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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l 28. 2016

제주 북동부로 떠난 자동차 여행

제주는 갈 때마다 새롭다. 변화무쌍한 풍토와 마을 풍경은 제주가 언제나 궁금한 이유. 전통 가옥을 재해석한 게스트하우스,  빈티지 아이템으로 가득한 문화 공간과 천연 염색 공방, 우도 해안을 들르며 자동차 여행을 떠나보자.


1. 눈먼고래

제주 전통 가옥의 둥근 지붕에서 모티프를 얻어 완성한 눈먼고래 안채. © Z-LAB

돌집 2채가 땅인지 해안에 쌓은 돌무더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작하게 정주하고 있다. 붉고 파란 원색 지붕과 이웃한 마을 골목에 다가서야 안채가 겨우 드러나는데, 시커먼 지붕과 아래로 향한 조명의 은은한 빛이 이곳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눈먼고래는 조천 바다에 면한 프라이빗 렌털 하우스다. 돌집을 ‘눈먼고래’로 탈바꿈시킨 디자인 스튜디오 지랩(Z-Lab)은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마치 바다에서 표류한 2마리의 고래가 육지로 다가와 폭 파묻힌 느낌을 받았다”고. 실제 외관은 꼬리를 바다로 향한 채 해안에 표류한 대왕고래를 떠올리게 하는데, 제주 돌집의 둥근 지붕 모양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제주의 주택은 혹독하게 부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초가지붕을 얽어 둥글게 만든다. 바람이 둥근 지붕을 타고 넘어 최대한 저항을 덜 받도록 설계한 선조의 지혜인 것. 지랩은 곡면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눈먼고래에서 2분 거리에 있는 공용 주차장에서 지붕의 틀을 만들었고, 크레인을 사용해 그것을 돌집 위에 그대로 얹었다. 어두운 색깔의 알루미늄 패널은 시간대에 따라 오묘한 빛의 반사광을 낸다.

나무 서까래의 골조는 살리고 제주 돌담을 내부로 들인 감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임학현

눈먼고래는 미래적 디자인의 메탈 구조물과 자연스러운 돌의 질감이 만나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럼에도 주변 마을의 가옥과 비교해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조망을 위해 창을 낸 부분을 제외하고는 현무암으로 쌓은 벽을 그대로 살렸다. 그래서 새로 마감한 벽면과 색이 다르다. 거실과 방을 갖춘 바다고래, 숲고래 2채가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구조로, 안거리(안채)와 창고 건물을 개조한 것. 눈먼고래의 관리를 맡고 있는 김수정 매니저는 바다고래의 핵심 은 노천 욕실에 있다고 말한다. “똥돼지 아시죠? 돼지가 사람 똥 먹던 구조의 우리를 그대로 살렸어요. 사람이 변을 보던 공간은 바다 전망대가 되었고, 돼지우리는 노천 욕조로 바뀌었죠. 주변의 시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공간이라 편하게 노천욕을 즐길 수 있어요. 밀물 때 욕조에 앉으면 바다의 수평선에 시선이 걸립니다. 100년 이상 된 담쟁이덩굴이 단단하게 뿌리내린 돌담도 특이해요. 강한 바람 때문에 담쟁이가 자라기도 어렵지만, 보통 벌레가 많이 생겨 없애는 편이거든요.” 그의 말대로 눈먼고래는 ‘제주다움’을 실천한 건축이 돋보인다. 대들보와 서까래 등의 골조를 유지하고 고재를 활용해 침구와 테이블을 만들었으며 부엌과 거실의 레그 체어, 북셸프, 행어 등의 오브제는 매터앤매터의 아이템을 선택했다. 라이마스의 간접 조명과 친환경 코즈메틱 이솝으로 마련한 어메니티 등 꾸민 이의 고민과 정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급 호텔과는 또 다른 제주다운 쉼을 만끽하는 하룻밤이 될 것이다.


getting around
차를 렌트해 본격적인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제주항을 지나 함덕해수욕장 방향으로 달리면 눈먼고래가 시야에 들어온다.


