격'이라 칭하는 필자다. 4인의 넓은 테이블이 아니라면 넉넉하게 자리 잡고 술을 즐기기엔 다소 불편할 것.
소금, 후추, 겨자 등의 재료는 옆 테이블과 함께 써야 했다. 이후 기본 찬으로 푹 익은 짠지, 석박지에 가까운 깍두기가 찬으로 나오더라. 뭐랄까, 국밥도 서비스 중인 곳이어서 그런지, 피부에 와닿는 내부의 느낌이 기존의 평양냉면과는 확실히 뭔가가 다르다. 가게 내부만 보자면 홍대의 상원냉면도 조금 생각나도 말이다.
메뉴판을 살피는데 놀랍구나. 종로여서일까? 유명 평양냉면집 치고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다. 이거 맛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구나. 송해선생님길이 있는 곳답게 3천 원짜리 국밥집도 적잖이 볼 수 있는 곳이 종로이니 말이다.
좌측의 사진은 가게 창업주인 분 같은데 내려보시는 듯한 눈빛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했다. 훈장도 볼 수가 있다. 뭔가 블러 처리를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충청도스럽게 고민했으나, 방문한 이들만 뵐 수 있는 특권이지 않나 싶어 블러 처리를 한 필자다.
이후 등장한 유진식당 평양냉면이다. 진한 육수. 향이 강렬하다. 고기의 향. 맛을 보기도 전에 진한 설렁탕의 사골 육수 향이 난다. 우선 풀어짐 없이 국물만 살짝 음미. 굉장히 넘김의 끝에서 고기의 향이 강하게 도는 독특한 평양냉면이었다. 그리고 맛있다. 면을 풀기 전엔 설렁탕집스러운 육수의 향이 입안을 강하게 맴도는데, 냉면 맛만 보아도 좋은 육수 베이스의 국밥을 다루는 집이라고 추정될 정도.
소주를 한 병 주문하고 말았다.
독특한 것이 저 그릇. 그릇도 뭔가 쫄면 비슷해서 또 특이하더라. 뭐랄까 분식집 또는 동네 국밥집에서 갑작스럽게 평양냉면이 담겨 나온 느낌. 예상치 못한 복병 스멜이 물씬인 집이다.
고명은 짠지에 가까울 일반적인 절인 무가 아닌 무, 소고기 편육, 간이 되지 않은 오이. 저 짠지에 가까운 무가 마지막에 독특한 임무를 수행하더라.
본격적으로 면을 풀어 맛을 보기 시작한다. 이럼 또 달라지니 말이다.
음, 고기 육수의 향기가 지배적이었던 냉면에 메밀 향이 한껏 첨가되었다. 이젠 면향도 함께 섞이기 시작. 진한 향기의 고기 육수에 면수의 맛이 섞여 오묘하게 맛있는 맛을 자아낸다. 육수도 그렇고 면도 그렇고 향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향이 좋은 평양냉면은 또 처음이고 말이다.
총 세 단계의 맛을 거치게 되는데, 사골 육수 → 사골 육수+메밀 면수 → 마지막엔 짠지와 같은 절여진 무가 간을 더해, 사골 육수+메밀 면수+동치미 의 느낌으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참으로 오묘한 녀석이었다.
무 탓인지 냉면 육수가 얼마 남지 않으면 시큼한 간이 급격하게 치고 올라와, 육향과 비등비등 해지는데, 진즉 무 절반 정도는 깍두기 접시에 빼둘 것을 하고 후회한 필자다.
그나저나 가격 대비 맛도 그렇고 왜 유명세를 떨치는지 먹어보니 알겠더라. 기대가 크지 않아서 였을까? 더욱 맛있게 먹었으니 아직 못 들린 순례자가 있다면 중간 코스에 꼭 넣길 바란다.
고독한 먹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