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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ug 29. 2017

흑석로 골목 여행


오랜 시간을 겪어낸 노포가 자리를 지키고 그 옆에 개성을 살린 상점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흑석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골목을 거닐며 대학가의 추억을 더듬는다.





볼 곳




1. 효사정

한강변 언덕에 자리한 효사정. ⓒ 문지연
효사정에서 바라본 한강의 전경. ⓒ 문지연

표지판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숨이 차오르기 전 고즈넉한 정자가 홀연히 나타난다. 조선 시대 초기 문신 노한(盧閈)이 어머니를 여의고 3년간 시묘를 하고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해 지었다는 효사정이다. 난간을 두르고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는 평범하지만 탁 트인 경관은 범상치 않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그 건너편 어깨를 마주한 고층 건물, 더 멀리는 N서울타워와 북한산까지 한강 북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효사정의 백미는 단연 야경. 어둠을 가르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어우러진 한강의 정취가 낭만적이다. 복잡한 도심에서 한 발짝 벗어나 고요한 서울의 밤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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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820 1258,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55.




먹을 곳




2. 나눔과 베품

200여 종의 빵으로 가득한 나눔과 베품의 내부. ⓒ 문지연
여름 제철 과일 블루베리를 올린 부리오슈. ⓒ 문지연

1997년부터 우직하게 한자리를 지켜온 나눔과 베품은 고집스럽다. 유기농 밀가루, 무염 버터, 천일염, 친환경 달걀 등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고, 화학 계량제 대신 천연 발효종으로 숙성해 빵을 만든다. 정성껏 구워 낸 유기농 빵은 풍미가 좋고 쫀득한 식감이 월등한 데다 소화가 잘된다. 당일 만든 빵을 그날 판매하는 것이 원칙. 진열장을 꽉 채운 200여 종의 빵은 모두 2 · 3층에 자리한 공장에서 굽는다. 다진 양파와 크림치즈를 듬뿍 얹은 어니언 크림치즈 베이글과 딸기 · 블루베리 같은 제철 과일로 만든 타르트, 소보로 등이 인기. 커피와 에이드 등 테이크아웃 음료도 가성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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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니언 크림치즈 베이글 3,800원, 블루베리 타르트 6,900원, 7:30am~11:30pm, 02 821 7809.




3. 수목식당

왼쪽부터 만두와 칼국수, 수제비를 1그릇에 담은 만두칼제비.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소박한 외관. ⓒ 문지연


복작거리는 흑석시장 한구석에 자리한 노포에서 푸근한 미소를 띤 주인장이 끓고 있는 육수에 반죽을 얇게 뜯어 넣는다. 노련한 손길에는 35년 된 국숫집의 관록이 묻어난다. 각종 채소와 바지락, 생면, 만두 등을 넣고 한소끔 끓여 내온 것은 만두칼제비. 부드러운 면발과 개운한 육수의 조화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겉절이를 곁들이니 쫄깃한 수제비와 든든한 만두까지 술술 넘어간다. 필요할 때마다 신선한 식자재를 구입해 육수부터 양념장, 김치까지 직접 만드는 것이 맛의 비결이라고. 학생 때부터 오던 단골이 엄마가 되어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찾을 만큼 그릇에 오롯이 담긴 추억은 발걸음을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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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칼제비 5,000원, 라제비 3,000원, 10am~9pm, 일요일 휴무, 02 816 3556.




4. 거구장

거구장은 질 좋은 국내산 갈비만 사용한다. ⓒ 문지연

어둠이 내린 흑석로의 돼지갈비 굽는 냄새가 익숙하다.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선 돼지갈빗집은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나 인근 주민이 저렴하고 맛깔나는 고기에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장소다. 197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거구장은 흑석로의 터줏대감. 돼지갈비를 주문하면 쌈채소와 양념 게장, 양파 절임 등과 함께 금세 정갈한 상을 차려낸다. 이곳의 돼지갈비는 사과, 배 등 천연 감미료와 간장으로만 만든 양념을 사용하고, 24시간 동안 숙성 시켜 육즙과 풍미를 모두 잡았다. 칼집을 내 양념이 잘 밴 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간이 세지 않아 남녀노소 좋아할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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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갈비 1만4,000원, 갈비탕 9,000원, 10:30am~11pm, 일요일 휴무, 02 815 4724.




