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뒷감당은 너그러운 타인의 몫이 되어버렸을까

by 두지

빠르게 움직이던 더스틴의 두 발이 멈췄다. 더스틴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봤다. 하늘. 빗방울. 뚝, 내 오른쪽 눈가로 떨어졌다. 고개를 내렸다.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쩌지?”

“뭐…. 이 정도면 더 걸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빗방울이 굵고 잦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100m 앞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배낭을 벗어 의자 위에 내려놨다. 우리는 각자의 배낭에서 우비를 꺼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더스틴이 물었다.

“일단 자등리 방향으로 가야 하긴 하는데…. 어디까지 가야 숙소가 나올지는 모르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는 게 문제지.”

“…. 가자.”

그래, 가자. 어딘지는 모르지만, 가자.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안경알 위에 달라붙은 빗방울 사이로 앞길이 어렴풋이 보였다. 연두색 버스가 빗물을 튀기며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은색 머리를 뽀글뽀글하게 만 할머니 한 분이 버스 창문 너머 우리를 바라봤다.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오토바이에는 하얀 비닐 우비를 뒤집어쓴 중년 남자가 타고 있었다. 여행 다니시나 봐요?

“걸어서 다녀요?”

남자가 물었다.

“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부산이요.”

“부산? 여기가 철원인데?”

“네. 부산에 가요.”

“아휴…. 힘드시겠네. 근데 왜 걸어요?”

…. 왜냐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옆에 선 더스틴을 슬쩍 바라봤다. 뭐라고 하지. 한국이 지긋지긋해서 떠나려고요. 한국과의 이별 여행인 셈이죠. 걸으면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저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보고, 뭐 그러려고요. 근데 그게 맞나. 정말 그런 이유로 걷고 있는 건가.

“글쎄요….”

딱히 멋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 앞으로를 위해 단순명료하고 비장한 의미나 목표 같은 걸 생각해둬야 하려나. 자연 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기금을 모금한다든지. 세계 평화를 위해 걷는다든지. 정치 시위를 하고 있다든지. 나도 언젠가 해보고 싶네. 여행 잘해요. 화이팅입니다! 남자가 하늘 위로 주먹을 치켜세우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집 괜찮아? 계속 걸을 수 있는 거야?”

뒤뚱거리는 더스틴의 발걸음. 걷기는커녕 발을 딛고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인다. 어디 한 번 봐봐. 내가 말했다. 됐어, 봐서 뭐 하게. 그러지 말고 쪼리 벗어봐. 더스틴이 멈춰 서서 신발을 벗었다. 더스틴의 하얀 발바닥이 드러났다. 물집은 두 배 크기로 커져 있다.

“어떡하지…. 비도 오고, 물집도 났고, 근처에는 민박도 없는 것 같고….”

“일단 조금 더 걸어보자. 뭔가 나오겠지.”

더스틴이 말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작은 교회가 보였다. 저기서 어떻게 뭉개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교회를 향해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사님 전화번호가 써져있길래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교회 위쪽으로 작은 집이 보였다. 붉은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작은 건물 가운데로, 학과 산과 달 등이 그려져 있는 단단한 철문이 나 있는. 저 집에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넌 발 아프니까 여기 있어, 내가 가서 물어볼게. 계단을 올랐다. 철문 앞에 서서 잦은 숨을 진정시켰다.

“계세요?”

문을 두드렸다. …. 괜히 두드렸나. 진짜 누가 있으면 어쩌지. 문을 열고 누가 나오면 뭐라고 말하지. 아니지. 누가 없으면 그땐 어떡하나. 오늘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나.

“…. 네 잠시만요!”

이런. 철문이 열렸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의 등장. 여자의 어깨 뒤로 푹신한 소파가 보였다. 집 안에서 달콤한 믹스커피 향내가 풍겨 나왔다. 동그란 안경 속에 담긴 여자의 두 눈이 나를 훑었다. 쿵쾅대던 심장이 여자의 부드러운 인상 덕에 점차 제 속도를 찾아갔다.

“무슨 일이세요?”

“아 저 그게…. 남편이랑 국토종단 중인데. 근처에 적당한 민박도 없고 해서…. 혹시 여기 아래 교회 마당에다 텐트 치고 하룻밤 잘 수 있을까 하는데. 교회에 아무도 없으신 것 같고…. 목사님 번호가 적혀있긴 한데…. 전화를 안 받으시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난. 말 좀 똑바로 할 수 없을까.