· 비수기 일~목요일 40만 원, 금·토요일 50만 원, 성수기 60만 원(주중 2일 연박 시 10퍼센트 할인)
· 제주시 조천읍 조천7길 19-12
· blindwhale.co.kr




2. 비젠빌리지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 카페, 편집 숍 그리고 수영장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 © 임학현

예부터 남다른 맛의 당근과 감자, 양파 등을 재배해온 구좌읍에는 제주의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 여럿 남아 있다. 그중 하도리에서는 넓게 펼쳐진 당근밭 사이로 구획을 가르는 아기자기한 밭담과 한적한 에메랄드빛 해변을 만날 수 있고, 겨울이면 철새가 들러 쉬어 간다. 이 조용한 풍경 속에 터를 잡고 1년여간 준비 끝에 문을 연 비젠빌리지는 제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멋스러운 문화 공간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최정훈 대표는 직접 건축설계, 인테리어, 시공까지 맡아 5,289제곱미터의 너른 공간에 이름 그대로 작은 마을을 조성했다.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 카페, 편집 숍 등을 한자리에 모았는데, 큼지막한 건물과 컨테이너가 주변 농가의 창고와 닮아 마을과 조화를 이룬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콘크리트와 목재, 철재 본연의 결과 색을 살린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최정훈 대표가 다년간 직접 모은 빈티지 소품을 공간 곳곳에 배치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싸하게 흉내만 낸 인테리어 소품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저마다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독특한 오브제를 컨테이너 9대에 꽉 채워 왔다고 하니, 이곳에서는 보물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 고개를 들면 카이저 이델(Kaiser Idell),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 등 해외 유명 가구 디자이너의 빈티지 조명이 천장을 가득 메우고, 발밑엔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다는 보네이도(Vornado)의 1세대 공기 순환기와 1959년식 진공관 라디오가 자리하는 식이다.

여느 부티크 호텔 못지않은 공간은 다채로움의 연속이다. 도미토리와 빈티지 가구로 꾸민 펜트하우스, 호텔 인테리어로 단장한 구형 캠핑 트레일러, 텃밭에서 손수 재배한 농산물로 호주 요리 학교 출신 셰프가 조리해 내는 레스토랑 하도테이블(Hado Table)과 빈티지 스피커로 꾸민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카페 비어라운드(Be Around), 빈티지 소품부터 롱보드까지 판매하는 디자인 편집숍 로프트마켓(Loft Market) 그리고 야외 수영장, 농구 코트, 탁구대 등을 갖추었다. 둘러볼수록 이 거대한 공간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직접 재배한 당근, 당근·콜라비 주스를 판매하는 비어라운드 카페. 컬렉터인 비젠빌리지의 최정훈 대표. © 임학현  


“일할 땐 열심히 일하고, 놀 땐 놀 줄 아는 어른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최정훈 대표는 마당 한가운데에 차지한 야외 수영장을 가리킨다. “계단식으로 조성한 야외 수영장은 한여름엔 풀사이드 파티를 열고, 물을 채우지 않을 땐 공연장으로 사용하죠. 옛 영화관에서 사용하던 대형 스피커가 매달린 카페와 레스토랑은 저녁이면 완전히 다르게 변합니다.” 그가 불을 끄자 레스토랑이 현란한 디제잉과 함께 번쩍이는 클럽으로 변신한다. 오픈 2개월 차인 지금, 최정훈 대표는 이 독특하고 재미있는 공간을 플리마켓, 웨딩 등 다양한 각도에서 활용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이미 입소문을 타고 제주 힙스터 이민자들이 찾는 하도리의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은 물론이다.


getting around 조함해안로를 지나 해맞이해안로를 따라 달리다 우회전한 다음, 하도13길을 따라 이동한다. 창흥동 복지회관을 지나면 비젠빌리지에 도착한다.


