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29) - 동대문구 용두동의 '와가리피순대'
요새 네이버 지도 앱을 보면 그렇게 재미나다. 이동 예정인 곳마다 확대해 주변의 식당을 클릭해 보는 재미를 느끼곤 하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찾게 된 피순대. 음? 피순대라니. 서울 생활을 하며, 잊고 산지 너무 오래된 건가? 낯설기까지 하다.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피순대. 신설동역 인근, 용두동에 위치한 '와가리피순대'를 오늘 소개하고자 한다.
※ '와가리피순대' 요약 정보 ※
- 영업시간 09:30 ~ 22:30 /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 주차는 불가하다. (가게 앞으로 4대가량 갓길 주차는 가능할 듯보이는데, 복불복.)
- 인근 공영주차장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 대중교통 이용 시 신설동역 3번 출구에서 도보 8분가량 소요.
- 외부 테이블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내부 테이블 반반의 구조.
- 화장실은 내부에 위치. (남녀 공용으로 기억.)
- 피순대 전문점, 즉 선지순대로 서울에선 굉장히 희귀한 편인데, 맛까지 있어 가치가 있는 집.
올해부터 필자의 연인이 순대나 순댓국을 찾는 일이 잦아졌는데,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던 집이다. 신설동역 3번 출구로 나와 '성북천'의 '안암교'를 건너 좌회전을 하면 나오는 곳인데.
가게 앞에 도착해 외관을 살펴보자. 뭔가 '와가리'와 '피순대'라는 단어. 원래 친한 단어인 것처럼 입에 착착 감긴다.
가게의 로고에서는 비행 중인 와가리(왜가리의 방언)도 확인이 가능하다. 가끔 필자의 동네 불광천에서 조깅을 하다 만나는 녀석이기도 하다. 20년을 훌쩍 넘은 집이었구나.
이곳의 실내 구조다. 절반은 외부 테이블, 절반은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실내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는 게 독특하다. 과거엔 좌식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필자는 주방이 가깝고 사람이 적은 실내로 착석했다.
생각보다 다양하게 구성된 메뉴다. 오소리를 주력으로 하는 순댓국인가? 순대에서나 순대국밥에서나 좋아하는 부위이고 좋아하는 종류의 순댓국이다. 서걱하게 씹히기도 하나 살짝 질긴 감도 있는 오소리감투(돼지 위)가 한 움큼 들어가 있을 것이다.
처음 온 집은 가장 상단 또는 대표부터. 오소리 순대국, 순대 모듬(작은),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김치 3종과 마늘장아찌가 먼저 등장했다. 특이한 건 정구지가 함께 들어간 오이김치. 아주 푹 익어 숨이 죽을 대로 죽었다.
기본의 순댓국은 오소리감투와 피순대의 구성, 머릿고기 배합 주문도 가능했다. 아뿔싸하진 않았다. 다양한 부위가 썰려 들어간 순댓국은 접하기가 쉬우니. 오늘은 오소리다.
와가리와 오소리. 동물들과 함께 간다. 대개 머릿고기의 비계가 들어가지 않아, 더 깔끔한 국물 맛을 내는 편이어서 선호한다.
추가 다진 고추가 등장했다. 다대기가 구비되어 있진 않은데, 이곳은 얼큰을 기본으로 한 순댓국이다. 기대된다.
차려진 '와가리피순대'의 오소리순대국, 모듬 순대(작은)다. (국물은 술국 비슷하게 서비스로 하나가 더 나왔다.) 피순대를 보는 순간 어린 시절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얼마 만의 재회인가?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 형 같다.
어린 시절 새소망학원의 원장님이 먹여준 피순대 한 알이 생각나고, 천안 어딘가의 지역장에서 먹었던 막창순대가 떠오른다. 익숙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비주얼이 먹기도 전에 필자의 향수를 자극하는구나. 서울에서 만나 그런 듯하다.
두꺼운 막창피순대와 얇은 일반 피순대, 그리고 오소리감투, 새끼보로 이루어진 모둠의 구성이다.
전북과 충남을 주요 거점으로 하는 피순대. 이런 맛깔난 순대들이 많은데, 유독 당면순대가 많아 얼마나 이런 순대에 목이 말라 있었던가? 야채와 함께 순대소를 버무려 선지는 으깨져서 들어가 있다.
본격적으로 시식에 들어가는데. 오오, 좋다. 씹자마자 기분 좋은 노릿한 특유의 맛이 입안에 퍼진다. 서울에서 맛을 보니 감동이 더욱 더해진다. 순댓국도 칼칼하면서 은은하게 퍼지는 깻잎 향. 역시 머릿고기가 많이 들어간 것보다 부담이 덜한 깔끔한 맛이다. 피순대와 오소리 위주로 구성된 순댓국은 뻑뻑하게 채워진 피순대의 넘김을 도와준다.
오소리감투와 새끼보도 이따금 한 점씩 맛을 봐주는데, 2가지 메뉴에서 식감과 맛이 참 호화스럽다.
한 알로도 금세 포만감이 채워지는 피순대. 이곳은 선지 베이스에 갖은 야채가 섞여있는 일반적인 피순대로, 뭉클한 식감의 선지를 싫어하는 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적을 것이다. 어린 시절 선지를 먹지 못하던 필자도 이러한 피순대는 잘 먹었으니 말이다.
굳어 만들어진 선지는 조금만 식어도 금세 팍팍해지는데, 이럴 땐 순댓국에 담가 적셔두었다가 먹어도 좋다. 그리운 식감과 맛이었다. 딱 이 느낌이다. 꽉 찬 속감과 선지 특유의 맛으로 순식간에 포만감이 차, 쉽게 물리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이 맛이 생각나는 뫼비우스의 띠.
텀이 길었지만 뫼비우스의 띠가 다시 시작되었다. 피순대가 생각날 때면 아마 이 집을 다시 찾아오게 되겠지.
늦은 밤 배가 훈훈해져 와가리를 한 번 더 마주하고 돌아가는 길. 10년 만에 찾은 신설동 인근인데, 참 기분 좋게 먹고 간다.
아직 피순대를 접하지 못한 이들이나, 서울에서 피순대가 떠오르는 이들에게 방문을 권장한다. 이러나저러나 좋을 것이다.
고독한 먹기행
고독한 먹기행 티스토리 블로그
http://lonelyeati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