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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n 15. 2016

단양의 하늘, 땅, 물에서 놀다

하늘에서 날고, 물 위에서 보고, 땅에서 걷고 달렸다. 고개를 들면 육중한 암벽이 시선을 압도하고 어디에서나 물소리가 들린다.

두산 활공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기류가 다채로운 봄과 가을은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 오작

단양은 놀고 쉬기 좋은 땅이다. 고개를 들면 소백산맥을 따라 도솔봉, 연화봉, 용두산의 고봉이 오롯하게 솟아 있다. 뒤로는 태백산맥 줄기의 금수산, 설매산이 흐른다. 마치 산이 보호하는 숨은 땅 같다. 강원도 영월에서 흘러내려온 남한강이 단양을 휘감으며 굽이굽이 꺾이는데, 자동차로 지나가는 길마다 물이 흐르고 새가 유영한다. 강변의 모래사장에는 한 자리 차지하고 텐트 안에서 낮잠을 자거나 먹거리를 준비하는 유랑객이 띄엄띄엄 보인다. 그 사이엔 어디라도 주저앉고 싶은 너럭바위가 지천이다. 그저 광활한 바위에 누워 한숨 자고 일어나 노을을 배경으로 낚싯줄을 던지고 싶다. 하이라이트는 바위다. 한쪽에는 가래떡을 제멋대로 뜯어 쌓아 올린 형태의 암벽이 기막히게 솟아 있고, 고개를 돌리면 칼로 싹둑 자른 것 같은 암벽이 육중한 얼굴을 드러낸다. 하늘은 또 어떤가. 산이 둘러싼 분지에서 고개를 들어 보면 무엇 하나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다. 하늘에는 붉고 노란 색깔의 패러글라이딩이 우아하게 움직인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단양을 날고 걷고 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늘길


“일단 한번 날아보고 얘기하시죠.” 첫 비행을 앞두고 던진 이런저런 질문을 한마디로 제압한다. 두산의 너른 활공장에서 만난 김재은 두산레저파크 비행팀장은 비행 경력만 20년 된 베테랑. 검게 그을린 피부가 경력이고 날 선 눈빛은 기류를 감지하려는 특유의 본능이다. 그저 믿고 맡기면 되는 것을 이륙 지점의 가파른 경사를 보니 심장이 쫄깃해진다. 단양에는 3개의 활공장이 있는데, 두산은 그중 규모가 가장 크다. 올라가는 길도 꽤 길다. 좁고 거친 오프로드를 한참을 달리면 정상에서 광활한 능선을 만난다. 그 아래로 쉼표를 찍고 꺾는 강줄기와 덕현리 마을이 한눈에 펼쳐진다. 활공장에선 원색의 패러슈트를 장전한 글라이더가 다음 비행을 준비 중이다. 전에도 비슷한 풍경을 본 적이 있다. 휴가차 떠난 타이 톤사이(Tonsai)에서였다.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기는 배낭을 메고 1시간여 등반을 하던 커플. 그들이 절벽 끝에서 출발 신호를 외치며 활강하던 몸짓. 아마 땅에 닫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이 채 안된 것 같다. 안전하게 착륙한 그들의 얼굴에서 본 빛나던 희열이 여전히 생생하다. ‘미친 짓’이라 생각했지만, 그 떨림이 무척 궁금했다. 무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것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하늘에서 바라본 단양의 물줄기는 또 얼마나 다를까?

