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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명세서란?

by 이혜진

1. 특허 명세서 작성


발명에 대한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경우 발명자는 이를 권리로 보호받기 위하여 특허출원하게 된다. 특허출원서에는 발명의 설명과 청구범위를 적은 명세서를 작성하여야 하는데(특허법 제42조 제2항) 명세서의 기재 내용에 따라 특허의 보호범위가 정해지므로 그 작성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특허출원인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특허발명을 하였음에도 정작 이를 권리화 하기 위한 특허출원서를 작성함에 있어서는 비용을 아끼려고 한다. 이 경우 특허출원업무를 담당하는 변리사로서도 그 가격에 부합하는 노력만을 들여 명세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그 결과 좋은 기술임에도 명세서 작성에 문제가 있어 출원이 거절되거나 설령 등록되더라도 단명하게 되는 특허발명이 많다.


명세서를 노력과 비용을 들여 충실하게 작성한다면, 특허청 심사관으로부터 거절이유를 통지받더라도 명세서 보정을 통하여 충분히 특허등록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특허등록 이후에도 경쟁업자에 의한 등록무효 소송에서 거뜬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명세서 작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명세서에 기재되는 청구범위에 의하여 정하여지는데, 청구범위에는 보호받으려는 사항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발명을 특정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구조, 방법, 기능, 물질 또는 이들의 결합관계 등을 적야야 한다(특허법 제42조 제6항, 제97조). 이와 같이 청구범위의 경계를 명확히 특정한 것은 '주변한정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청구범위를 위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하게 된 이유와 청구범위의 해석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심한정주의와 주변한정주의 논의가 도움이 되므로, 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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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심한정주의와 주변한정주의


(1) 중심한정주의에서 주변한정주의로의 변경

청구범위 해석에 있어서 중심한정주의(central definition)와 주변한정주의(peripheral definition) 논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중심한정주의에 근거하였다가 1870년부터 주변한정주의로 변경되었다. 중심한정주의에서는 특허 출원인이 명세서에 보호받고자 하는 청구범위의 경계를 특정할 필요가 없이, 특허발명이 선행발명과 비교하여 어떠한 기술적 특징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명시하면 되었다.


그런데 중심한정주의에서는 명세서에 청구범위가 명확히 특정되지 않은 관계로 제3자로서는 자신의 행위가 특허침해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선행발명과 비교하여 특허발명을 어느 정도 보호할 것인지, 침해제품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청구범위의 불명확성은 혁신적인 기술에 대한 투자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에 미국은 1870년에 이르러 주변한정주의로 전환하였다.


주변한정주의는 부동산 권리증서에서 토지경계(metes and bounds)를 확정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특허발명의 권리범위를 확정하는 것이다. 주변한정주의에서는 특허 청구범위의 경계를 명확히 특정하기 때문에 제3자로서는 자신의 행위가 특허침해에 해당하는지 판단 가능하므로, 회피설계를 할 것인지 실시권을 설정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청구범위의 명확성은 혁신적 기술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요인이 되었다.


주변한정주의가 특허권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라면, 중심한정주의는 새로운 발명을 식별하는 표지판을 세우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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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교 사례

Jeanne Fromer 교수는 중심한정청구와 주변한정청구를 비교한 다음과 같은 도면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참고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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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한정청구에서는 특허발명의 하위 개념으로 대표적인 모델을 제시하거나 이러한 모델에 대한 설명으로 ‘은으로 되어 있고 손잡이에 4개의 갈래가 부착된 음식을 잡고 들어 올리는 도구’라고 기재한다. 명세서에는 이와 같은 기술적 특징을 기재하고, 이후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에서 기술사상의 핵심을 고려하여 발명의 보호범위를 결정한다.


반면, 주변한정청구에서는 상정 가능한 다양한 포크를 카탈로그화하거나 각 카탈로그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특성 즉, ‘손잡이, 두 개 이상의 갈래, 위 갈래가 손잡이에 형성된 도구’라는 점과 위 갈래가 음식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두 기재한다. 명세서에 기재된 청구범위에 기초하여 발명의 보호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특허 출원인은 상정 가능한 다양한 사례에서 공통된 특성을 추출하여 청구범위를 작성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3. 명세서 작성의 어려움


현재의 특허 시스템은 주변한정주의에 근거하여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주변한정주의로의 변경으로 보호범위를 명확히 하는데 기여하였으나, 특허 출원인에게는 청구범위에 발명의 내용을 명확히 특정해야하는 상당한 부담이 있게 된다. 또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낸 경우라면 해당 발명을 지칭하는 용어나 세부적 구성을 표현하는 언어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청구범위의 작성은 발명의 기술적 사상의 창작을 한정된 언어로 구현해 내는 어렵고도 험난한 작업이라고 할 것이다.


특허출원인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소요하여 특허발명에 이르렀을 경우 자신의 발명은 이로써 완성되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권리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특허 명세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기술임에도 권리화에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술을 모방하여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없다면 너무나 억울한 상황일 것이다.


특허 명세서 작성에 돈을 쓰는 것은 오히려 돈을 버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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