· 하도테이블 훈제 연어 베이글 1만8,000원, 프렌치토스트 1만6,000원
· 비어라운드 당근 주스 7,000원, 당근·콜라비 주스 8,000원
·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4만 원, 펜트하우스 35만 원부터
· 064 784 8216
· 제주시 구좌읍 하도9길 72
· wiesenvillage.co.kr



3. 우도봉

우도봉에 오르면 우도 특유의 검은 습곡과 깊은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성산일출봉과 제주 본섬의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 임학현

제주 본섬에서 약 3.8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 우도. 카페리에 올라 15분 만에 천진항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선착장 주변에 주차된 스쿠터와 자전거, ATV 같은 이륜 혹은 사륜 바이크다. 바이크에 오르내리는 분주한 여행객의 모습에서 복작대는 유원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막상 드라이브를 시작하자 제주 본섬과는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바람이 거침없고, 오랜 시간 날 선 파도와 척박한 기후를 견딘 식물이 돌과 흙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지대로 사방이 짙푸른 i 우도봉 입장료 무료,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 산19-1. 수평선이고 나지막한 구릉이다. 오직 관광객이 모인 자리만 소란스럽다. 해안도로라고 해도 1바퀴가 12.9킬로미터일 만큼 규모가 작아 자동차보다는 두 발로 걷거나 자전거, 스쿠터를 선호하는 여행객이 많다. 농어촌도로 7.5킬로미터, 마을아길 6.9킬로미터 등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도 27.3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도로 폭도 4~6미터로 협소하고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흐릿해 실제로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그런 이유로 우도 자동차 여행은 풍경을 만끽하며 느릿느릿 주행하는 것이 포인트. 선착장에서 출발하면 동쪽이 나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1바퀴 돌 수 있는데, 우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우도봉으로 가기 위해 동쪽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우도봉은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인 우도에서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 쇠머리오름이라고도 불린다. 해발 132미터의 경사가 완만한 봉우리는 누구나 쉽게 걸어 올라갈 수 있는 난도. 무엇보다 이곳은 우도의 검은 해벽과 짙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망대다. 구불구불한 능선에 조성한 우드 트레일을 따라 느릿느릿 걷는다. 우도봉 올라가는 초입에 제주마(馬)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우도는 조선 숙종 때부터 말을 기르고 관리하기 위해 거주를 허가한 곳이기도 하다. 온순한 성질의 말이지만 베테랑 가이드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발걸음은 경쾌하다. 체격은 작아도 균형이 잡혀 있고 얼굴이 넓은 게 특징이다. 12세기 몽골제국의 말은 오로지 제주에만 남아 있다고도 한다. 동북아에 외롭게 떨어진 섬이 만든 격리의 결과인 것. 그래서인지 우도봉을 향해 가열차게 달리는 제주마의 뒷모습이 쓸쓸한 듯 아름답다. 용암이 만든 육중한 해벽을 마주하며 제주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소금기와 바람, 짓궂은 풍토에서 살아남은 식물의 생명력과 그들이 완성한 신비로운 풍경 앞에서 경건한 마음이 앞선다.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걸어도 왕복 40분에 불과한 짧은 길이지만, 우도의 풍경을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꼭 가볼 것을 추천한다. 바람막이 재킷과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다.


getting around 성산포항여객터미널에서 우도 천진항으로 향하는 배편을 이용하면 약 15분 걸린다. 천진항에서 중앙동 방향으로 달리다 우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우도봉 쪽으로 우회전하면 우도봉 주차장이 보인다.


· 우도봉 입장료 무료
·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 산19-1.



