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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ug 31. 2017

제주의 걷기 좋은 숲


제주의 걷기 좋은 숲

‘섬’이라는 환경에 제주처럼 울창하고 깊은 숲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비롭고도 고마운 축복이다. 1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성된 오름, 함께 긴 시간 동안 생명을 만들어내고 유지해온 곶자왈 그리고 다양한 숲이 제주 곳곳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제주의 숲은 유난히도 깊다. 또한 신비롭다. 숲속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깊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면 복잡다단한 일상사가 단번에 사라진다. 그리고 고즈넉한 숲길을 걷는 당신과 오직 숲만의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혼자 거닐어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해도 좋다. 오감이 열리는 듯한 상쾌한 공기와 바람, 하늘과 맞닿은 세상의 모든 초록빛이 존재하는 곳. 완벽한 힐링의 순간을 선사하는 제주의 숲으로 가자.




오감이 열리는 듯한 상쾌한 공기와 바람, 하늘과 맞닿은 세상의 모든 초록빛이 존재하는 곳. 완벽한 힐링의 순간을 선사하는 제주의 숲으로 가자.





1만 년 역사를 지닌 제주의 생명력

1.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의 숲길. © 안수연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은 제주 고유의 숲을 부르는 이름이다. 외지인에게는 생소하지만 무엇보다 제주의 독특한 생태와 자연을 만끽할 수 있기에 제주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제주 토착어로 숲을 뜻하는 ‘곶’과 돌 혹은 자갈을 뜻하는 ‘자왈’을 합쳐 이름 지은 곶자왈은 무려 1만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제주에 화산 활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 분출된 점성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크기의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 지형을 만들었다. 여기에 나무와 덩굴식물 등이 섞여 원시림이 연상되는 독특한 생태의 숲이 탄생한 것이다. 제주시의 곶자왈은 한라산을 기준으로 크게 네 군데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대정읍 영어교육도시 내에 조성된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다른 곶자왈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숲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다.


숲으로 한 걸음 들어서자마자 울창한 나무가 여러 겹으로 포개져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다. 평평한 나무 덱과 푹신한 흙길로 조성된 ‘테우리길’ ‘한수리길’ ‘오찬이길’ ‘발레길’ 등의 산책로는 둘러보는 데 40분~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다양한 코스 중 선택해 이정표를 따라 원하는 만큼 충분히 걸으며 숲을 느껴보자. 테우리길 끝에 위치한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면 키가 큰 나무들 때문에 보이지 않던 하늘이 열리고 숲 전체를 시야에 담을 수 있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곶자왈도립공원이 위치한 신평리 주민이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삶의 터전으로 머무는 현지인에게 듣는 숲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삼나무의 왕국

2. 삼다수 공원

20~30m로 쭉뻗은 삼나무가 우거진 숲길. © 안수연

제주를 상징하는 물 ‘삼다수’를 생산하는 삼다수 공장 옆에 제주도민도 잘 모르는 비밀스러운 숲이 자리한다. 삼다수 공원이다. 이곳은 비자림이나 사려니숲길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숲이 아니다. 심지어 제주도민도 아는 사람만 안다. 하지만 한 번 방문했다면 누구나 “아니, 제주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며 놀라워할 만큼 다양한 매력과 싱그러움을 지녔다. 특히 산수국이 피기 시작하는 초여름부터 녹음이 절정을 이루는 여름 한복판까지 삼다수 공원의 진가가 발휘된다.


공원 초입 울창한 삼나무 숲길로 들어서면 바깥보다 기온이 3도쯤은 쑥 내려간 듯 서늘하다. 탄성을 자아낼 만큼 장관을 이루는 삼나무 숲에서부터 이 공원의 강한 인상을 받는다. 제주에는 유난히 삼나무가 많다. 구부러지고 엉켜 있는 울창한 곶자왈 숲도 신비롭지만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20~30미터 쭉 뻗은 삼나무 숲을 거니는 시간 또한 근사하다. 초록빛 이끼로 뒤덮인 나무줄기가 마치 하늘에 닿을 듯 뻗어 있다. 키 큰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복잡한 마음속도 다리미로 다린 듯 말끔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느리게 흔들리는 나무줄기 사이로 파란 하늘이 살짝살짝 보이고 가지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마치 삼나무의 왕국에 와 있는 듯하다.


