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도 못 잤다.
몸을 돌려 누웠다. 더스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가 몸을 반대 방향으로 고쳐 눕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너라고 잘 잤겠니. 장난감 칼처럼 무딘 나도 못 잤는데, 미식가의 혀처럼 민감한 네가 어떻게. 더스틴이 다시 몸을 바로 하고 눕는다. 수달처럼 두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텐트 천에 달린 오렌지색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두 눈을 끔뻑끔뻑. 그의 눈빛에 그가 겪었을 지난밤이 묻어났다. 딱딱한 바닥에 몸을 뒤척이다, 야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을 불안해하다, 앞으로의 잠자리를 걱정하다, 이 여행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급기야는 이 세계와 우주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걱정했겠지. 그러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점점 뚜렷해지는 텐트의 네온 색을 바라보며 지금처럼 한숨을 쉬었겠지.
“더스틴, 추워."
“응, 춥다. 내장까지 추워.”
“우린 어쩌자고 이 손바닥 두 개만 한 스포츠 타월 하나만 덮고 잔 거야? 침낭이 두 개 있으면 두 개 다 쓰면 될 것을, 왜 하나만 바닥에 깔고 잔 거야?”
“그건 마치, 젊은 사람이 늙어서 몸 고생할 거 생각 안 하고 운동을 조금도 하지 않는 거와 비슷한 거지. 어제 오후에는 기온이 딱 좋았잖아. 밤이 되면 기온도 낮아지고, 잠이 들면 체온이 내려간다는 기본 상식은 싹 잊어버린 거야.”
“왜 그런 걸 겪어봐야지만 깨달아? 바보야 우린? 난 팔 저려가지고 한 스무 번은 깼어. 한쪽 팔 베고 자다가 팔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짜릿해져서 벌떡 일어나고, 다시 잠들었다가 또 팔 때문에 깨고…. 오늘 밤에는 네 에어베개를 어떻게든 빼앗고 말거야.”
“절대 못 줘. 내가 이거 살 때 세 번 권유했다. 너도 사라고.”
“됐고. 오늘 밤에는 내꺼야. 6시다. 일어나자. 더 자고 싶은데, 이렇게 차고 불편한 곳에서는 더 자고 싶지 않다.”
밥을 먹어야지. 어제 동송에서 산 거. 그거 먹자. 닭가슴살 캔이랑 강낭콩 통조림. 더스틴이 배낭을 뒤적이며 말했다. 캠핑용 냄비에 닭가슴살과 강낭콩 통조림을 들이붓고 끓였다. 통조림째 날로 먹는 것과 끓여 먹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어디 한 입. …. 우리는 서로를 보며 껄껄껄 웃었다.
“너무 맛없어서 웃음이 나. 웃음이 나는 코믹한 맛이야.”
내가 말했다.
“다 망했어. 나, 텐트에서 자는 거에 대한 로망이 좀 있었거든? 텐트 안에 쏙 들어가서 자면 뭔가 아늑한 느낌일 줄 알았어.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캠핑용 버너에 밥 해먹고 그런 거…. 재밌을 줄 알았는데. 재밌는 게 아니라 웃기다. 네 말이 맞아. 웃기는 잠이고 웃기는 맛이야 진짜….”
“이 여행, 재미있는 여행은 아닐 거야. 주말에 공원 나들이 나와서 걸어 다니다 삼겹살 구워 먹는 그런 재밌는 여행이 아닐 거라고. 너무 불편하거나 힘들거나 맛이 없어서 웃길지는 몰라도.”
“어쩔 수 없지. 이미 시작했는데. 그리고 뭐 재밌기만 한 것보단 좋잖아. 고생 좋아하잖아 우리.”
어제 배를 곯으며 걸었던 걸 생각하며 냄비를 싹싹 비웠다. 커피도 마시자. 더스틴이 말했다. 각각의 무게가 20kg, 13kg이 나가는 배낭 안에 커피라고 없을 리 없다. 마트에서 천 원 주고 산 캠핑용 커피 티백. 접이식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따랐다. 태블릿 PC로 전자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운 후 상쾌하게(?) 맞이한 아침, 휴대용 컵에 따라 마시는 커피. 맛은…. 커피 향이 살짝 스치는 뜨거운 물?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더스틴이 내 손에서 물통을 낚아챘다. 물통 바닥엔 두 방울 정도가 되는 물이 남아있다. 아니, 묻어있다고 해야 하나. 하얀 햇살이 투명한 플라스틱 물통, 그리고 그 안에 묻은 물방울들을 꿰뚫고 지나고 있었다. 눈썹을 팍 구기고 빈 물통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노려보고 있는 더스틴의 얼굴은 마치 ‘고통’을 표현하려는 추상 화가의 작품 같다.
