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향수, 엄마

by 무나키

타투는 나의 로망이었다. 어깨와 팔뚝, 손목까지 이어지는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정교한 타투를 하나 갖고 싶었다. 타투이스트들의 인스타나 유튜브 영상 같은 것을 보면서 어떤 타투를 받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적합한 도안의 조건은 2가지다. 첫 번째, 평범하지 않은 도안일 것. 두 번째, 질리지 않을 것. 첫 번째 조건은 어떻게든 맞출 수 있겠지만 두 번째 조건은 언제나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타투는 평생 몸에 남는 건데 평생 질리지 않을 수가 있나? 게임도 질려서 한 달에 한 개씩 갈아치우는 내가? 분명 후회할 거라고 경고하는 여러 타투인(?)은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싫증 나지 않는 타투는 없다. 그마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내 몸에 타투는 한 개도 없다.


향수 냄새는 두통을 일으킨다. 백화점 1층에 가면 향수와 반지, 목걸이 매장이 모여 있는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 공간에만 가면 그렇게 머리가 아팠다. 같은 향을 계속 맡으면 코가 금방 피곤해지고, 냄새에 질리고, 곧 두통이 왔다.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향기를 갖고 싶었기 때문에 종종 멀티 향수를 사서 뿌리곤 했는데 결국 얼마 못 가 두통 때문에 포기하곤 했다. 질리지 않는 나만의 향기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남은 것은 반도 채 쓰지 못한 향수병들 뿐이었다. 그렇게 질리지 않는 향기를 향한 나의 열망은 시들어갔고, 이름과 다르게 나는 '무향 인간'으로 살아왔다. (글쓴이의 이름 한자 중 '향기 향'자가 있다.)


엄마는 자꾸 무언가를 권하는 사람이었다. '이거 입어 봐, 저걸 먹어 봐, 그것 보단 이게 낫지 않아?' 반면에 나는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마음에 들면 웃으면서 따랐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따랐다. 덕분에 맘에 들지 않는 옷이 옷장에 한가득이었고 나름대로 고집은 있어서 맘에 안 들면 안 입었다. 나중에는 옷이나 신발을 사러 가면 엄마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말을 해, 너 안 입을 거잖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싫다고 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후회할까 봐. 엄마가 권한 걸 거절했다가 엄마가 내일 죽으면 나는 그 거절을 평생 후회하고 말 거야. 그러니까 거절하지 말자. 참 극단적인 발상이지만 그 생각은 어린 나에게 꽤 영향력 있는 생각이었고 심지어 지금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지금 돌이켜보면 하지 말 걸, 해볼 걸 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후회가 너무 싫어서 매번 하고 싶은 것도 참고, 하기 싫은 것도 꾸역꾸역 했는데. 결국 지금 내게 남은 건 같은 양의 후회들이다.(과연 같은 양일까?) 어떤 걸 고르든 후회하게 될 텐데.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 선택도 당연히 완벽하지 않다. 뭘 고르든 후회는 남는다. 그렇다면 어차피 후회할 거 아무거나 골라도 될까?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선택으로 미래의 만족을 담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선택할 당시에 한껏 누려야 한다. 나중에 후회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걸 선택하겠다. 그리고 책임지겠다. 눈 딱 감고 누려야 한다.


최근에 동생에게 향수를 선물 받았다. 계피, 아몬드, 숲, 풀 그리고 약간의 생강 향이 난다. 마음에 쏙 드는 향이라 운동복을 입고도 향수는 뿌리고 다닌다. 이 향기도 언젠가 질려버릴 수 있겠으나 그렇게 돼도 상관없다. 아마 나는 반쯤 남은 향수병을 바라보며 오늘의 글을 다시 읽어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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