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마지막 커피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말했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더니 입을 오물거리는 더스틴. 오전 9시 10분. 우리는 철원군 동송 시내의 던킨도너츠에 앉아있다. 계획대로라면 10분 후 백마고지행 버스를 타야 한다. 10분 전, 동송 버스터미널로 갔지만 백마고지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여기가 아니라고, 길 건너서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거기서 타면 된다고 터미널 직원이 말해준 터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버스는 9시 5분에 가고 없었다. 다음 버스는 10시 5분에 있다. 그래서 하릴없이 던킨도너츠에 앉아 커피나 마시고 있는거다. 계획에 없던 커피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는 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더스틴, 우리 좀 바보 아니냐. 버스터미널이 있는 동네라고 모든 버스가 터미널에서 떠날 거라고 생각하다니.”
“이제 그런 바보짓 할 일도 없어. 백마고지로 가는 버스를 탄 이후에는, 당분간 차 탈 일은 없을 테니까.”
커피는 어느새 반 잔이 남아있다. 한모금 한모금이 아깝다. 당분간 차 탈 일도 없겠지만, 커피를 마실 일도 거의 없을 거다. 국토종단이 시작된 후에는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겠다는 건 우리가 정한 국토종단 행동강령 중 하나다. 국토종단을 위해 우리가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닷새 엿새를 연달아 걷고 하루 이틀 휴식을 취한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커피는 쉬는 날에만 마신다. 인터넷이나 메신저 사용도 쉬는 날에만 사용한다. 차를 타지 않는다. 하루 한끼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다. 가능한 해당 지역 특산품을 먹는다. 매일 글을 쓴다.
“근데, 백마고지에는 왜 가야 한다고?”
더스틴이 물었다. 야 내가 몇번을 말하냐. ‘철마는 달리고 싶다’ 때문에 간다니까. 백마고지에 가면 철마가 있어. 남북 단절 때문에 멈춰버린 철마야. 녹슨 철마와 함께 녹슨 싸인도 하나 서 있는데, 거기 비장하게 쓰여 있어.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뭔가 의미 있잖아.”
“무슨 의미?”
“최북단이라는 의미. 남쪽을 향해 걷는 여행의 시작으로 꽤나 의미심장하잖아.”
한 모금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내고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는 20여분 정도 시골길을 달린 후에 백마고지역에 우리를 뱉어냈다. 역사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새로 세웠는지 때 하나 안 탄, ‘백마고지’라 써진 파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써진 하얀색 표지 역시 물티슈로 갓 닦아낸 듯 깨끗하다. 옛날에 교과서에서 봤던 이미지는 저게 아닌데…. 저거보다 한참은 녹슬어있어야 하는데…. 표지에서 쇠껍질이 뚝뚝 떨어지고 막 그래야 하는데…. 중얼거리는 내 옆에 선 더스틴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기다. 저기 관광안내소 있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요. 그게 저거예요?”
관광안내소 창구는 마치 매표소처럼 되어있었다. 작은 구멍들이 규칙적으로 뚫린 플라스틱 창문 뒤로 갓 세팅한 듯 풍성한 파마머리의 중년의 여성이 보였다. 철마요?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되물었다. 아 그 철마…. 그거 여기 아닌데.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입술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건 백마고지역이 아니고 월정리역이죠.
“아…. 월정리역이구나. 여기서 멀어요? 걸어갈 수 있어요?”
“걸어간다고? 걸어가긴 멀지. 그리고 걸어갈 수도 없어. 안보 지역이라 안 돼요. 거긴 투어로만 갈 수 있어요.”
“투어요?”
더스틴이 되물었다. 관광안내소 옆으로, 안보관광을 안내하는 커다란 표지판이 보였다. 안보관광에는 다양한 코스가 있었다. 월정리역으로 가려면 백마고지역에서 시작해서 철원평화전망대, 제2땅굴, 월정리역 등을 거치는 안보관광 코스에 참여하면 된다.
“투어는 좀 그렇지 않아?”
내가 입을 뗐다. 차를 타지 않는다는 행동강령까지 정했는데, 첫날부터 차를 타는 건 좀 아니잖아. 그리고, 국토종단의 첫 발을 투어로 시작한다는 게…. 이상하잖아.
“음….”
더스틴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가격이 1만 5천 원. 둘이면 3만 원….
“가격은 왜? 하게?”
“아니 뭐 좀 생각을 해보자는 거지.”
“생각을 하긴 뭘 해. 처음부터 끝까지 걷자고 온 여행을 차를 타는 투어로 시작할 순 없어.”
“그게 아니고 내 말은….”
꼭 투어를 하자는 게 아니고, 월정리역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거지.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백마고지역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하고 싶다는 건 너였잖아.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거야. 국토종단을 ‘철마는 달리고 싶다’에서 시작하는 거랑 혹은 차나 투어의 힘을 빌리지 않고 걸어서 시작하는 것 중 어느 게 우리에게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보자고.
