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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골목 여행

서울의 숨은 골목 투어

Hidden Alley in Seoul

by 온더로드

휘황찬란한 불빛과 화려한 건물에 밀려 잊힌 서울의 골목. 과거의 명성이 바랜 그곳에 들어가 '뜨는 동네'로 만들고 있는 문화 개척자를 만나다.


유미정 ・ 사진 조지영


성수동

예술가가 사랑한 공장지대


성수역 앞은 언제나 어두침침하다. 2호선 전철이 다니는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다리가 도로 위를 점령하고 있어 빛을 가린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어디선가 퀴퀴한 기름 냄새와 진한 가죽 냄새가 스멀스멀 풍기기도 한다. 보이는 간판은 자동차 공업사, 인쇄소, 수제화 가게, 가죽공장 등. 1960년대 공업단지로 형성된 성수동에는 맨 처음 철공, 염색, 도금 공장 등이 자리를 잡았다. 당시만 해도 이곳은 서울 외곽에 속한 터라 지대가 저렴했고, 한강과 가까워 공업용수도 풍부했다. 공장의 기계는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지금 코끝을 찌르는 이 기름 냄새는 곧 돈이 흐르는 신호였다. 가발・봉제 공장이 가세하고, 1990년대부터는 지금 우리가 잘 아는 구두 공장, 인쇄소가 부흥했다. 제조업의 중심이던 동네가 공장만 늘어선 ‘회색도시’라 외면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비싼 임금을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눈을 돌린 공장이 늘면서 제조업자가 빠져나갔다. 미처 처분하지 못한 창고와 공장, 사무실 등이 그자리를 지켰다.

0918-seoul2.jpg 오래된 건물 외벽은 디자이너의 손길로 독특한 간판이 된다. © 조지영

사람들이 이 어두침침한 골목을 다시 찾은 이유는 수제화를 맞추거나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글로벌 패션브랜드 H&M이 세계적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패션 행사를 이곳에서 열면서, 공연과 클럽 파티를 즐기러 트렌드 세터들이 모여든 것이다. 공장 지대인 성수동에 이토록 신선한 물꼬를 튼 선구자는 70년대 초 정미소로 지어 90년대까지 창고로 방치되던 대림창고. 이 낡은 건물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성수동에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칠이 벗겨지고 먼지가 쌓인 창고와 공장, 인쇄소, 지하 사무실 등 버려지다시피 한 공간이 감각 넘치는 젊은 예술가의 표적이 됐고, 이내 세련된 카페와 작업실, 갤러리로 변신했다. 대부분 강남권의 터무니없는 월세를 피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은 이들이다. 그중에는 젋어지는 성수동의 분위기를 따라 서래마을의 작업실을 처분하고 온 판화 예술가도 있다.


