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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Oct 24. 2017

충주 낭만 여행
'나는 추억의 속도로 걸었다'



Dive Deep in Nostalgic Town

나는 추억의 속도로 걸었다

승객 없는 유람선에서 추억의 가락이 흘러나온다. 충주 수안보로 떠난 소설가 백영옥이 말하는 스러진 모든 것의 위로.




당신에게 여행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떠나길 희망하는 요즘, 한 번은 받아봄 직한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여행을 ‘도돌이표’라고 정의하곤 했다. 이 말의 방점은 언제나 도돌이표가 붙은 그곳으로 반복해서 되돌아간다는 것에 있다.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머물고 싶을 정도로 좋은 곳에 있다가도 이렇게 얘기하며 작별하곤 했다.


나는 떠나는 게 아니라,

이제 집으로 되돌아가는 거라고.


나 같은 사람을 ‘마이너스 여행자’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거다. 채우기보다 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 꽉 차 있는 휴지통을 덜어내듯 도시에서의 일상을 비워내기 위해 떠나는 사람 말이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주인공 혜정이 일본 나라(奈良)의 명물인 사슴조차 시끄러워서, 그저 아무것도 없는 이곳 고조(五條)에 오고 싶었다는 말을 그래서 좋아했다. 빈집이 즐비한 노인의 도시 고조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언젠가 한번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다. 언젠가 태백의 한 다방에서 쌍화차와 쿨피스를 사 먹었던 것처럼 그곳 사람들이 자주 시켜 먹는 음료를 마셔보고 싶었다.


서서히 스러진 풍경들에 늘 매혹된다. 상실되며 낡아간 것에 대한 이 애틋한 마음이 어디에서 연유한 건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보존보다는 늘 개발을 택하는 지금의 문화에 대한 반발과 안타까움 탓도 클 거다. 그렇게 나는 과거에 유명하던(이제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산정호수나 월미도, 장흥에 가곤 한다. 산정호수에 떠 있는 오리 배는 낡았다기보다 늙었다는 말에 더 근접하지만 그래서 애틋한 마음이 든다. 쉼 없이 삐거덕 소리가 나는 회전목마나 아슬아슬해 보이는 바이킹, 간판의 글자 몇 개는 빠진 여관들, 빛바랜 플라스틱 야자수가 군데군데 서 있는 곳. ‘꿈과 낭만의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며 과거의 화려했던 풍경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런 곳에선 마침내 추억의 속도로 걸어볼 수 있다. 자꾸만 호출되는 옛 기억 때문에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진다. 충주에서 나는 추억의 속도로 걸었다.






왼쪽부터 월악나루 매표소 앞 매점에서 트로트 음반과 조악한 기념품을 판매한다. 매표소에서 바라본 월악나루 선착장. ⓒ 이규열


충주터미널에 도착해 올뱅이(다슬기)국 한 사발을 먹었다. 40년을 한자리에서 식당을 한 할머니가 충주 올뱅이국은 된장을 풀어 아욱과 정구지(부추)를 가득 넣는다고 했다. 된장은 모든 음식을 순식간에 순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아욱을 오래 씹다 보면 단맛이 배어 속까지 뜨뜻해진다. 할머니들은 손님이 오면 이런저런 얘길 한다. 밥장사를 하면 온갖 사람을 만나게 된다지만, 할머니가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연이 유독 기이해 적어두면 이렇다. 어느 날 밥집에 들어온 스님 한 분이 할머니에게 “된장 하나 해주소”라고 하길래 밥을 푸짐히 내주었더니, 맛나게 잘 먹었다며 할머니에게 교회에 나가라고 했다는 거다. 그 얘길 한 스님도 기이하지만,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할머니도 맘에 남긴 마찬가지다.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유행하는 지금, 할머니는 얼마나 구식인가. 하지만 요즘 나는 순종이라던가 헌신 같은 말이 이처럼 귀하게 여겨진 때도 없단 생각도 한다.


충주호를 보기 위해 월악나루에 갔을 때, 옛 가요들이 흘러나왔다. ‘민들레 홀씨 되어’에 이어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를 듣는데 그 시절 그가 사랑했던 여자, 최진실이 떠올랐다. 예뻤는데. 너무 예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그녀의 말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도 사람도 이제 없다. 장국영을 아무리 좋아했다 한들 죽은 그에게서 주름살과 백발을 보며 느낄 연민 같은 건 없다.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칡즙을 마시는 남자를 보다가, 헤어진 옛 남자가 ‘살아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방 소도시의 낡은 유원지에서 우연히 만나면 쓴 칡즙이나 마시며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 어색하게 웃으려나, 이런 황당한 상상마저 들었다. 칡즙 파는 곳 뒤에서 배경처럼 “변강쇠 관광 디스코” “오빤! 관광 스타일” “앗싸~ 관광 왔쑝” “모르쇠 트롯 가요 베스트”라고 적힌 노래 테이프들이 꽂힌 책장을 봤다. 충주 수안보가 한때 ‘묻지마 관광’의 명소였다는 게 뒤늦게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념품 가게의 입구에선 말표 고무신을 발견했다. 시골에 가면 크기가 맞지 않는 할아버지의 고무신을 신고 진득거리는 진흙밭을 걷다 넘어진 기억도 떠올랐다. 일상을 벗어나면 도무지 생각지도 못한 단상이 불쑥 튀어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각별해진다.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이란 그런 걸 거다.