“아, 오늘 그 투어 못하겠다. 최소 인원이 10명은 돼야 출발하거든요. 월요일인데 사람이 더 올 리도 없고.”
안내소 창문 저 너머로 사라져 커피믹스를 홀짝이던 직원이 다시 창가로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있어요."
직원이 덧붙였다. 안내소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 한 명이 막 소개를 받은 토크쇼 게스트처럼 두 발짝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뒤로 택시 한 대가 보였다.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안내소를 떠났다.
잘됐네. 앞으로 걸어가던 더스틴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택지 두 개 중 하나가 사라졌으니, 남은 선택은 하나야.
“철마가 달리고 싶은 곳에서 시작할 수 없다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최북단에서 시작하면 돼.”
“그게 어딘데?”
“백마고지 기념관.”
“에잇…. 멋때가리 없이.”
시작이다. 철원에서부터 부산까지, 800km 너머를 향한 우리의 걸음.
백마고지 기념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노동당사로 이어지는 5km 거리의 찻길을 걸었다. 도로 왼쪽은 수풀로 덮여있었는데, 수풀과 도로 사이는 가시철조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지뢰(Mine)’라고 적힌 새빨간 경고 표지와 함께.
“우리가 걷는 이 동네 이름이 대마리거든? 어제 찾아봤는데, 여긴 원래 북한 땅이었대. 1967년인가 남한 땅이 되고 나서 정부에서 사람들을 이 마을로 이주시켰나 봐. 북한 바로 아랫동네니까, 여기다 사람들 살게 하면 농사지어서 식량도 늘고, 아무래도 사람이 살고 있으니 북한이 쳐들어오면 대응도 빠르고 그렇다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천막에서 살면서 농사지을 땅을 개간하고 그랬는제데, 전투 지역이다 보니까 땅에 묻힌 지뢰들이 아직 많았던 거야. 그거 제거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았대.”
“그게 아직 제거가 다 안 된 거야?”
“그러니까 지뢰 조심하라고 이렇게 표시가 되어있겠지…. 갓길에 너무 바짝 붙어서 걷지 마. 지뢰 밟으면 어떡해. 지금 시대에 지뢰라니….”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사라지거나 아물기 마련이라던데, 지뢰는 제거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구나. 그런 나라에 살고 있었구나 우리. 아직 불발 지뢰가 땅 아래 묻어져 있는, 전쟁 중인 나라. 지뢰 경고 안내판의 새빨간 색감은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초록색 논밭의 색감과 묘하게 어울렸다. 삼거리에 닿자 벽돌색 도로 표지판이 보였다. 앞으로 쭉 가면 3km 노동당사, 좌측으로 8km 가면 월정리 전망대. 가지도 못하게 할 거면서 뭘 저렇게 적어놨지. 예전에는 갈 수 있게 해 줬던 건가…. 8km면 걸어서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거리인데. 아무리 북한이라지만 지척에 있는 곳인데, 투어가 아니면 못 간다니. 심술 나.
“저기 군인들한테 한 번 물어볼까?”
군 검문소가 보였다. 뭘 물어봐? 더스틴이 되물었다. 혹시 월정리 전망대에 들어갈 수 있는지 말이야. 관광안내소에서는 투어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군인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잖아. 군인들이 관리하는 곳이니까 권한이 있을 테고, 그러니 상황이 되면 잠깐 허락해줄 수도 있고.
“물어본다고 손해 볼 건 없는데….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잘 모르겠네. 월정리 전망대를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가야 하는 이유가 뭐야?”
“야, 내가 몇 번 말하냐. ‘철마는 달리고 싶다’! 거기에 그 녹슨 문구가 서 있다니까? 이 여행의 의미심장하고 시작을 위해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군부대 앞을 슬쩍 엿봤다. 군인 한 명이 100살은 넘은 고목처럼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종일 저렇게 움직임 없이 서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까…. 지루하기도 할 거고…. 우리는 군인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군인은 기다란 장총을 들고 있었다. 저거, 진짜 총이겠지? 가지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시작된 발걸음이 나를 천천히 군인 앞으로 데리고 갔다. 군인이 총을 슬쩍, 뒤로 뺐다. 이 군인,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앳되다. 하긴, 20대 초중반 정도일테니.
“저기요.”
나의 말에 군인의 눈이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슬쩍, 내 쪽으로 움직였다.
“저….”
너무 캐주얼한가. 군인처럼 말해야 하나. 나름 사회생활을 해 본 경험을 살려 좀 더 사무적이고 공적으로 말해볼까. 배낭을 앞뒤로 메고 머리를 하나로 대충 묶은, 트레이닝 바지와 트레킹화를 신은 우리의 모습은 우리 앞에 선 군인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호국-여행, 군복-츄리닝, 총과 방패-배낭, 짧게 깎은 머리와 군모-대충 묶은 긴 머리. 전혀 다른 세계의 두 존재가 마주한 대립. 이질감. 불편함.