4. 검멀레 해변

소가 누운 형상이라 이름 붙인 우도의 배 부분에 해당하는 곳. 보트를 타고 동굴 주변을 여행하는 즐거움이 크다. © 임학현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와 자전거, 이륜차로 가득찬 주차장과 ‘우도 맛집’으로 유명세를 치른 크고 작은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과연 우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답다. 소란스러운 풍경을 뒤로하고 해변으로 내려간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고래 몸통 같기도 하고, 시커먼 모래언덕을 떠올리게 하는 검멀레 해변. 이름 그대로 현무암이 부서진 ‘검은 모래’ 해변은 총길이 약 100미터의 아담한 규모다. 한여름에는 기온이 한껏 오른 검은 모래에 몸을 묻은 채 찜질을 즐기는 여행객이 많다. 명징한 녹색을 띠는 파도가 검은 자갈을 힘차게 굴리며 시원한 풍경을 만든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암벽에 숨은 천연 동굴이다. 해변에서 벗어나 해안 끝에 자리한 보트 선착장으로 향한다. 선착장이라 해도 얼기설기 엮은 나무 패널을 바다에 묶어놓은 것이 전부지만. 한쪽에서는 우도 주민이 직접 잡은 산 멍게를 썰어 바로 내온다. 신선한 멍게를 안주 삼아 이야기 삼매에 빠지다가도 여행자의 시선은 어느새 짙푸른 바다에 고정된다. 라이프 재킷을 입고 보트에 오르자 입심 좋은 가이드가 동굴 안내를 시작한다. “자, 자, 우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가 누운 모습을 닮아서 우도라고 하지요? 여기가 바로 왼쪽으로 누운 소의 배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보트가 절벽에 가까이 다가가자 후해석벽(後海石壁)이라 부르는 검은 습곡(褶曲)의 결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가장 먼저 이른 곳은 ‘동안경굴(東岸鯨窟)’. 거대한 검은 구멍이다. ‘고래가 살 만한 동굴’이란 의미로 우도 사람은 ‘고래 콧구멍’이라 부르고, 충암 김정의 <제주풍토록>에선 용이 살았다는 전설도 언급한다. 밀물 때라 물이 동굴의 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데, 보름에 한 번 오는 사리 물때에는 웅장한 민낯을 드러낸다고. “10월 물때에 이곳에서 동굴 음악회가 열립니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이 동굴에서 화음을 맞추고 노래하지요. 음향 기계 뭣이 필요한가요? 공연이 열리면 그 소리가 수평선 너머 천리만리 퍼지는 걸!” 공명의 울림으로 열리는 음악회라니, 상상만 해도 근사하다. 김정의 <우도가> 번역자 현행복 교수가 수장으로, 그는 1997년부터 매년 음악회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우도 사진가 고성미의 사진집 <우도 vol. 10>에 2015년 동굴 음악회를 감상한 그녀의 짤막한 감회가 실려 있다. “나는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선사시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기분 좋으면 춤추고 노래하며 뛰어놀았을, 동굴에서 생활하던 그 시절. 그들의 예술적인 감각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간이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라니…” 보트는 고래 콧구멍을 지나 우도봉의 정상 아래 해식동굴로 들어간다. “여러분 머리 위를 보세요. 동그란 달 모양이 있지요?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동굴에 쏟아지는 햇빛이 이 동굴 천장에 반사돼 진짜 달이 됩니다. 오전의 밝은 달이라 하여 주간명월(晝間明月)이라 부르지요.” 고창호 가이드는 늦가을부터 봄이 밝은 달을 만나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덧붙인다. 보트 투어를 마치고 육지로 올라가는 길, 이곳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한 검멀레 해변의 또 다른 얼굴이 궁금하다.


getting around 우도봉 주차장에서 우도봉길, 영일길을 따라 달리다 ‘검멀레’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우도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검멀레 해변 주차장에 도착한다.


· 우도 레져 보트 투어 1만 원(1인, 20분 소요)
· 064 728 3394
·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 317.