두 사람이 앞바퀴, 뒷바퀴가 되어 전력질주하면 순식간에 패러슈트가 펼쳐지고 몸이 하늘 위로 붕붕 날아오른다. ⓒ 오작

“단양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구조로 연중 기후가 안정적이고 산세가 아름답습니다. 활공장 주변으로 해발 1,000미터의 고봉들이 둘러싸고 있어 비행하기 좋은 조건을 다 갖췄죠.” 두산레저파크의 이장춘 대표의 말증명하듯 두산에는 평일 이른 오전부터 여행객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이제 비행 준비를 한다. 낙하산은 생각보다 가볍다. 배낭 속에 집어 넣어도 5킬로그램에 불과하다. 추위에 대비해 재킷을 입고 무릎 보호대와 헬멧을 착용한다. 패러슈트를 몸과 연결하는 하네스도 필수. 탄뎀 파일럿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장비를 갖추면서도 머릿속에는 계속 서늘한 긴장감이 인다. 0.1퍼센트의 확률이나마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공포가 몰고 온 온갖 재난 영화의 비극적 시퀀스가 뒤엉킨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는 교통사고 확률보다 적습니다. 국가자격증을 갖춘 숙련된 비행 교육관이 체험을 이끌고 주기적으로 글라이드 검사를 받기 때문에 안전하죠. 8세부터 70세 어르신까지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이 하라는 대로’ 비행하는 겁니다.” 김재은 팀장의 말에 힘을 얻어 마음을 다독인다. 날씨가 다소 흐리긴 해도 기류는 매우 안정적이다. 상승기류가 적어 고도 비행은 어렵다고 했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김재은 비행팀장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패러글라이딩을 즐긴다. ⓒ 오작

앞에 선 이는 앞바퀴고 탄뎀 파일럿은 뒷바퀴다. 제대로 이륙하려면 앞바퀴와 뒷바퀴가 균형을 맞추며 전력 질주해야 한다. 앞바퀴가 주저앉으면 함께 고꾸라진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시각적 두려움이 크다. 저 길 끝으로 달려가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뛰세요!”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길질을 시작한다. 뒤통수에서 낙하산이 펄럭이며 부풀어오르는 소리가 울린다. 뭔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무게감 때문에 어정쩡하게 달리게 되는데, 그래도 멈추지 말고 뛰어야 한다. “더요? 더 달려요?” “어, 어, 멈추지 마요! 계속 뛰어요! 달려!” 두 발이 땅을 벗어나는 순간 이 난리도 끝이다. 갑자기 물속으로 입수한 것처럼 모든 소음에서 멀어진다. 그 법석을 떨었는데 움직임이 우아하다. 분리된 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활공장과 객관적 거리가 생긴다. 발아래에는 해발 1,000미터 산맥. 억겁의 시간이 만든 남한강 줄기가 황홀하다. 파일럿이 방향을 조정하며 숲으로 간다. 발끝에 나무가 닿을 것 같다가도 기류를 타고 몸이 붕붕 날아오른다. ‘악’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하하하’ 우렁차게 웃는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만끽하는 ‘하늘을 나는 기쁨’이다.

말굽 모양처럼 마을을 휘감는 남한강과 소백산, 태백산 자락을 배경 삼아 즐기는 패러글라이딩. ⓒ 오작

저 멀리 석회석 노천 광산이 눈에 띈다. 푸른 산맥 사이에 벌거숭이가 된 노천 채석장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단양은 우리나라 최대 시멘트 생산지이자 석회암 광산의 고장. 산 하나가 통째로 제 몸을 내주고 속을 다 드러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아이러니하게 동시에 서호주 북부의 대협곡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착륙은 이륙보다 쉽다. 그저 두 발을 높이 들어 파일럿의 직립을 방해하지 않으면 된다. 하늘을 나는 기분도 경이롭지만, 두 발을 땅에 내딛는 기쁨도 그 못지않다. 모든 익스트림 스포츠는 안전하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까. 김재은 팀장은 기류 움직임이 강하고 다채로운 봄은 패러글라이딩을 가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계절이라고 조언한다. 단양을 특별하게 만끽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두 번째 비행에 도전해봐야겠다. 상승기류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높이 더 높이. 소백산맥 너머, 남한강 줄기를 따라.


물길


충주호 유람선을 타기 위해 36번 국도를 따라 장회나루로 간다. 구불구불 이어진 호반길 양쪽으로 벚꽃나무가 하염없이 이어진다. 벚꽃이 만발하는 4월이면 이곳은 단양에서 가장 서정적인 길이 된다. 바위와 호수,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꽃비를 맞으며 달리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구름이 산허리까지 내려왔는데, 기암절벽의 산세와 어우러져 오히려 신비롭다. 충주호는 충주에서 제천, 단양까지 이르는 호수로, 1985년 충주댐을 만들면서 조성됐다. 배가 떠나자 나들이 나온 관광객이 가장 신났다. 기암절벽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내고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다. 아름다운 비경에 흥이 돋아 어깨를 한껏 덩실거린다. 옛 풍류객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옥순봉 바라보며 산수를 노래하고 시로 화답하며 신선놀음하는 풍경이 묘하게 교차된다.

