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of me - Ella Fitzgerald
- All of me (ver. Ella Fitzgerald)
재즈 하면 떠오르는 스캣, 그 주인공은 엘라 피츠제럴드다. 그녀는 저음역대와 고음역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스캣(아무 뜻이 없는 소리로 즉흥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노래하는 것)을 선보인다. 자기 느낌대로 즉흥적으로 프레이즈를 만들어 부르는 모습을 보면 재즈가 얼마나 자유롭고 개성 있는 음악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재즈의 첫인상은 정확히 이런 것이었다.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정답이 없고, 천재적이면서 여유 있게 관객과 밀당하는 그런 '폼나는' 예술가. 솔로 연주를 할 때 그 이미지가 특히 돋보인다. 이 세상에 나와 피아노만 남은 것 같은 집중력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광경. 나는 그 장면 때문에 재즈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나의 소망은 무언가 한 가지라도 특출난 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칠 테니 무언가 하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잘하게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무언가, 인정받을 수 있는 나만의 재능 같은 것은 없었다. 공부나 악기, 교우 관계나 리더십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그냥 보통 정도 하는 유년기를 보냈다. 물론 보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나쁜 점은 그중 어떤 것도 내가 온전히 선택해서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어린 나는 재능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 선택에 책임지겠다 선언할 배짱이나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재즈란 유년기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좋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상 일엔 쉬운 게 없다. 열두 살까지 성실히 피아노 학원을 다닌 나는 악보만 있으면 어느 정도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었으나 재즈의 세계에서 나는 그저 이제 걸음마를 뗀 아기에 불과했다. 대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재즈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즈는 굉장히 '규칙적이고 성실하며 계획적'인 음악이었다. 코드 구성음을 외우고 2-5-1 보이싱(코드의 각 구성음을 어떻게 배치시킬지에 대한 개념)의 A form, B form을 바로바로 칠 수 있게 연습해야 했다. 어보이드 노트(코드의 기능을 저해하는 음, 일반적으로 피해서 친다)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스케일(음계)마다 사용할 수 있는 텐션(코드 구성음이 아니지만 소리에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음)과 사용할 수 없는 텐션도 알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거나' 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규칙'이 있었던 것이다.
코드만 알았다고 재즈를 재즈처럼 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터치(건반을 누르는 세기나 느낌 같은 것)를 연습해야 하는데 건반을 너무 세게 눌러도, 너무 약하게 눌러도 안 된다. 슬라이딩 주법 같은 것은 수많은 곡을 쳐보며 손가락 감을 익혀야 한다. 재즈의 꽃인 솔로에서 릭(솔로 연주에서 사용하는 짧은 멜로디)을 자유롭게 사용하려면 한 두 마디 짜리 릭을 12개 키로 바꿔가며 연습해야 한다. 아직도 멋진 연주를 하기엔 멀었다. 가장 빠르게 재즈력을 올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카피다. 전설적인 재즈 연주자들의 곡을 0.5배속으로 들으며 연주의 뉘앙스나 그루브를 똑같이 따라 치는 것은 필수다. 현실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 머릿속에서 나온 독창적인 멜로디로만 솔로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덕분에 나는 한 두 달쯤 레슨을 받다가 보이싱에서 포기하고, 또 한 두 달 레슨을 받다가 텐션에서 무너지길 반복했다. 내가 상상한 천재적인 연주자, 내가 치는 음이 곧 듣기 좋은 음이라는 듯한 자신만만한 연주자의 모습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즈에 대한 험담과 실패담이 전부인 것 같지만 직장인이 된 지금, 다시 재즈에 도전하게 되었다. 1년 정도 진득하니 레슨을 받았고 덕분에 지금은 리얼북(재즈 스탠더드 곡을 모아놓은 악보집)의 곡 중 유명한 것을 대강 연주할 수 있다. 솔로도 두 코러스 정도는 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 텐션을 더 잘 사용하고 싶고, 강약을 더 분명히 주고 싶고, 더 뒤로 밀어서 치고 싶다.
나는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았던 줏대 없는 어린 시절이 너무 미웠다. 소심한 성격에 남 눈치를 많이 보며 커서 자기주장이 없는 아이.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난이도 낮은 학생. 내가 재즈에 끌리는 이유는 그 어린 시절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재즈는 나에게 이런 위로를 건넨다. '기본과 규칙은 중요해. 어린 시절에 성실히 익히고 노력한 것들은 절대 허사가 아니야. 이제 어린 네가 닦아 놓은 길 위를 자유롭게 걸어 봐.'
건반을 누르기 직전의 긴장감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한다. 틀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도 용기를 내어 건반을 누른다. 애쓰고 있는 일이 모두 쓸모없게 느껴질 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 회의감이 들 때는 잠자코 건반을 눌러보자. 특별하지 않아도, 뛰어나지 않아도 좋다. 지금 누른 건반의 무게가 쌓여 언젠가 당신만의 음악을 연주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