대림창고가 있는 성수역 3번 출구 골목을 걷다 보면, 카센터 건물 위에 카페처럼 생긴 구두 공방이 보이고, 전위적인 쇼가 펼쳐질 것 같은 디자이너 편집매장이 인쇄소와 대문을 같이 쓰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대체로 간판이 없는 곳도 많다. 옛날식 붉은 벽돌에 암호처럼 상호를 써놓거나 작은 팻말만 작업실 앞에 빼꼼히 나와있다. “인쇄소 건물 속 의외의 공간이라서 지나가는 사람이 궁금해했으면 좋겠어요.” 버려진 봉제 공장을 직접 공사하고 클럽처럼 인테리어를 한 패션 편집매장 '수피(SUPY)'의 이계창 대표는 말한다. 뉴욕에서 공부한 그는 성수동을 ‘서울의 브루클린’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작업실을 얻어 새로운 콘텐츠를 수혈하고 있다는 의미다. “애초에 손님이 여기까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굳이 큰길에 작업실을 얻을 필요가 없었어요.” 가죽 브랜드 '프루아(FFroi)'의 박선규 대표 또한 1년 전,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이곳으로 돌아와 작업실 겸 쇼룸을 열었다. 카센터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길을 잘못들었나 싶을 정도로 주택가만 나오는데, 코너를 돌자마자 나타난 가게다. 그의 예상과 달리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난 프루아는 이 좁은 골목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성수동은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몇몇 예술가가 자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성수동의 잿빛이 다 지워진 것은 아니다. 동네 특유의 황량함은 그대로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수제화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구두를 만들고, 봉제 공장의 기계는 시큼한 천 냄새를 풍기며 돌아간다. 시대를 잊은 철공소와 오래된 인쇄소도 변함없다. 공장과 예술가의 작업실, 옛날 연립주택과 서울숲, 연예인이 사는 주상 복합 아파트까지, 성수동의 골목은 그렇게 시대를 공유한다. 어쩌면 1970년대 물건을 만들던 제조업을 이제 문화를 창조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가 상생하고, 도시 재생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과도기만 잘 넘긴다면, 우리나라에도 취리히 웨스트(Zurich-west)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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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독립 서점 책방 이곳은 주인이 소장한 책과 소품을 파는 곳이다. 수피(supy)를 운영하는 이계창, 황희영 부부. 청바지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카페 사진창고의 빈티지한 인테리어. © 조지영

①자그마치

②페이퍼크라운

③수피

④프루아

⑤사진창고

⑥아이니드팩토리

⑦서울스낵

⑧윤경양식당

⑨서울숲파이

⑩펜두카

⑪키친로딩

⑫이노베이터스라이브러리

⑬메쉬커피


연남동

생활 창작을 이룬 예술 골목


예술가에게 연남동은 홍대 앞 대신에 택한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길 하나 건너는 수고만큼 임대료가 내려가니, 조금 소외되더라도 주택가를 비집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을 터. 연남동은 예전부터 옆 동네에 밀려 차선책으로 선택되곤 했다. 사실 동네 이름부터 그랬다. 서대문 연희동의 일부를 떼어 마포에 편입시키면서 ‘연희동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연남동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즘, 주목받는 동네에는 지리적으로 연남동이 모두 발을 걸치고 있다. 인디 예술로 홍대 앞이 한창 부흥할 때, 이곳은 그저 조용한 주택가에 불과했다. 부촌인 연희동이 고급 중식당의 집합소로 이름을 떨칠 때, 소소한 중국집과 분식당, 대만 만둣집이 연남동을 지켰다. 그러나 지금 연남동은 술집이나 밥집 이름을 한 번에 읊지 못할 정도로 맛이 창궐하는 골목이 되었고, 주민이 주체가 된 예술마을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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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디자이너 가방 브랜드 스위치(sweetch)의 매장. (오른쪽)전위적인 전시와 공연 등이 열리는 플레이스막 © 조지영


연남동 주민과 예술가의 활동을 돕는 일상예술창작센터는 연남동에 들어와 조용히 작업하는 아티스트를 모아 공방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연남동 골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직접 제작한 ‘만드는 연남동’ 지도 1장을 쥐어주고 동네산책을 권한다. 미로처럼 꼬불거리는 옛 골목을 천천히 걷는 동안,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식당도 없다. 그저 한적한 주택가는 고층 아파트를 허락하지 않는 듯 오래된 단독 주택이 정겹게 붙어 있는 모습이다. 예술가가 운영하는 아담한 가게는 골목 마다 1개, 많게는 2~3개가 모여 있을 뿐. 홍차와 커피를 연구하는 ‘오후의 작은선물’, 핸드메이드 비누를 만드는 스튜디오 ‘비뉴(be new), 강원도 농수산물의 가치를 알리는 ‘브라이트 모닝’, 일본인이 운영하는 북유럽 소품 가게 ‘퓨티키아’에서는 꽃 수업이 한창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에는 연남동에 머무는 예술가뿐 아니라 집 앞에 좌판을 펼치고 먹거리나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 파는 주민도 함께 한다. “아티스트가 연남동 주택가로 들어오면서 주민과 끈끈한 정이 생겼어요. 덕분에 창작 활동을 주민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일상예술센터의 조성진 씨가 말한다. 마을 창작 예술 활동의 일환으로 이곳에서는 동네에 숨어있는 재주꾼을 찾아 창작 워크숍을 연다. 예컨대,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입는 할머니의 ‘바느질 토크쇼’가 열리는 날은 마을 창작소 ‘새끼’에서 원피스 만드는 강좌가 열린다. 그들은 손재주 있는 주민을 ‘연남 마예스트로’라 부르고, 일상과 예술의 벽을 낮춘다.