장희나루에서 충주호 유람선에 오르면 누구든 뱃놀이하던 옛 풍류객이 된다. 제비봉, 옥순봉, 구담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물길마다 이어지는 기암괴석이 한눈에 담기는 곳이기에. ⓒ 

제비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닮은 제비봉을 지나자 호수를 향해 홀연히 자리한 작은 무덤이 하나 보인다. 바로 퇴계 이황을 사랑한 기녀 두향의 묘다.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나이가 48세, 당시 만난 두향은 18세였다. 자칫 수몰될 뻔한 묘를 이장해 지금의 강선대 위쪽에 자리 잡았다. 강선대는 퇴계와 두향이 사랑을 나누던 곳이기도 하다. 퇴계는 1년도 채 안 돼 다시 경상도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두향과 이별했고, 10년 후 병을 얻어 생을 마감했다. 그때까지도 연정을 품던 두향은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움의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여인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강선대에 움막을 짓고 퇴계를 기다렸다고 한다. 무덤을 보면 현재까지 그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충주호에서 가장 보고 싶은 건 옥순봉이었다. 해발 286미터의 산봉우리는 과거부터 사모하는 이가 참 많았다. 대표적인 이가 단원 김홍도다. 충청도 연풍 현감으로 부임한 이듬해인 1796년에 그는 <병진년화첩>에 ‘옥순봉도’ ‘도담삼봉도’ ‘사인암도’를 그렸고, 단원이 그린 또 하나의 <옥순봉도>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단원의 작품에는 수평 수직의 결을 이룬 암석들이 대나무처럼 길쭉하게 솟아 있는데, 이는 실제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배에서 보는 옥순봉도 아름답지만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참 좋습니다. 산길이 평이하고 짧아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어요. 느릿느릿 걸어도 3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죠.” 유람선에 동행한 이해송 단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통통배를 타고 천장사로 가는 뱃길도 추천한다. “장회나루를 지나 ‘시인의 마을’ 끝까지 가면 작은 오솔길이 나옵니다. 그 끝에서 소형 선박을 타고 천장사로 가는 길이 기막히게 아름다워요. 기암괴석의 벽면을 끼고 20분간 바지선을 타고 들어가는데, 유람선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낭만이 있지요.” 물에 비친 바위가 거북 무늬를 닮아 이름 붙은 ‘구담봉’을 지나면 약 1시간에 걸친 유람이 끝난다. 구름이 내려앉지 않은 청명한 날에, 다시 뱃놀이를 하고 싶다. 아, 먼저 천정사 스님께 ‘픽업’이 가능한지 여쭤보고.


땅길


시인 묵객이 즐기던 비경, 사인암


단양에서 가장 경이로운 곳을 말하라면 주저 없이 사인암을 꼽겠다. 단양8경 중 5경으로, 사진에서 먼저 만난 사인암은 생김새가 비범하고 특별하다. 사인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 또한 기묘하다. 대강면 덕절산 골짜기에서부터 시작한 암벽이 시선을 압도하는데,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웅장하다. 마을로 들어서자 육중한 사인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 50미터의 거대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규모도 엄청나지만 생긴 자태가 낯설다. 수직 수평으로 난 거대한 바위가 조각보처럼 쌓인 듯하고, 바위틈 사이로 소나무와 식물이 뿌리내려 시선을 압도한다. 암석의 부드러운 옥빛은 철분이 녹아 내린 흔적이라고. 사인암 옆으로는 청련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데, 사인암과 어우러져 하나의 산수화 같은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누구나 사인암에 오면 그 풍경에 반하는 모양이다. 김정희는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이라고 극찬했고, 김홍도는 1년 여의 숙고 끝에 <사인암도>를 완성했다고 한다. 또 사인암에는 수많은 시인과 학자, 풍류객이 써놓은 글귀가 가득하다. 단양군청이 2011년 조사해 확인한 이름만 131명에 달한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인상의 글이다. 능호관 이인상은 1751년에 사인암을 찾아 이런 글을 새겼다. “뻗어오른 것은 곧고 수평은 반듯한데/ 옥빛에 금 같은 소리 어리어 있네/ 우러러보니 아득 높아/ 우뚝할손 비할 데 없구나.” 흥미로운 것은 사인암 주변 바위에 새긴 바둑판과 장기판이다. 기명이 없어 생성연도는 추측하기 어렵지만, 이곳이 얼마나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은 곳인지 짐작된다. 계곡 너머에서 바라본 사인암도 아름답고, 청련암 안으로 이어진 사인암 뒷편도 꼭 들러봐야 한다. 좁은 암벽 사이에 놓인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삼성각이 나온다. 웅장한 규모의 바위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신선이 숨어 사는 도원 같다.

