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훤한 아줌마가 될 거야
좌석 번호 18번. 복도 자리였다. 버스 앞에 달린 좌석 화면을 봤다. 옆자리인 17번 좌석은 비어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올랐다. 누가 내 옆에 앉을까. 내심 불안하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3시간 반. 막히면 4시간. 쩍벌남 아저씨를 만나면 불행할 것이다. 짐 많은 사람을 만나도 불편할 것이다. 앞자리 사람도 잘 만나야 할 것이다. 뒤로 의자를 획 젖혀버리면, 꼭 한마디 하리라 다짐했다. 내 옆에 아무도 앉지 않는 것이, 옆 자리 사람이 표는 끊었지만 시간을 놓쳤다든가 해서 다음 버스를 탄다든지 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나는 더운 땀을 흘리며 17번 좌석 주인의 작은 불행을 조용히 기도했다.
“잠시만요.”
앳되고 수줍은 목소리. 젊은 여자였다. 예의 바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켜줬다. 감사하단다. 뭘요. 이 여자가 버스를 놓치는 최상의 상황은 누리지 못했지만, 어쨌든 안심이 된다. 우리는 서로 불편하지 않게, 적당히 경계하며, 적당히 예의 바르게, 편안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준비한 책은 은유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였다. 집에서 준비해 간 모리 히로시의 ‘작가의 수지'는 분량이 많지 않아 집에서 고속터미널로 가는 길에 거의 다 읽어버렸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기 전 서점에 들러 집어온 책이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이다. 고속버스에서 읽을 책은 이왕이면 재밌는 책이라야 했다.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책이라야 했다. 정신을 차려보면 목적지에 와 있을 수 있게. 예전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책은 재밌었다. 피식, 웃음이 나는 부분이 있었다. 소수자 이야기가 많아 그런지 이따금 알게 모르게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다. 입원한 엄마를 보고 오는 길이어서 그런지, 엄마, 딸 이야기가 나올 때는 별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와버렸다. 휴지도 없는데. 손으로 대충, 눈물이 아닌 척 얼굴을 닦았다. 17번 여자는 옆에 이상한 여자가 탔구나, 했을 거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를 내버려둬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준 것이 괜히 고마웠다.
버스는 이인 휴게소에서 정차했다. 화장실을 갔다가 뭘 파나, 구경해봤다. 먹을까 말까. 최대의 고민이다. 휴게소 간식은 먹으면 속이 부대껴서 후회하고, 안 먹으면 아쉬워서 후회힌다. 무엇을 선택하든 불행해지는 나다. 그러니, 그냥 그때그때 당기는 대로 하면 된다. 오늘은 당긴다. 가래떡 구이가 눈에 보였다. 저건 핫바나 핫도그처럼 속이 많이 부대끼지 않을 것이다. 가격도 싸다. 2,000원. 주문하니 어라, 두 개나 주신다. 이렇게 많이 먹고 싶진 않은데.
18번 자리로 돌아왔다. 17번 여자는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앉아있다. 하나 줄까. 괜히 말 붙이면 불편하려나. 따뜻할 때 하나씩 딱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에라이. 일단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적당히 구워지고 속은 말랑말랑, 따뜻하다. 음….
“이거 하나 드실래요? 너무 많아서….”
“아… 아뇨 괜찮아요.”
여자가 웃음을 한껏 지어 보이며 말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이런 상황, 많이 겪어봤다. 다만 지금까지는 내가 저 젊은 여자였지. 떡을 주는 사람은 내가 아닌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었고. 수줍음이 많이 없는 사람들. 정이 많은 사람들. 옆 사람 생각을 한 번쯤 해보는 사람들. 광주로 내려갈 때 옆자리에 탄 70대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나한테 말을 거셨다. 나는 맞장구를 쳐줬고, 그런 탓에 우리는 한 시간 내내 말을 했다. 나는 할머니의 거의 모든 걸 알아버렸다. 서울 사는 첫째 아들 집에 매주 올라가 손녀 손주를 키우시는 일, 손녀가 갖고 싶어 한 별 달린 신을 구하느라 고생한 일, 광주 집에 비둘기가 매일 날아와 새끼를 까느라 그 똥 치우느라 힘들어 죽겠다는 말, 둘째 셋째가 시집 장가를 안 가 걱정이라는 말. 나는 맞장구뿐, 거의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보다는 수줍어하는 사람이어서. 할머니가 자꾸 물어봐주셨다. 어딜 가냐고. 엄마가 많이 아프시냐고. 고생하시겠다고. 시집은 갔느냐고. 아들이 장가를 안 가 어머니도 아마 걱정이실 거라고. 남광주 쪽으로 간다고 하니 버스에서 내려서 같이 가면 되겠다며 좋아하셨다.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같이 가진 못했지만, 낯선 이와 착 달라붙는 할머니의 경계 없음과 오지랖이 참 요새 것 같지 않아 조금, 좋았다.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이는 아주 일상적으로는 끼니마다 밥 차리는 엄마의 고단함을 남편과 아들이 알아보는 것이고, 음식점이나 경비실에서 일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하는 것이다. 혹서기도 혹한기도 예외 없이 캐리어 위에 방석 하나 깔고 앉아 깐 마늘을 파는 할머니의 다 닳아빠진 엄지손톱을 보면서 그의 삶을 가만히 헤아리는 일이다.”
- 은유, 싸울수록 투명해진다
17번 좌석의 그녀와 18번 좌석의 내가, 딱히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다만 우리는 소소한 불편을 겪어봤다. 쩍벌남 옆에 앉아서 가는 4시간의 불편함. 의자를 뒤로 확 젖혀버리는 앞좌석의 무례함. 여자라는 이유로 조금 더 조심하고 불안해야 하는 여정. 나의 안심은 거기에서 온 것이었다. 이 사람은 나의 불편을 알아보겠구나. 우리는 서로 조심해주겠구나.
그러고 보니 작은 몸을 더 조그맣게 웅크리고 가던 그 할머니. 우리 엄마의 고생과, 그 엄마를 보러 가는 나의 심경까지 바라봐주시는 그 할머니는, 눈이 참 훤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나도, 눈이 훤한 아줌마가 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