“아 그럼. 교회 지인한테 전화 해볼게요. 여기서 잠깐 기다리실래요?”

다행이다. 두서없는 내 말을 용케도 알아들어 줘서. 여자가 문을 닫았다. 2분여간의 시간이 지났다. 불편하다. 괜히 귀찮게 한 것 같아서. 불안하다. 안된다고 할까 봐. 되겠지. 지인이 있다고 하니까…. 안된다고 하면 어쩌지. 이 빗속에 어디로 가야 하지.

“텐트에서 자지 마시고.”

여자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

“불편하시잖아요. 비도 오고. 교회 방문 열려있다고 들어가서 자시래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마당에 텐트 치면 돼요.”

“어차피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쓰시면 된다던데.”

“아니에요. 마당도 괜찮아요. 번거로우셨을 텐데, 교회에 연락해주셔서 감사해요.”

더스틴이 있는 마당으로 돌아갔다. 감사한 분이네. 다행이다. 비 쏟아지기 전에 잘 데를 구해서. 배낭에서 텐트를 꺼내며 더스틴이 말했다. 여기 좋다. 마당에 잔디가 깔려있어 바닥도 푹신하고.

“근데, 우리 먹을 거 없어. 배고프지 않냐.”

내가 말했다. 잘 곳을 해결하고 나니 허기가 올라온다.

“하룻밤 굶지 뭐.”

“안돼. 너는 배고픈 거 잘 참으니까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안돼. 나 배고프면 괴물 되는 거 몰라? 밤새 잠도 못 자고, 책도 못 보고, 오직 배고프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오롯이 앉아 너를 괴롭힐 거야.”

“그건 싫다. 먹을 게 하나도 없어?”

“에너지바 두 개 있어. 이걸로는 턱도 없어. 비 더 오기 전에 라면이라도 사 올까 봐.”

“근처에 상점 있는지 보자.”

핸드폰 지도로 상점을 검색해봤다. 안 뜬다. 어떡하지. 배가 고픈데. 밤이 깊어지면 더 고파질 텐데.

“상점이 너무 작아서 지도에 안 나오는 걸 수도 있어. 아까 그 여자분께 물어보고 올게. 근처에 상점 있냐고.

텐트에서 나와 계단을 올랐다. 단단한 철문이 다시 내 앞에 당도했다. 돌아갈까. 너무 염치없이 귀찮게 구는 건 아닌지…. 배 한가운데로 번개 같은 허기가 스치고 지나간다. 하, 그래. 어떻게든 밥은 먹어야잖아. 밥을 먹으려면 귀찮게 구는 수밖에.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동글동글한 여자의 인상에 다시 긴장이 녹아들었다.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도 부드러웠던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한층 더 부드럽다. 감사한 분이다.

“또 귀찮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한데. 혹시 근처에 상점 같은 게 있을까요?”

“아…. 이 근처에는 가게가 없어요. 어쩌지…. 뭐가 필요하신데요?”

“그게…. 라면 같은 거 좀 사려고요.”

이불에 오줌을 지린 벌로 소금을 얻으러 온 애가 된 기분이다. 한심하다. 서른 넘은 나이에 혼자 힘으로 밥 한 끼 챙겨 먹지 못해 쭈뼛거리고 있다니. 아 그래요? 그러시면…. 잠시만요. 여자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한참 동안 기척이 없다. 5분 후. 문이 다시 열렸다. 여자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넉넉히 드세요.”

여자가 쇼핑백을 건넸다. 묵직하다.

“아. 이러려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이왕 챙겨주신거, 염치없지만 라면만 하나 얻어갈게요.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 ”

“아니에요, 다 가져가세요. 이 근처에 가게가 없거든요. 물도 필요하실 테고, 내일 아침도 드셔야 하지 않아요?”

“…. 그건 그런데….”

반박은 못 하겠다. 물은 필요하고, 내일 아침도 먹어야 하니까. 고맙다. 하지만 고마움보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공짜 음식을 얻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라면 하나 미리 챙겨 두지 못한 건 우리 잘못인데, 해결해주는 사람은 왜 타인이 되어야 하나. 우리의 의지로 걷자고 온 여행인데, 어쩌다 뒷감당은 너그러운 타인의 몫이 되어버렸을까.

우울한 심정이 되어 텐트로 돌아갔다. 더스틴은 엉덩이를 씰룩대며 텐트 안에서 침낭을 펼치고 있다. 그의 엉덩이를 툭 쳤다.