5. 블랑로쉐

빙수에 땅콩 가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땅콩 가루로 빙수의 얼음을 만드는 것이 특징. © 임학현

화산토로 이뤄진 제주 땅은 본래 논농사가 불가능하다. 비가 내리는 족족 빗물이 화산토로 쓸려 내려가니 씨가 건강하게 버틸 수 없는 것. 수로를 뚫어 맑은 폭포수를 끌어들인 개척 논의 역사가 있지만 현재 대부분 사라졌다. 쌀을 재배하기 어려워 메밀, 보리, 핍쌀, 수수, 조, 밀과 같은 잡곡 분말을 주식으로 고구마, 감자와 해산물 등 거친 식자재가 제주 밥상 차림이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성장이 빠른 땅콩을 우도에서 재배한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땅콩을 재배하기 시작한 기록을 보면 역사가 길지 않지만, 오늘날 200여 개의 농가가 땅콩 농사를 짓고 수확한 전량을 판매하는 등 대표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우도 땅콩을 주재료로 한 메뉴와 레시피도 다양하다. 어디에서나 땅콩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땅콩 아이스크림, 땅콩 햄버거, 땅콩 호떡도 있다. 우도 북동쪽에서 만난 카페 블랑로쉐도 땅콩 메뉴를 판매하는 곳 중 하나. ‘하얀 바위’라는 뜻의 이름처럼 새하얀 박공 지붕의 외관이 인상적인 곳으로, 땅콩 아이스크림과 빙수가 유명하다. 옥빛 바다와 수평선을 이루는 널찍한 테라스가 건물을 둘러싸고, 전면 유리창을 오픈해 사방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테라스와 자연스레 연결되는 현무암에 서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과 하고수동 해변을 바라보고 우도의 바다를 만끽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이국적인 공기가 교차하는 세련된 카페다.

블랑로쉐 한편에 자리한 소품 숍, 우도아이. © 임학현

블랑로쉐는 우도에 반한 두 남자, 박강원과 김진철 씨가 하고수동 해변에 터를 잡고 2014년에 문을 열었다. 김진철 매니저는 우도의 다른 카페와 차별화하는 메뉴 개발에 골몰했다. “보통 빙수에 땅콩가루 뿌린 것을 생각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땅콩가루를 넣어 얼린 얼음이에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블랑로쉐만의 ‘땅콩 맛’ 얼음을 만들었죠. 공들여 고른 농가 한 곳과 땅콩을 직거래하고, 100퍼센트 제주산 우유를 사용합니다. 아이스크림에 토핑할 땅콩을 요리할 때는 에어플라이어를 사용해요. 땅콩 본연의 식감을 유지하려고 했지요. 여러 방법을 시도하며 고군분투한 결과, 맛도 좋고 보는 즐거움도 있는 메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소금이나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 안심하고 드세요.” 김진철 매니저는 빙수의 계절인 여름이 지나면 땅콩 막걸리에이드 같은 색다른 메뉴를 개발해 선보일 예정이다. 블랑로쉐의 볼거리는 앞마당에도 이어진다. 독립된 구조의 컨테이너 건물로 이뤄진 공간은 이인경 씨가 운영하는 소품 숍 우도아이. 그는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우도에 정착했다. “우도는 제주 본섬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작은 어촌이에요. 사람이 빠져나간 섬은 무척이나 고요합니다. 우도에서는 반드시 1박 이상 머무르라고 권하고 싶어요. 하늘과 땅, 바다가 일직선을 이루며 환상적인 낙조와 일출을 만들어요. 이곳에서 바라보는 본섬과 한라산의 풍경도 특별하지요.” 숍에서는 그가 직접 제주를 소재로 만든 향초, 석고 방향제 등과 함께 고성미 작가의 우도 사진집 시리즈, 지역 예술가의 생활 자기 등을 판매한다. 우도 이민을 선택한 청년의 소박한 출발도 블랑로쉐에서 만나는 색다른 볼거리다.


getting around 검멀레 해변에서 하고수동해수욕장 방향으로 난 해안도로를 따라 3km 달리면 도착한다. 블랑로쉐에서 우도 해안도로를 따라 답다니탑망대, 산호해수욕장을 지나 약 7km 이동하면 다시 제주 본섬으로 향하는 천진항에 도착한다. 내륙을 통과하는 하고수길을 따라 이동하면 3km 거리로 단축할 수 있다.