삼다수 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수종이 다양하여 ‘걷는 맛’과 ‘보는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삼나무 숲길이 끝나면 조릿대밭이 나타난다. 음료수로도 사랑받고 있는 조릿대가 허리 아래 높이로 자라고 있다. 조릿대밭을 걸어가다 보면 댓잎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마치 새소리처럼 사각거려 기분이 상쾌하다. 밭 끝에 다다르면 산수국 길이 열린다. 그리고 삼나무 숲을 다시 만나면서 숲속 산책이 마무리된다. 삼나무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정부 차원에서 1970년대 집약적으로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실용 목적으로 식재한 삼나무가 꽤 자라 지금은 이토록 멋진 숲을 이룬 셈이다. 삼다수 공원의 산책로는 두 코스로 나뉜다. 왕복 2~4시간 정도 걸리는데, 두 코스 모두 삼나무 숲에서 시작해 삼나무 숲에서 끝나 향긋한 삼나무 향기에 파묻혀 마음을 정화하기에 충분하다.





신비롭고 깊이 있는 원시림

3. 교래자연휴양림

교래자연휴양림의 산책로 끝에 늘어선 삼나무. © 안수연

곶자왈도립공원이 제주 남서부에 위치한 넓고 웅장한 숲이라면 동쪽 중산간에 자리한 교래자연휴양림은 도립공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훨씬 신비롭고 깊은 원시림의 자태를 뽐낸다. 곶자왈 지대에 조성된 최초의 자연휴양림으로, 숲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휴양 시설도 마련되어 있어 좀 더 친근하다.


교래자연휴양림에는 오름산책로와 생태관찰로라는 두 가지 트레킹 코스가 있다. 왕복 40분 정도 걸리는 비교적 짧은 코스의 생태관찰로는 곶자왈의 모든 생태와 식생을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는 축소판이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과 달리 이곳은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꽤 있어 바닥이 두툼한 운동화를 준비하는 게 좋다. 오름산책로는 말 그대로 곶자왈 숲을 거쳐 큰지그리오름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다. 숲과 오름을 모두 감상할 수 있으며 왕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책로 끝에는 올라가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다. 약간 숨이 차고 땀이 날 무렵 말문이 막힐 만큼 놀라운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울창한 삼나무 숲이다. 제주도에 많이 서식하는 삼나무는 보통 숲 초입에서 볼 수 있는데, 교래자연휴양림에서는 오름산책로 꼭대기까지 올라야 한다. 하늘을 가리는 높이의 엄청난 규모다. 시야가 어둑해질 만큼 무성한 삼나무 숲을 지나면 큰지그리오름 정상에 있는 전망대가 나타나며 눈앞이 환해진다. 탁 트인 제주 동쪽 일대에 펼쳐진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오름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근사한 풍광이다. 오를수록 예상을 뒤엎는 절경이 나타나는 숲, 바로 교래자연휴양림의 매력이다.



Tip 교래자연휴양림에서 보내는 하룻밤

숲속에서 하룻밤 묵는 로망을 실현하고 싶다면 자연휴양림의 숙박 시설을 이용하자. 제주도에는 서귀포 · 절물 · 붉은오름 · 교래자연휴양림 4곳에서 숙박 시설을 운영한다. 휴양림마다 특징과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특히 교래자연휴양림은 유일하게 곶자왈 숲속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곳이다. 저렴한 숙박료와 깨끗한 시설로 예약 경쟁도 치열하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하는 인터넷 예약은 서두르지 않으면 방을 잡기 힘들 정도. 짙은 숲 향기 속에서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맑은 공기를 맡으며 산책할 수 있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교래자연휴양림의 숙박 시설은 전통 제주 초가집 형태를 띤 ‘숲속의 초가’와 일반 원룸 구조의 ‘휴양관’ 두 가지 스타일로 운영한다. 숲속의 초가는 집 1채를 돌담으로 쌓은 독채로 오붓하게 휴식하기에 제격이다. 가족끼리 묵을 수 있는 넓은 숙소도 있다. 4만 원부터, jeju.go.kr/jejustoneparkforest/index.htm






