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rnotherus odoratus
거북이를 키운 지 2년이 되어 간다. 어디론가 행방불명된 거봉이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포도, 베리. 세 친구 모두 커먼 머스크 터틀인데 반수생 거북이로 물과 뭍에서 활동한다. 성체가 13~15cm 정도라서 아주 큰 수조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적응력이 좋아서 초보 거북 집사에게 딱 맞는 종이다. 특이한 점은 위협을 느끼면 사향 냄새를 풍긴다는 점인데 냄새가 그렇게 불쾌하지는 않다. 가끔 칫솔로 엉덩이를 닦아 주는데 그럴 때 사향 냄새가 나는 방귀를 뀐다는 것이 좀 귀엽다고나 할까.
사실 거북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기에(거북이를 입양한 건 남편의 영향이 컸다) 나에게 거북이의 이미지는 여느 동화에 나오는 거북이와 같았다. 느리고, 목과 다리가 매우 짧아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왠지 평화주의자일 것 같고 현명할 것 같다. 거북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거북이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먼저, 거북이는 느리지 않다. 발에 붙어있는 물갈퀴를 이용하면 물속에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물속에서만 빠를까? 아니다. 육지에서도 꽤 빠르다. 물론 빠름의 대명사인 토끼와 겨루지는 못할 속도지만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방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는 된다. 두 번째, 목이 굉장히 길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참 신기했는데 목의 길이가 몸통 길이의 3분의 2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보통 거북이를 그릴 때 목과 다리의 길이를 비슷하게 그리게 되지 않나? 한 번이라도 목을 쭉 뺀 거북이의 모습을 보게 되면 당신의 그림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세 번째, 생각보다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배가 고픈 상황이면 덩치가 큰 쪽이 작은 쪽을 밟고 헤엄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작은 쪽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먹이를 손으로 주다 보니 가끔 손가락을 깨물리는 경우가 있는데 굉장히 아프고 피도 난다. 조심할 것!
내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누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 또는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같은 무의식적 세뇌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찬찬히 돌아보자면 나는 이런 특성들을 갖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성격이 좋다', '마음이 여유롭고 허용적이다', '친구가 많고 사교적이다', '도전정신이 뛰어나다', '즉흥적인 것을 좋아한다', '언제나 밝고 친화력이 좋다' 등. 몇 년 전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혼자만의 시간을 오래 가져본 결과 위의 것들 중 나와 딱 들어맞는 특성은 몇 개 없었다. 예를 들어 도전정신의 경우, 나는 생각보다 낯선 활동을 하는 것을 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 방법을 알고 있는 안전한 방법을 추구할 때가 많다. 친구들과 관련된 특성은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점인데 서른이 다 돼서야 차츰 깨닫는다. 나는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중요하고, 익숙하고 친근한 사람의 곁에서 편히 쉬는 것을 더 선호한다.
되돌아보면 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활발하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대담한 인간이 되고 싶었나 보다. 이상향을 설정하고 나서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그 방향으로 몰아붙이며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도 이렇게 행동해야 해'라고 스스로를 옥죄어왔던 건 아닐까.
결국 거북이는 거북이로 살다가 거북이로 죽는다. 나도 나로 살다가 나로 죽겠지.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죽기 전까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 알 수 있을까 싶다. 그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울 때는 가만히 포도와 베리를 바라봐야겠다. 단지 거북이로서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나도 내 자연스러운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