충주호 관광선 선장실 내부. 선장은 배를 운항하며 노래를 선곡하고 안내 방송까지 도맡아 한다. ⓒ 이규열

충주호 유람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원의 말이, 주중에는 타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사람 숫자를 봐 가며 운영한다고 했다. 승선하기 전, 신분증을 지참하고 개인 기록을 남겼다. 세월호 사건 후 생긴 수칙이다. 유람선이라지만 낡고 오래된 작은 배는 친절한 선장과 더 친절한 기관장 2명이 운행한다. 기세 좋게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 2명이 그곳에 타고 있었다. 노키즈 존 따위가 이런 곳에 있을 리 있나. 어딜 봐도 더덕구이, 장어집이 즐비한 이런 곳에선 아이도 어른의 음식을 씩씩하게 잘 먹는다. 유람선을 관찰하다가 기관장이 승객의 민원을 파리채 하나로 ‘직방’에 해결하는 걸 보고 웃음이 터졌다.


배가 출발하고 곧 선장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공사 기간만 7년 4개월이 걸린 충주댐에는 6개의 수문이 있고 이곳에서 4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락마저 붙은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작은 소도시에 태어나 그곳을 떠나지 않고 평생 같은 일을 하는 삶이란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겹고 따분할까. 답답할까. 하지만 곧 지루함이 평온함이 되는 축복의 시간도 오지 않을까. 꼭 이곳이 아닌 저곳이어야 할까. 여기가 아닌 저기에 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이 거대한 물 밑에 과거의 마을이 있기 때문일 거다. 충주댐처럼 거대한 댐이 생기면 마을 몇 개는 통째로 수몰된다.



월악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육지 속의 바다’라고 일컫는 충주호를 바라본다. 비가 많이 내린 올해 충주호 수위는 5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 이규열





수주팔봉 근처의 팔봉마을 논두렁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낀다. ⓒ 이규열

어떤 사람에게 충주는 복숭아나 사과의 도시, 충주호의 도시일 수 있다. 길을 달리다 보면 여기저기 새빨간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눈에 잘만 밟힌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충주호와 수주팔봉은 달리거나 멈추기에 좋은 곳일 수 있다. 아름다운 강을 끼고 캠핑이나 글램핑을 할 수 있는 너른 땅을 무료나 대여 형식으로 제공하니 말이다.


이제 막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 여행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라면 새롭게 형성된 카페 거리가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 과거 스산한 점집 거리였다는 지현동의 한 골목에는 일제강점기에 세무서장의 관사로 쓰던 100년 된 적산가옥을 개조해 만든 ‘째즈와산조’ 같은 20년 넘은 카페도 있고, 야심 차게 밥집과 카페를 시작하려는 청춘의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취업이 힘드니 창업을 한다. 서울에 나가 큰돈을 벌기보다 태어난 그곳에서 친구들과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청춘도 있다. 노량진 학원가 골목,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좋은 강의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줄을 서는 청춘과는 또 다른 선택이다. 그렇게 프랜차이즈의 폭격 속에서도 테이블 몇 개짜리 소박한 식당이 동네에 생기고, 사라졌던 골목 서점이 다시 생기는 걸 보게 된다.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런 가게에서 힘과 내공이 느껴지는 건 우리 사회가 이토록 많이 양산해낸 ‘고스펙’ 인력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정착한 곳이 골목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개인적 취향과 관점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왼쪽부터 째즈와산조 앞마당에 곧게 솟은 나무는 건물의 오랜 내력을 말해준다. 오래된 물건들이 아늑한 느낌을 안겨주는 째즈와산조 내부.  창가에 앉아 맛보는 커피맛 밀크셰이크. ⓒ 이규열


거대한 상가 하나가 수백 년 된 골목 하나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공포 속에서 바라봤다. 종로의 피맛골은 그렇게 사라졌다.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신선한 골목을 보면 흥분 같은 게 느껴진다. 나는 이 골목들이 제 갈 길을 찾아 잘 낡고, 늙어가길 바란다. 시간에 묵힌 유서 깊은 간판을 갖길 바란다. 자동차 면허증도 여권도 만들지 않은 어떤 이에게 고향은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니라, 돌아와 머물고 싶은 곳이길 바란다. 지현동 카페 거리를 밤늦게까지 걷다가 막 오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명랑한 뒷모습을 봤다. 아마 시작은 두려움과 설렘이었을 것이다. 삼청동, 가로수길, 연남동과 익선동의 거리 모두가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됐으니까.


백영옥 작가와 째즈와산조의 마스코트가 된 유기견 감자. ⓒ 이규열

한 사람이 100년 넘은 적산가옥을 마음에 품으면서 버려진 골목의 부활이 시작했다면 이 얘기는 러브 스토리에 가깝다. 남자와 여자의 연애만 사랑은 아니니까 말이다. 6개월이나 친구들과 쓰레기로 가득 찬 집 마당의 나무 덤불과 거미줄을 청소하고, 불을 밝히고 음식을 만들어 차가운 공기를 온기로 채우는 일. 음악을 틀어 사람을 불러 모으고, 마당에 핀 탱자나무, 앵두나무, 밤나무에 물을 주고, 이제는 째즈와산조의 상징이 된 유기견 감자가 졸고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골목의 역사가 된다.




글. 백영옥           사진. 이규열





충주 낭만 여행 Part 2. 수안보 & 미륵대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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