주택가를 빠져 나와 동진시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폐허처럼 닫혀 있던 동네 시장이 1년 전부터 젊은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뀐다.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야 하는 옛날 선술집, 태국 요리, 일본 가정식, 카레집은 시장의 활성화에 힘입어 골목에 공생하고 있다.

동진시장은 매주 목·금요일에 열리는 예술 야시장과 주말 플리마켓으로 유명하다. © 조지영

누군가는 이미 연남동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빠졌다고 말한다. 불모지 같은 곳에 터를 잡고 동네를 일으킨 원주민이 결국 치솟은 임대료에 쫓겨나야하는 현실을 연남동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 “자본의 원리는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예술가가 모여 어디에서든 문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얘기죠. 공간을 확대해나가면서요.” 5년 전, 일찍이 홍대를 벗어나 어두컴컴한 동진시장의 쌀집을 개조해 전시 공간 플레이스 막(PlaceMAK)을 만든 유디렉 대표의 말은 자조적이다. 가장 허름한 곳에서 예술의 저변이 확산되길 바란 그의 의도대로 동네는 성장했지만, 유 대표는 또다시 서울의 후미진 골목을 찾아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연남동이 무색무취가 되어가는 홍대 번화가의 발전과는 다르길 바랄 뿐. 만년 2인자 동네의 반란이 새로운 문화의 힘을 이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동진시장 옆 카페와 식당, 공방과 갤러리가 모여 있는 정겨운 골목길. © 조지영

①동진시장

②플레이스막

③카페 리브레

④히메지

⑤비뉴

⑥스위치

⑦퓨티키아

⑧일상예술창작센터

⑨36.5 by key

⑩브라이트 모닝

⑪오후의 작은 선물




후암동

서울답지 않은 서울의 종점


전에 살던 동네에 후암동까지 가는 202번 버스가 다녔다. 명동쯤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가 후암동 종점으로 돌아갔던 적이 있다. 서울 한복판, 더구나 번화한 명동 시내 옆에 이런 달동네(미안한 이야기지만)가 숨어 있다는 사실과 마을버스처럼 동네 깊숙이 들어가는 202번 시내버스의 방대한 루트에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후암동은 남산 자락에 위치해 지대가 매우 높다. 폭염인 날씨에 언덕을 걸어 오를 자신이 없어 잡아 탄 택시에서 기사는 "비가 와서 이곳이 잠기면, 서울은 이미 떠내려갔을 것"이라며 농담을 건넨다. 후암동은 한때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로 낙인 찍힌 적도 있지만, 용산중학교에서 해방촌 오거리로 넘어가는 길목부터 이미 변화가 감지된다. 카페와 레스토랑, 디자이너 소품숍, 작은 서점이 들어서면서 젊은 사람들은 일부러 이높은 언덕까지 올라와 골목을 헤매고 볼거리를 찾아 다닌다. 물론 서울역과 남산, 명동, 이태원의 빛에 가린 후암동은 여전히 생소한 이름으로 들리고, 실제 낙후된 집도 꽤 많이 남아 있다. 오죽하면 후암동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조차지역 특성에 ‘빈부격차가 심함’이라고 밝혔겠는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보면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이 촘촘히 메운 좁은 골목이, 저 멀리에는 삐죽삐죽 올라선 높은 빌딩과 아파트, 남산타워가 있다. 바로 오늘날 후암동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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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수제 버거집 더백푸드트럭의 옥상에서 바라본 후암동의 풍경. (오른쪽)후암동 주택 사이에 문을 연 食빵은 배부르고 소화 잘되는 건강한 빵을 판다. © 조지영


