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42) - 은평구 응암동의 '해물회천국'
슬세권이라는 줄임말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편한 차림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세권이라는데, 필자의 경우 항상 집 주변으로 슬리퍼 차림으로 편하게 걸어서 방문할 수 있는 곳들을 머릿속에 완성 시켜나갔었으니. 이 또한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삼겹살 / 갈비 / 부속구이는 거기로.
전집 / 족발 / 막국수 / 닭갈비 거기로.
양꼬치 / 일반중국집 / 수타 중국집은 거기로 가자. 등등등
거의 다 완성해나가고 있는 나만의 장르별 슬세권 맛집. 하지만 남은 한 곳.
유독 찾지 못하고 있는 곳을 최근 드디어 수집하게 되었다. 정말 맛있는 회 한 점이 당길 때 갈만한 집을 찾고 있었는데. (유독 은평구가 힘들었다.)
녹번동, 응암동 인근으로 은평구청 앞에 위치한 '해물회천국'이다.
※ 해물회천국 요약 정보 ※
- 영업시간 11:30 ~ 23:00 / 매주 월요일 휴무
- 녹번역 3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정도
- 숙성회를 다루는 듯하다.
- 아재들의 비중 95% / 필자도 아재 명함을 내밀 수 없을 정도 / 때문에 맛은 보장
- 저녁 18시에 방문했는데 한 번은 만석으로 실패, 조금 앞당겨 가 방문에 성공했는데 순식간에 만석이 되었다.
- 단골이 많은 집으로 직접 소주를 꺼내오는 일도 생긴다. 단골들이 많은지 굉장히 익숙하게 가져들 오신다.
- 다소 시끄러울 수 있다. / 화장실은 내부에 위치
가격은 다소 세다. 처음엔 불안했으나 가게 안에 한가득 아재들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물가가 치솟는 요즘 가격이 센 건지 모든 곳이 오른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슬픈 현실이다.
가을 전어는 자주 접해 패스. 스끼가 포함된 우럭+도미 中짜를 시키기기로 했다. 처음 만난 횟집을 탐색하기에 만만한 녀석들이다.
여러 장들과 함께 나온 락교, 초생강, 마늘, 고추.
락교와 초생강이 있고, 주방의 회를 잡는 사장님이 주방모를 쓴 지긋하신 분이라는 점으로 음, 과거 일식에 일가견이 있던 분이 차린 집이 아닐까? 감히 추정을 해본다.
그런데 저 한 그릇 미역국. 상당히 매력적이다. 별것 들어가지 않은 미역국인데 달큰한 감칠맛이 돈다. 보온통에서 여러 번 리필도 가능하다고 한다. 배가 조금 더 고팠으면 아주 맛나게 먹었을 것을. 자리를 잡기 위해 완벽한 공복을 갖추지 않은 것이 살짝 후회된다.
기본 스끼다시들이다. 계란찜은 간이 좀 있는 편이었다. 전복, 새우튀김. 그리고 멍게. 수조를 탐색해 보았을 때 멍게는 양식 멍게로 추정된다. 부침개는 감자를 살짝 섞은 것인지 감자전의 식감이 함께 느껴진다. 부산 해운대의 박선장횟집과는 또 다르게 워밍업의 스끼 느낌. 구워진 옥수수는 치즈가 아닌 마요네즈를 살짝 깐 맛이다. 달콤하다.
자, 이제 워밍업이 완료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탄력 있는 쫄깃한 구강 운동을 펼칠 시간이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숙성회였는데,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빛깔은 사진 보다 훨씬 영롱했다. 우럭 한 줄, 도미 한 줄 번갈아가며 놓여있는데 한 점을 접하는데 제대로 된 녀석, 찾았다. 내 슬세권 친구. 머릿속 지도에 합류할 집 근처 생선회의 욕구를 해소시켜줄 친구. 드디어 찾은 듯했다.
역시 필자는 활어회보단 수분기가 좀 빠진 쫀쫀한 응축력을 갖춘 식감의 숙성회가 좋다. 입안에서 쫄깃함이 퍼지고 응축된 살 사이로 씹히는 부드러운 서걱거림이 좋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우럭, 도미인데 더욱 고급진 맛으로 탈바꿈했다. 필자 쪽으로 깔린 씹는 맛 좋은 꼬리 부분부터 위쪽으로 젓가락이 타고 올라갈수록 부드러운 식감까지 제대로 된 숙성회다.
역시 왜 아재들의 지분이 95%를 차지하는지 이해되는 곳이다.
재미있는 가게의 풍경은, 직접 여기저기서 지긋하신 분들이 술을 꺼내온다는 점. 바쁜 시간대에 사장님 내외의 일손을 돕는 듯했다. 서빙 직원도 있는 듯했으나 단골들로 추정된다. 이곳에선 익숙한 일이란 듯 벌어지는 풍경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번 상황은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고독한 먹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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