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어릴 적 첫인상만으로 무조건 악역일 거라고 넘겨짚었던 캐릭터, 가마 할아범. 가마 할아범은 온천의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요괴로, 여섯 개의 거미 같은 긴 팔을 가지고 있다. 여섯 개의 긴 팔이 빠르게 움직이며 한 손은 약재를 가마솥에 집어넣고, 한 손은 약패(약수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한 패)를 확인하며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주전자로 물을 마시는(물론 다른 세 개의 손도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등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내는 할아버지다. 그야말로 바쁘다는 말을 하기도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세계에서는 마녀가 일을 하지 않는 존재를 돼지로 만들어버리는데, 이 신세를 면하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 치히로를 은근히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가마 할아범처럼 여분의 팔이 없지만 욕심이 많은 편이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결과는 좋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주로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이렇다.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동시에 조리하면서 상추를 씻고 싶은 상황이다. 먼저 냉동해 둔 돼지고기를 전자레인지로 해동한다. 해동이 되는 걸 기다리는 사이에 볼에 계란을 몇 개 풀고 소금 간을 한다. 물을 받은 볼에 상추를 담가 놓고 냄비에 김치찌개 재료를 넣은 뒤 끓인다. 글로 적으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운용하는구나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냉장고를 연 김에 맛술, 고춧가루, 김치, 계란 등을 한꺼번에 꺼내고 싶어서 괜히 여러 가지를 옮기다가 계란을 깬다던가, 상추를 씻을 물을 받는 그 찰나의 시간까지 활용하려고 다른 일을 하다가 물이 넘친다던가. 국을 잠깐 데우려고 냄비를 불에 올려둔 채 다른 소일거리를 하다가 다 태워먹는 일은 일상이다.
청소하는 광경은 더 심하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으려고 가는 길에 바닥에 버려진 택배 포장지가 있으면 그걸 버리려고 줍고, 또 그걸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가는 길목에 어항에 이끼가 끼어 있으면 이끼 제거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추워서 겉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안방으로 가서 팔 한 짝을 끼워 넣다가 거울이 더러우면 그 상태로 거울을 닦는다. 그러고 나면 내가 처음에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기 일쑤다. 부끄럽지만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효율적'으로 살지 못해 안달이 났던 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도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칭찬은 종종 들었으나 어디까지나 칭찬의 의미였지 이렇게 정신 사나운 지경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걸 하는 사이에 저걸 하면 시간이 딱 맞아서 효율적이겠지'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건 직장을 다니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직업 특성상 한꺼번에 여러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틈틈이 다른 자잘한 업무를 끼워 넣어 일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업무 속도가 빨라지는 듯했으나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정확도가 낮아졌다. 한때는 멀티태스킹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지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원래부터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걸 하려고 하니까 그 결과가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요즘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집중해서 끝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잠시 틈이 생기면 '이 시간에 저 일을 끼워 넣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애써 못 본 척하고 있다. 대신 지금 내 감정이나 생각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나는 왜 청소를 얼른 끝내버리고 싶을까, 왜 급한 일도 아닌데 마음이 급할까' 같은 생각 말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지 않는다고 마녀가 나를 돼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아닌데 좀 천천히 살아가자. 채소를 썰다가 재료의 향을 맡아보고, 빨래를 하다가 창 밖으로 하늘도 한 번 구경하고. 가마 할아범도, 돼지도 아니고 '그 순간의 나'로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