시대를 거슬러, 광복 이후 후암동은 이태원 일대와 함께판자촌과 천막촌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에 일본인이 집단 거주하며 ‘문화주택촌’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해방 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과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의 삶의 터전이 된 것. 지금과 다른 ‘진짜 주거’를위한 주택대란이 있던 터라 좁은 골목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살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이런 로터리를보신 적 있나요? 거리는 번화했지만, 후암동은 여전히 골목마다옛날 집이 많이 남아 있어요.” 후암동 언덕 버스 종점에 자리한 양과자 가게 ‘소월길 밀영’의 김규완 대표가 2층가게에서 로터리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후암동은‘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다. 어느새 고층빌딩이 가득한 세련된 도시에서 옛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는 일이 됐다. 인천 출신의 그가 후암동을 택하고 이곳에 정착한 이유도 옛 서울의 정겨운 모습에 끌렸기 때문. 실제로 후암동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시간을 거스르는 듯 옛 분위기가 점점 진해진다. 여전히 후암시장 뒤편에는 목조 판재를 그대로 유지한 적산가옥이보인다. 같은 판자촌에 속하던 이태원이 클럽의 메카가 되고 명동과 서울역이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는 동안후암동은 고립된 섬처럼 시대를 잊고 산 듯하다. 삼광초등학교 주변으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일본식 가옥과한옥이 콜라보레이션 된 2층 양옥집도 꽤 있지만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말로 억지스럽게 포장하지 않는다. 아픈 역사와 문화의 보존이든, 먹고 사는 생계의 문제이든, 정치적 지역발전의 영향이든지 간에 이런 동네가 아직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어준 것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해방촌 언덕에서 남산공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산책로. © 조지영

난개발의 손이 아직 뻗지 않은 이 순수한 서울에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영리한 젊은 사업가도 늘고있다. 골목 사이마다 빽빽하게 오피스텔과 연립이 즐비만 주택가에 떡 하니 생긴 카페 겸 편집숍 ‘아베크 엘’은 인적 드문 주택가에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야속한 언덕을 올라오면 화려한 장식 없이 시크하게 자리한 카페 하나가 보이는데, 이것 때문이라도 후암동 골목을 걷고 또 걷게 된다. 후암동을 알린소월길 밀영도 마찬가지. 버스를 잘못 내려 종점에 고립된 사람에게 한줄기의 빛처럼 나타난 일본식 가옥은후암동을 궁금하게 만들고, 오래 머물고 싶게 한다. 손님이 3명만 차도 문 밖에서 주문 순서를 기다려야 할 만큼 좁고 긴 건물의 ‘종점카페’는 후암동 토박이를 만날 수 있는 진짜 동네 카페로 유명하다. 시대를잊고 버틴 옛날 집만큼 이 동네에는 토박이가 많다고. 옆집 숟가락 개수 정도는 알고 사는 동네라는 말에웃음이 났지만, 억지로 꾸민 서울이 아닌 역사와 문화가 깃든 진짜 서울 사람이 머무는 삶의 현장임에는분명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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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종점카페는 후암동 주민의 사랑방이다. (오른쪽)옷과 향초, 액세서리를 파는 아베크 엘의 이환희 대표.

①아베크 엘

②食빵

③카페후암동

④창수린

⑤카페보일러

⑥야루키

⑦종점카페

⑧소월길 밀영

⑨더백푸드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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