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낡은 기억 속의 바다

by any

오늘 산책을 하다가 어떤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이 노래를 이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가사 하나하나에 귀기울여 들어본 것이 거의 15년만인 것 같았다.


패닉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내가 이 노래를 즐겨 들었던 것은 거의 15년 전이었다. 노래가 처음 나온 것이 1998년이었으니 그 당시 기준으로도 약간 오래된 노래였던 셈이다. 당시의 나는 나만의 세계에 골똘이 갇혀 살았다. 이렇게 표현하면 상당히 좋게 표현한 것이고,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흔히들 말하는 히키코모리 같은 삶이었다. 열심히 학교도 다니고 했으니 사전적 의미의 히키코모리는 아니였다. 그저 6년 동안 학교에서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거의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고 지냈고, 내 주위에 높은 벽을 둘러싸고 그 벽이 나라는 높고 멋있는 성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짓는다고 혼자서 크게 착각하며 살았으니.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최신 유행에 둔감했고, 그 당시의 내 나이와는 맞지 않게, 내 또래가 좋아하는 것에도 역시 둔감했다. 나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던 것은 오히려 오래되어 추억속에 남은 것들이었다.


어쩌다가 이 노래를 처음 듣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래는 나의 마음을 쏙 빼앗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 노래를 듣던 때의 그 풍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우리 집 앞에는 바닷가가 있었다. 나는 10대의 대부분을 해안가의 관광도시에서 보냈었다. 남들은 정말 예쁘고 놀 것이 많다고 하는 도시였지만 그 때의 나의 눈에는 하나도 예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도시는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상당히 컸는데,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8~19세기에 지어졌던 하얀색 건물들에 그대로 내리꽂히고는 했다. 바다 또한 그 햇살을 받아 파랗게 반짝반짝 빛났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약간 언덕 위에 있었는데, 방과 후 오후 3시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쪽으로 내려올 때면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인생이 괴롭고 싫었던 그 때마저 구불구불한 길과 낮은 건물들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빛을 볼 때면 그래도 가끔씩은 마음이 조금 들떴던 것 같다.

반면에 겨울에는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온 세상이 회색빛으로 물들었었다. 집 거실에는 바로 바다와 바깥 풍경이 보였었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는 회색빛 바다를 보고 있다 보면 괜히 마음이 스산해져서 커튼을 거의 닫고 살았었다.


때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거의 앞두고 있었을 즈음, 한창 시험기간이었다. 나는 시험기간에 상당히 불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주로 이른 저녁부터 자기 시작해서 새벽 일찍, 심지어는 한밤중에 일어나는 것을 선호했다. 일어나서 몇 시간 공부를 하고 있으면 동이 터 오는데, 그 때 MP3 플레이어를 들고 바닷가에 가서 걸어다니는 것이 몇 안되는 취미였다.

이 해변의 애석한 점은 백사장이 하나 없이 자갈밭이라는 점이었다. 신발을 신고 다녀도 늘 딱딱한 자갈이 신경쓰였었다. 바로 앞에서 살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해수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자갈이 깔린 곳에서 맨발로 신나게 돌아다니고 해수욕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신기했었다. 한여름에는 바닷가에 늘 관광객이 북적였다.

하지만 시험기간 당시는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아직 이른 때였기도 했고, 새벽 5시정도였기 때문에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그 때쯤이면 해가 일찍 뜨기 시작했으므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는 상당히 환했다. 약간 이른 초저녁 같은 느낌? 사람을 마주치는 때도 거의 없었다. 걸어다니다가 멈추었다가 바다를 멍하니 보면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마치 이 주변이 온통 내 세상 같았다. 그 고요하고도 푸른 풍경을 보고 있을 때 MP3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주의 낮은 반주가 귀를 울리고 내 마음의 한 구석도 함께 울렸다.


내 바다 속에는 깊은 슬픔과


나는 이 노래의 첫 문장을 정말로 사랑한다. 지금도 가끔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때에는 특히 더, 내 마음의 저 깊은 곳에 마치 커다란 바다가 있는 것 같았다. 멀고 멀리까지 가봐도 수평선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대한 망망대해. 그리고 그 고요한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는 슬픔이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자갈밭에는 작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철썩, 쏴아악. 철썩, 쏴아아악. 규칙적인 듯 하다가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맹렬한 속도로 밀려오고는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괴로워졌다. 마치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나를 끌어갈 것만 같아서. 혹은 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갈 것만 같아서.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인가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어렵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았을 때, 나의 삶에서 처음으로 맞았던 가장 외롭고 힘든 순간은 바로 그 시절이었다. 정확히는 이 노래를 들을 때 쯤에는 터널과도 같았던 그 시절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그 희망만이 나를 지탱해주는 한 가닥 실이었다. 그 때 노래를 들을 때는 가사의 초반에 더 이입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다시 들었을 때에는 후반부에 더 몰입하게 된다.

전혀 대단하지 않은, 아무 것도 아닌 초라하고 평범한 나의 삶. 한동안 인정하고 싶진 않았었는데, 조금 더 어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니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낸 여러 뿌리 중 하나는 그 고독한 폐허같은 시기였다. 내가 얼마나 그 시기를 지워버리고 싶고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었는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이미 그 폐허마저 나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한 번 그 나라로, 그 도시로 가보고 싶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여전히 내 속의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깊은 슬픔에 내가 끌려가지 않도록, 언제나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을 데리고. 그 때라면 내 낡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바다의 황량함은 지워지고 조금 더 행복한 추억이 덮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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