“이거 봐.”

“뭐야 이게?”

“윗집 여자분이 주셨어. 먹으라고.”

“뭐가 이렇게 많아?”

“근처에 가게가 없대. 내일 아침까지 두고 넉넉히 먹으래.”

쇼핑백 안에는 우리의 상황을 짐작해봤을 여자의 사려 깊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갈증과 더위를 풀어줄 반쯤 얼린 보리차 한 통. 넉넉한 식량이 될 라면 네 개와 밥 두 덩이, 계란 여섯 개. 곁들여 먹을 갓김치 한 포기. 입가심할 포도 세 송이. 비상식량이 될 초콜릿 한 봉지. 둘이 삼일은 족히 먹을 양이다.

“돌려 드리자.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잖아.’

더스틴이 말했다.

“나도 동의 하는데, 이미 마음 써서 주신 걸 도로 돌려주는 것도 좀 그래. 사실 좀 욕심도 나고….”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도움을 받을 순 있어도….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받는 건 좀 그렇잖아.”

“내일 아쉽지 않을까? 또 종일 먹을 거 못 구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이걸 다 들고 다닐 순 없어.”

그래. 네 말이 맞다. 내일의 끼니를 생각한 욕심은 고스란히 어깨 위로 올라와 짐이 된다. 오늘 이후의 시간, 내일과 그 후를 걱정하는 건 지금의 우리에겐 욕심이고 오만이다. 당장의 끼니를 해결해 줄 수 있으면서도 윗집 살림살이에 크게 축이 나지 않을 음식만 골라냈다. 밥 한 덩이. 라면 한 개. 날계란 두 개. 갓김치 한쪽. 쇼핑백을 돌려드리려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왜요? 다 드시지. 정말 괜찮은데.”

“아니요. 너무 많이 주셔서. 라면이랑 밥, 김치만 좀 챙겼어요. 그거면 충분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텐트로 돌아와 밥과 갓김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좀 먹었더니 살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이렇게 음식을 빠른 속도로 마구 먹고 있으려니 야생에 내던져진 짐승이 된 기분이 들어. 흐흐흐. 더스틴이 말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저기로 옮기자! 더스틴이 주차장 쪽을 가리켰다. 주차장에는 슬레이트 지붕이 달려있었다. 텐트와 배낭을 옮겼다. 투두두두두두두.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비가 슬레이트 지붕 위로 시끄럽게 떨어졌다.

“신기해. 빗소리는 우렁찬데 머리 위로 비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 게.”

내가 말했다. 응, 신기해. 돈 한 푼 안 내고 이렇게 남의 집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처음 본 사람한테 밥을 얻어먹은 것도 신기하고. 더스틴이 말했다.

“근데 마음이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얻어먹긴 했지만…. 돈을 안 내서 그런 건가? 만약 돈을 조금이라도 냈으면 안 불편했을까?”

내가 물었다. 돈을 내면 상대방이 불편해지겠지. 돈 받자고 베푼 친절이 아닌데. 더스틴이 말했다. 근데 그것도 좀 웃기다. 돈을 낸다고 해도 남의 도움을 받는 건 마찬가지인데. 폐를 끼치는 것도 마찬가지고. 근데 돈을 내면 남의 수고로움을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잖아. 이상해 그것도. 내가 말했다.

“그런 거 싫은데. 어찌할 수 없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무력함. 근데…. 이 여행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 같아.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어. 오늘처럼 말이야. 남에게 폐를 끼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돈이 있어도 돈과 물건을 교환할 수 없는 상점이 없으면, 돈 대신 타인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잖아. 민박집 같은 숙박 시설이 없으면 양해를 구하고 남의 땅 위에 텐트를 치는 수밖에 없고.”

맞아. 어쩌면 이 여행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살 수밖에 없다는 거, 타인의 수고가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생각해보게 하는 경험이기도 한 것 같아. 직장생활을 할 땐, 누군가 나의 수고를 딱히 늘 고마워하진 않잖아. 난 월급을 받으니까. 가게에서 뭔가를 살 때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내가 그들의 수고를 진심으로 고마워하지는 않지. 난 돈을 내니까. 사실 그러는 편이 더 편해. 돈을 내고 타인의 수고로움은 잊어버리는 편이. 근데 지금처럼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땐, 돈 대신 마음을 써야 해. 폐를 끼쳐 미안한 마음, 불편한 마음, 그리고 고마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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