조선시대의 시인, 학자들이 사모하고 예찬하던 사인암. 대나무처럼 곧게 뻗은 암벽에는 풍류객의 싯구와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묵객의 이름이 새겨있다. ⓒ 오작


선암계곡 따라 샛길을 걷다, 생태유람길


단양은 어디를 걸어도 좋다. 강 따라, 호반 따라, 계곡 따라 걷다가 좋은 바위가 나타나면 주저앉으면 그만이다. 단양8경을 좇아 주변 물길과 샛길을 걸어도 좋다. 단양의 대표 길은 소백산자락길. 총 143킬로미터로, 현재까지 12자락 길을 조성했다. 영주에서 충북 단양, 강원도 영월, 경북 봉화를 걸쳐 다시 영주로 돌아오는 루트다. 단양에는 제4자락부터 제7자락까지 걸쳐 있다. 이어 단양군은 ‘선암골 생태유람길’을 새롭게 조성하고 있다. 단성생활체육공원에서 시작하는 1구간 물소리길, 2구간 고개넘어길, 3구간 숲소리길, 4구간 농촌풍경길까지 총 4개 구간으로 이뤄진 46.4킬로미터의 순환 길로, 지난 4월 17일에 ‘물소리길’ 일부 부간을 개통했다. 소선암을 거쳐 하선암까지 5.9킬로미터에 이른다. 월악산에서 발원한 선암계곡은 단성 가산리에서 별천리까지 이어지는 큰 계곡이다. 퇴계 이황은 선암계곡을 ‘신선이 노닐다 간 자리’라고 ‘삼선구곡’이라 말했다.


소선암 자연휴양림에서 단성생활체육공원을 향해 반대로 걷는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 소리와 새소리만 은은하게 들린다. 초록은 선명하고 피톤치트의 묵직한 숲 향이 진하게 올라온다. 하늘을 뒤덮는 가로수 길을 지나면 큼지막하게 부서진 자갈길이 나온다. 그 날카로운 바위가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참 좋다. 길 옆으로 굵고 당차게 흐르는 계곡에는 고생대의 공룡 화석처럼 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1994년 대홍수가 나서 계곡이 대부분 쓸려나가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운생동한 운치가 살아 있다. 낙석을 정리하고 구간을 잘 정리했으면서도 옛 길의 야생적 기운을 그대로 살렸다. 홀로 오랜 시간 걸어도 외롭지 않고, 고독하면서도 마음은 충만하다. 대부분 평지로 이뤄져 누구라도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길 끝에서 단양8경 중 하나인 하선암과 만난다. 이황은 하선암을 “흰 돌이 층층이 쌓여 하얀 단을 이룬 듯하다”라고 묘사했다. 실제로 야구를 해도 될 만큼 널찍하고 평평한 흰 바위에 육중한 크기의 하선암이 앉아 있는데, 미륵바위라는 별명처럼 부처의 좌상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옛 시인 묵객들이 머물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할 만하다.