제주의 상징, 천년의 숲

4. 비자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림. © 안수연

 비자림은 명실공히 제주의 숲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1993년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되었고, 2005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천년의 숲’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비자림은 비자나무 단일 군락지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2,800여 그루가 넘는 비자나무 모두 각각의 이름표가 달려 있을 만큼 철저히 관리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비자림은 붉은 송이(Scoria) 산책길에서 시작된다. 먼지가 날리지 않고 걷기가 편한 숲길을 만들어주는 송이는 화산 폭발 시 점토가 고열에 탄 화산석 돌숯을 일컫는다. 알칼리성 천연 세라믹으로 제주를 대표할 만한 지하 천연자원이기도 하다. 숲에 들어서면 특유의 비자나무 향기가 풍긴다. 삼림욕이다. 인간의 몸을 정화해주는 피톤치드가 온몸을 채운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살균 성질을 띠는 화합 물질로, 인체에도 이롭다고. 비자림의 향기는 언제나 짙지만, 잎의 초록이 절정을 이루는 6월부터 여름까지 더욱 풍성하다. 비자림은 비자나무 외에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비자란, 풍란, 나도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등 귀한 난과 식물 자생지이기도 하다. 비자나무는 수령이 500~800년에 이른다. 비자림에서는 가장 오래된 1,000년수 비자나무가 ‘새천년’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다. 높이 25미터, 둘레 6미터의 거대한 나무로 비자나무의 조상목이라 할 수 있다. 숲 중심에 자리한 연리목은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의 촬영 스폿으로도 인기가 많다. 비자림은 맑은 날도 좋지만 비 오는 날이 단연 압권이다. 흐린 날 분위기도 좋아 날씨에 관계없이 들를 수 있는 숲길로 꼽는다.





마음을 다독이는 난대림

5. 납읍리 금산공원


나무 덱으로 이루어진 금산공원의 보행로. © 안수연

제주 서쪽으로 자동차를 돌려 애월로 향하는 길, 납읍리라는 낯선 이정표가 보인다면 잠시 멈춰보자. 고즈넉하고 조용한 마을에 제주  유일의 원시 난대림인 금산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금산공원은 산이나 오름, 전형적인 곶자왈 지대가 아니라 평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상록수림. 60여 종의 난대성 나무가 함께 자라는 독특한 풍경이 특징이다. 관광객에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숲이라 할 수 있다.


금산공원은 옛날부터 이 지역의 나무를 중히 여겨 벌채를 막았기에 금산(禁山)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공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적한 풍경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원시림 속으로 불쑥 순간 이동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깊고 깊은 숲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무 덱으로 만든 보행로가 공원 전체에 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하기 편하다. 수령이 몇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목이 있고 난대림이라는 특징에 걸맞게 사시사철 짙푸르게 우거진 숲길은 오롯이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후박나무, 생달나무, 종가시나무가 어우러진 숲에서는 유난히 새소리도 많이 들린다. 금산공원은 1993년에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매력적인 트레킹 천국

6. 사려니숲길

트레킹 코스로 각광 받는 사려니숲길. © 임학현

비자림로에서 시작해 물찻오름, 사려니오름을 지나면 삼나무 숲이 우거진 지방도로가 나타나는데 그 초입에 사려니숲길이 자리한다. ‘제주 숨은 비경 31곳’ 중 하나로 꼽히는 청정 숲길.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비교적 긴 코스지만 숲길은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채로운 수종이 우거져 볼거리가 풍부하다.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려니는 신성한 신의 구역에 위치한 산에 붙는 이름으로 신성한 숲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려니숲길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가 오갈 수 있었지만 2009년부터 차량을 통제하고 탐방로를 본격적으로 조성했다. 15킬로미터 정도 이어지는 산책로는 비교적 완만한 코스로 아이도 쉽게 걸을 수 있다. 그래서 사시사철 많은 이가 찾는다. 6월에서 8월까지는 분홍색, 보라색, 하늘색의 산수국이 장관을 이룬다. 다른 숲길에 비해 산책로가 넓어 여름에는 그늘을 찾기 힘들 수 있으니 모자나 양산을 준비하자. 비자림과 마찬가지로 붉은 송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려니숲길에서는 숲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가 다양하게 펼쳐지니 방문 전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게 좋다.



글. 안수연


안수연은 지난 10년간 도쿄와 뉴욕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제주에 안착해 제주에 관한 사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올해 초, 아이슬란드와 제주 두 섬의 이야기를 함께 다룬 사진전 <아일랜드, 닮은 듯 다른>을 열었으며, 저서로는 사진 에세이 <케이타이 도쿄>가 있다. sooyeunah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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