마실 곳



5. 터방내

1980년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내부. ⓒ 문지연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1980년대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전경이 펼쳐진다. 은은한 빛의 전등갓 아래 빈티지 가죽 소파와 테이블을 배치하고, 아치 모양의 가벽을 세운 아늑한 분위기. 볼륨을 높인 클래식 음악이 귀에 익을 즈음, 사이폰 안의 물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커피가 천천히 유리구에 차오른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카페 터방내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가구는 물론이고 30년 전 메뉴를 그때의 맛 그대로 잔에 담아낸다. 시그너처 메뉴는 나폴레옹이 자주 마셨다는 카페 로얄. 커피잔 위에 스푼을 걸치고 그 위에 각설탕과 브랜디를 부은 후 불을 붙인 커피는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볼거리와 함께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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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로얄 4,000원, 11am~12am, 일요일 휴무, 02 813 4434.





터방내의 강정희 대표 ⓒ 문지연


LOCAL’S TIP

터방내의 강정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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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방내는 1983년에 오픈했어요.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디제이가 있는 음악 다방이 유행하던 터라 중앙대학교 아래에 있던 흑석로 일대가 모두 음악 다방이었죠. 이 근방에서 원두커피 전문점은 터방내가 최초였답니다. 저희는 커피를 사이폰 기구를 이용해 추출합니다. 그때는 이 방식이 일반적이었어요. 사람의 손이 필요한 정성스러운 작업이라 이젠 찾아보기 힘들지만요. 30년이 지나도 커피 내리는 방식부터 메뉴, 인테리어까지 모두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카운터에 있는 공중전화도 찾는 사람은 없지만 사용할 수 있답니다. 시간이 지나니 옛 모습을 지킨 것이 지금까지 터방내가 살아남은 비결 같아요. 흑석로도 서울에서 거의 보기 힘든 오래된 풍경을 간직한 골목이죠. 덕분에 지금은 오래된 가게가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어요. 서울 속의 시골 같은 느낌이랄까요? 흑석로의 정겨운 분위기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합니다.”




6. 오후홍콩

하얀 타일 벽에 네온사인 간판을 달은 외관은 홍콩에 있는 카페가 떠오른다. ⓒ 문지연

12시가 되면 갓 구운 빵 냄새가 오후가 됐음을 알린다. 노릇하게 구워 낸 빵은 바삭한 크러스트를 입힌 파인애플 번. 파인애플을 닮아 이름 붙은 번은 홍콩에선 식사 대용이나 간식으로 먹는데, 두툼한 버터 조각을 안에 끼워 먹기도 한다. 바삭한 겉과 달리 속은 부드럽고 버터 향이 진한 것이 특징. 주인장이 홍콩에서 직접 배워 온 레시피로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우유 향이 풍성한 현지식 밀크티 또한 환상의 조합. 타일로 마감한 화이트 톤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 홍콩 식당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구와 소품을 배치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잠시나마 홍콩 뒷골목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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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로야우 2,500원, 밀크티 4,200원, 10am~10pm, 인스타그램 @ohhu_hongkong




OWNER’S PICK

“중국어로 뽀로(菠萝)는 파인애플, 야우(油)는 버터를 의미해요. 즉 뽀로야우는 버터를 곁들인 파인애플 번이죠. 반죽, 크리스피, 속재료 모두 다른 종류의 버터를 사용해 깊고 풍부한 버터 향을 느낄 수 있어요.”

By 오후홍콩의 이민수 대표




7. 바라건대

복순도가 손막걸리와 우니. ⓒ 문지연
전등을 달고, 파라솔을 설치한 루프톱이 돋보이는 외관. ⓒ 문지연

흑석로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주점 바야흐로가 2호점 바라건대를 냈다. 오래된 2층 주택을 개조해 옥상에 파라솔을 세운 루프톱 바를 만들고, 실내의 낡은 흔적은 하얀 커튼으로 가렸다. 여기에 고풍스러운 자개장과 모던한 가구를 채워 시간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맥주, 와인, 막걸리, 양주 등 10종이 넘는 주종을 갖춘 것이 특징. 여름에는 천연 탄산으로 청량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복순도가 손막걸리를 추천한다고. 김에 싸 먹는 성게알 우니나 연어뱃살, 연어알, 단새우 등을 올린 가이센동 등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안주는 다시금 술을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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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니 반판 1만9,000원, 복순도가 손막걸리 1만9,000원, 6pm~2am, 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baragundae




글. 문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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