선암계곡에 조성 중인 생태유람길은 샛길과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 오작


땅 아래 또 하나의 단양, 천동동굴


우리나라에는 천연동굴이 1,000여 개가 존재한다. 그중 200여 개가 단양에 산재해 있다. 단양에 동굴이 많은 것은 이 일대가 석회암을 기반으로 한 카르스트 지형이기 때문이다. 석회암 채석장과 시멘트 공장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땅이라도 삽으로 퍼내면 석회석이라고 하니 그만큼 석회암 침식동굴이 많은 것. 수직 높이 5미터, 총연장 1,300미터로 단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고수동굴(고수리동굴)을 보고 싶었지만, 내부 보수 공사로 여름까지 운영하지 않는다. 고수동굴 외에 노동동굴, 온달동굴, 천동동굴이 대표적인데 그중 천동동굴을 가기로 한다. 천동리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이 동굴은 1977년 2월 마을 주민이 발견했으며, 약 4억5,000만 년 전에 형성된 470미터 길이의 천연동굴이다.

“개인적으로 천동동굴이 가장 여성스럽고 예뻐요. 고수동굴은 웅장하고 남성적인 기운이 큰데, 천동동굴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아기자기해서 가까이 들여다보기도 좋죠. 하지만 좁고 주저앉아서 진입해야 하는 곳이 있으니 각오는 하셔야 합니다.” 이해송 문화관광해설사의 말대로 천동동굴은 비좁고 낮다. 어느 지점에서는 개구리 자세로 벌을 서듯 엉금엉금 걸어 지나가야 하는 곳도 있다. 성모마리아의 뒷모습과 흡사한 석순, 작은 호수가 된 동굴 바닥에서 영지버섯의 모습으로 태어난 돌출물, 녹아 내리는 피부처럼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종유석 등이 수억 년간 살아 있다. 일부 잘려나간 종유석도 눈에 띈다. 종유석을 집에 두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 때문이다. 시야가 좁고 계단도 비좁아 움직임의 제약이 있지만 오히려 동굴 속을 제대로 탐험하는 기분이다. 다채로운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 개성 있는 형태의 퇴적물이 즐비한 그야말로 동굴 밀림이다.


거칠게 달리는 맛, ATV


스스로 핸들을 잡고 달리는 체험으로서의 여행은 실패가 적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몸의 기억이 언제나 오래 남기 때문이다. 단양 TOP 레저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인 두산마을 정상에 전용 코스를 만들어 ATV와 고카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소백산을 앞으로, 금수산을 뒤로하고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위치가 매력적이다. 황병일 대표 의 간단한 가이드라인을 듣고 ATV 연습장으로 향한다. 연습장에서 자갈과 모래밭, 웅덩이와 작은 둔턱 등을 연습하고 본격적인 드라이빙 루트에 들어선다. 루트에 따라 A코스와 B코스로 구분하며 난이도의 차이는 크게 없다. 놀이동산에서 타는 카트처럼 보여도 생각보다 힘이 좋고 거침없다. 액셀을 누르면 제법 경사진 둔턱을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가뿐하게 넘는다. 아까시나무가 늘어진 오솔길을 달리다가, 반복된 경사가 이어지는 흙길로 진입한다. 경사진 커브를 돌 땐 제법 스릴이 넘친다. 모래를 휘날리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상에 다다르는데, 이때 잠깐 멈춰서 바라보는 경관이 근사하다. 코스 마지막 둔턱에서 ‘이 정도쯤이야’ 하고 속도를 좀 내다가 과하게 점프한다. 숙련된 코치가 앞장서고 위험 구간을 미리 공지하는 등 안전 위주의 운행을 하기에 웬만해서 넘어지는 일은 없다. 단양에서는 패러글라이딩과 래프팅을 ATV와 연계해 할인한 가격으로 패키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첫째 날에는 땅, 하늘, 물에서 단양의 민낯을 경험하고, 둘째 날에는 단양의 비경을 좇아 느리게 걷고 보고 맛보는 일정으로 꾸린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 될 것이다. 6월은 단양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달이니까.

오솔길, 흙길, 돌길을 지나가는 ATV 루트가 제법 스릴 넘친다. ⓒ 오작


신진주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아웃도어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진가 오작이 풍류객이 되어 단양의 하늘, 물, 땅길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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