“저희가 국토종단 중인데. …. 오늘이 그게. 첫날이거든요. 월정리역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거기까지 걸어갔다가 금방 나오면 안 될까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저기요! 하고 크게 내지른 내 목소리는 '국토종단'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월정리역'에서부터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최전방에서 심각하게 국방을 지키고 있는 군인 앞에 서서 재미없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기분이랄까. 괜히 왔다. 괜히 물어봤다. 아무도 말이 없다. 질문을 띄운 나도, 질문을 받은 군인도, 내 옆에 선 더스틴도. 군모 아래로 동그랗게 그늘진 군인의 앳된 얼굴에 시퍼런 당황이 묻어났다.
“그게…. 걸어가실 수는 없을 텐데…. 차를 타야 갈 수 있는데…. 상병에게 여쭤볼게요. 근데…. 상병이 지금 안 계셔서….”
답변 내용은 반갑지 않지만, 어설픈 말투는 꽤 반갑다. 군복에 군모를 쓰고 있을 뿐, 총을 들고 있을 뿐, 그도 우리처럼 어설픈 면이 있고 당황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그렇구나. 감사해요. 괜히 곤란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내 말에 군인이 살짝 미소를 보였다. 감사합니다. 더스틴이 덧붙였다. 다시 노동당사 방향으로 걸었다. 이제 고집 그만 부릴게. 철원 최전방 지역에 와서 안보 지역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니, 너무 무모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내가 말했다. 그래. 백마고지역에서 이미 여행의 첫걸음을 시작한 거야. 그러면 된 거지. 더스틴이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5분쯤 걸었을까. 도로를 잡아먹을 듯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군용 차량이 등장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태워드릴게요.”
멈춰선 차의 뒤 칸에 타고 있던 군인이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아니에요. 저희 국토종단 중이라 걸어가고 있어요.”
근데 잠깐. 저 사람들 군인들이잖아. 군모가 살짝 비뚤어지고 군복도 슬쩍 헐렁하게 입은 것이, 아까 군부대 앞에 서 있던 병사보다는 짬밥이 훨씬 되어 보이는데…. 한 번만 더 시도해볼까? 월정리 전망대까지 걸어서는 못 가더라도, 군인들이랑 가면, 그것도 군인들 차를 타고 가면 갈 수 있지 않을까? 군 검문소까지는 어차피 아까 관광안내소에서 백마고지기념관으로 갈 때 이미 걸었던 길이니까, 되돌아 가는 길에 차를 탄다고 해서 차를 안 탄다는 행동강령을 어긴다고 할 수도 없어. 이미 걸음은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기회가 왔을 때 월정리 보고 가면 좋잖아. 쌀알을 발견한 참새의 날갯짓처럼 빠른 나의 속삭임에, 더스틴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런데요. 저희가 월정리역에 꼭 가고 싶은데. 오늘 월요일이라 월정리 들르는 안보 투어는 인원이 안 차서 운행을 안 한대요. 그래서…. 혹시 이 차 타고 갈 수 있을까요? 군용 차량이니까 갈 수 있지 않아요?”
“아…. 그래요? 일단 타세요. 저희랑 같이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갈 수 있지 않아?”
군인이 옆에 앉은 다른 군인에게 물었다. 될 거 같은데? 옆자리 군인이 말했다. 나는 신이 나서 차에 올라탔다. 타도되는 거야? 더스틴도 머뭇대며 차에 올랐다. 타도되지. 네 외국인 얼굴이 한몫한 거니까 편히 타. 나 혼자 걷고 있었으면 본 척도 안 하고 가버렸을 거야. 푹신한 카시트에 앉아 앞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방지턱을 지나던 지프가 덜컹거렸다. 가방 속 수첩이 공중으로 붕 떴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군인이 몸을 비틀어 우리를 돌아봤다.
“국토종단하시면, 철원에서 어디까지 걸으시게요?”
“아 그게…. 부산. 부산이요.”
내가 말했다. 부- 하고 발음할 때 파르르 떨리던 입술이 산-하고 발음하자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을 털어냈다. 걷기 시작한 지 고작 두 시간. 벌써 이렇게 말해버려도 되나. 부산에 간다고. 걸어서 부산까지 갈 거라고. 한국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걸을 거라고. 걷는 동안 30년 가까이 산 이 나라에 대해, 그리고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에 대해 생각해 볼 거라고. 부, 산, 이라는 소리를 내기 위해 부딪힌 두 입술과 혀가 지나간 자리에서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묘한 맛이 났다.
지프차가 다시 덜컹, 우리를 들었다 놨다. 마음이 부- 하고 떨렸다. 여행이 데려다 줄 인연에의 예감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새로운 여행에의 기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