· 땅콩 빙수 9,000원, 땅콩 아이스크림 4,500원, 더치커피 3,800원, 하와이안 맥주 9,500원
· 9:30am~6pm(선박 운영 시간까지, 풍랑주의보 시 휴무)
· 064 784 0045
· 제주시 우도면 우도해안길 783.



6. 참곱다

천연 염색한 천을 자연 바람에 말리기 위해 작업 중인 체험객.

벚꽃과 유채꽃이 한가득 피어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 녹산로. 봄철이 아니더라도 그곳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넓은 초원과 듬성듬성 자리한 오름 사이로 가시리 풍력발전단지의 하얀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하기 때문. 이곳의 정확한 지명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간 마을과 해안 마을의 중간 즈음 자리한 중산간 마을로, 여름이면 초록빛이 완연하다. 그 풍경 언저리에 제주의 풀과 나무로 천연 염색을 하는 참곱다 농장이 있다. 큰사슴이오름과 입구를 공유하는 작은 농장 한편에서 제주 아주머니들의 천연 염색 체험이 한창이다. “선염을 통해 타닌을 입히고 나서 매염 작업을 해야 색이 선명하게 나와요. 손이 많이 가더라도 진한 색을 뽑기 위해서는 이 작업이 꼭 필요해요.” 상수리나무로 선염해 갈색을 띠는 천 위에 다시 구실잣밤나무의 검은 빛을 입히며 설명을 듣는다. 색의 농도에 따라 이런 과정을 네 번, 다섯 번까지 반복한다. 체험장 뒤로 삼나무 숲이 곧게 솟아 바람을 막아주고, 그 안쪽으로는 너른 잔디밭 위에 염색한 천이 마르고 있다. 고운 빛깔의 검정이 산의 초록빛과 어우러져 마치 제주의 지도를 펼친 것 같다.

색을 진하게 입히기 위해 선염 작업은 필수다. © 임학현

집안 대대로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송은자 대표는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시로 이주했다가 진정된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피부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천연 염색한 옷을 입은 후부터는 피부가 깨끗해졌죠. 그래서 직접 염색을 하기 시작했어요. ” 역시나 지금도 그녀는 직접 염색한 쪽빛 옷을 입고 있다. 농장과 인근 숲에서 자라는 나무와 꽃은 물론, 거리에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억새, 고사리, 쑥 등으로도 염색을 한다. 모든 나무와 풀에는 고유한 색과 향이 있어 제각각 다른 색을 내지만 자연에서 얻은 색은 어떤 조합이라도 서로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염색 체험 후에는 직접 재배한 찻잎으로 만든 차도 맛볼 수 있다. 찻집이라고 하기엔 모양이 조금 엉성하나 숲 한가운데서 마시는 차의 맛은 왠지 더 싱그럽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천연 염색한 옷은 그 정성 덕인지 색이 깊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색이 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화학 성분의 방향제나 세제에는 취약하니 주의하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곳에서 염색한 옷가지를 육지로 가져와 세탁할 때마다 제주의 자연을 자연스레 추억하게 될 듯하다.


getting around 해안도로 여행을 마치고 성산포항여객터미널에서 중산간 지대로 들어간다. 성산등용로, 일출로를 따라가다 수산2리 입구에서 ‘대청동, 송당’ 방면으로 이동한다. 금백조로, 비자림로를 따라 달리다 제동목장 입구에서 좌회전해 약 5km 이동하면 참곱다 농장이 나온다.


· 염색 체험 1인 2만 원부터(예약 후 입금 필수)
· 10am~5pm
· 일요일 휴무
· 010 3692 6045
· 서귀포시 표선면 녹산로 536.



제주 자동차 여행 계획하기



추천 루트

조천읍 눈먼고래에서 출발해 우도의 우도봉과 검멀레 해변을 거쳐 다시 본섬의 중산간 지대인 참곱다 농장까지. 총거리 80km


구간 소개

조천 바다와 마주한 독채 펜션 눈먼고래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복합 문화 공간인 비젠빌리지와 우도를 한 바퀴를 돌아본 다음 다시 제주 본섬의 중산간 마을까지 달리는 여정이다. 우도에 들어갈 때는 천진항으로 가는 카페리를 이용하자. 대부분의 해안 도로는 자전거전용도로인 환상자전거길과 나란히 자리한다.



드라이브 포인트


① 해맞이해안로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오조리까지 아우르는 약 27.8킬로미터의 도로다. 해안을 따라 조성한 제주 도로 가운데 가장 길다. 해안도로는 제주 일주 도로인 1132지방도와 나란히 뻗어 있는데, 1132도로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으니 중간중간 등장하는 해안도로 진입 안내판을 따라 들어간다. 해안도로 대부분 자전거전용도로가 함께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 족과 나란히 달리는 즐거움도 크다. 해맞이 해안로가 지나는 세화포구에는 제주 이민자와 원주민이 마련하는 플리마켓 벨롱장이 펼쳐진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반짝’ 열리니 여행길에 들러보자.

구좌읍 수국길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를 잇는 해안도로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수국길로 유명하다. 7월은 수국이 만개하는 시기. 해맞이해안로를 따라가다 하도항을 지나면 파스텔 톤의 수국으로 가득한 가로수길로 이어진다. 자동차를 세우고 사진을 촬영하는 여행객이 많으니 속도를 줄이자. 수국길에 만나는 하도리 별방진 또한 숨겨진 촬영 스폿. 별방진은 조선 시대에 외세로부터 제주도를 방어하기 위해 돌로 쌓은 성곽으로 둘레 950미터, 높이 2미터의 규모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한 타원형 구조의 성곽을 따라 잠시 산책을 즐겨보자.

③ 우도 해안도로
천진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우도를 1바퀴 도는 데 15.3킬로미터. 우도봉, 검멀레 해변을 지나 산호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홍조단괴 해빈, 1948년 4·3 사건의 흔적 답다니탑, 하고수동해수욕장 등 우도의 볼거리 대부분이 해안도로에 모여 있다. 우도 해녀의 쉼터인 불턱(물질을 나가기 전에 불을 쬐거나 언 몸을 녹이며 휴식을 취하는 돌담)과 밭을 가르는 밭담, 밭머리에 만든 무덤 돌담인 산담과 나란히 드라이브를 즐겨보자. 드라이브길에 허기가 느껴지면 전직 우도 해녀가 주인장인 산물통숨비소리(064 783 0082)에서 문어라면을 먹고 이어서가도 좋다.


Driving Tip

· 제주도는 회전교차로 설치 시범 지역으로 읍·면 지역 외곽도로 사거리 등에 90여 개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교차로에 서행으로 진입하고, 먼저 회전하고 있는 차량에 우선 양보한다. 회전교차로 통과 시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아 나가지 않으면 역주행을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 성산포항여객터미널에서 천진항으로 가는 카페리를 이용해 우도로 들어갈 수 있다. 오전 7시(우도에서는오전 8시 출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10~30분 간격으로 운항한다(성인 왕복 2,000원, 차량 왕복 2만1,600원부터).
· 우도해안도로는 폭이 4~6미터로 협소해 왕복 차로를 구분하는 중앙선이 없고 차도와 인도도 구분되지 않는다. 2015년에 70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주민의 불만이 심해지고 있다. 서행 주행하고 보행자 안전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 주차를 할 때도 다른 여행자나 주민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자.
· 우도 천진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우회전하면 막다른 길인데, 그 길 끝에서 돌칸이 해안을 만난다.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갈 수 있으며 역광이 비추지 않는 오후엔 천연 동굴인 어룡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 우도에도 주유소는 있다. 구좌농협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휘발유 주유소로 우도면사무소 옆에 위치한다. 하지만 공급난이 매년 심해지고 있어 품절이 자주 발생하니 주유 상태를 미리 확인하자.



 신진주, 김수지 · 사진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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