“무슨 소리야! 딱 한 방울 마셨어!”
내 말에 더스틴이 씩씩대더니 물통을 뒤집어 제 입에 털어냈다. 물통 바닥을 손으로 툭툭 친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복잡하다. 한심하다. 걷기 여행을 하면서 물 하나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우리가.
장흥리 어디쯤이다. 도로 길을 걷는다. 두 발에 쇳덩이라도 달린 듯 발걸음이 무겁다. 배낭에는 온 세상이 들어있는 것 같다. 온 세상이 내 두 어깨를 무자비하게 짓누른다. 배낭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의 배낭. 여행에서의 생존과 생활을 위해 필요한 물건만 추출해 넣은 압축물. …. 내 배낭 안의 물건들은 과연 온종일 걸으며 들고 다닐 가치가 있는 필수 불가결한 물건들의 압축물인가? ‘꼭 가지고 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물건이 배낭 안에서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쓸데없는 물건 하나하나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침판. 대한민국 전도. 휴대용 스피커. 알레르기 치료제. 근육통 파스….
“야, 우리 이딴 거 다 왜 들고 다니는 거냐?”
땀에 실컷 젖은 더스틴의 목덜미. 햇살에 그을렸는지 살이 벌겋다. 그가 나를 돌아봤다. 그러더니, 아무 대꾸없이 다시 길을 간다.
“야! 내 말 안 듣냐! 지금 내 배낭이랑 네 배낭 안에 든 물건들을 좀 생각해보라고! 나침판? 나침판이 대체 왜 필요한데? 우리가 무슨 대항해 시대에 대양을 항해하는 콜롬버스냐!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왜 알아야 하지? 그냥 길 따라 걸으면 되는 거잖아. 모르겠으면 스마트폰 지도 보면 되고.”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해서 챙겨 온 거잖아.”
그의 짜증 어린 표정 위로 시뻘건 햇살이 붉게 번져 들었다.
“위급 상황? 야, 그 위급 상황 조금만 더 대비했다간 내 어깨가 위급해지겠다. 대한민국전도? 측량 비율이 너무 높아서 아무 쓸모도 없는데 부피만 크고…. 휴대용 스피커는 왜 가져 왔어? 호루라기는 왜? 알레르기 치료제? 우리가 무슨 첩첩산중 오지를 몇 날 며칠 걸을 것도 아닌데, 알레르기 치료제가 필요하면 시내 약국에서 사면되는 거 아닌가? 파스도 가져왔지 참. 근육통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애초에 근육이 덜 아프도록 짐을 덜 들고 와야지. 우리한테 필요한 건 이딴 게 아니라고. 필요한 건 물이라고, 물!”
더스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봤다. 뭐?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들고 온 나침판이나 한 번쯤 쳐다보시지 그래? 더스틴이 고개를 돌리더니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아니, 저벅저벅이 아니다. 발걸음이 이상하다. 원래 만화 영화 캐릭터처럼 이상하게 걷는 놈이지만 평소보다 더 이상하다. 탭댄스 첫 수업을 듣는 사람처럼 어색하고 위태로운 발걸음이랄까.
“왜 발을 그렇게 하고 걸어? 심심해?”
“야…. 내가 심심해서 이러고 걷겠냐!”
“그럼 뭔데.”
“물집 잡혔어.”
“물집? 아프겠네.”
“그래. 아프다.”
“근데 웃기다. 생각해봐. 알레르기 치료제, 파스, 모기약, 감기약, 설사약. 온갖 게 다 있는데 물집 방지나 치료에 필요한 약은 없잖아. 걷기 여행을 한다는 사람들이. 하하!”
더스틴이 나를 슥, 돌아보더니 다시 뒤뚱뒤뚱, 펭귄처럼 걸음을 옮겼다. 많이 아파? 내가 물었다. 아프지 그럼. 그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얼마나 아파? 어떻게 아파?
“발이 땅에 닿잖아. 그럼 물집도 땅에 닿지. 근데 그래야만 한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집을 땅에 디디는데, 그러면 마치…. 물집 안에 자그마한 바늘 삼백 개가 들어있는 느낌이 들어. 발이 땅에 닿으면 그 삼백 개의 바늘이 내 발바닥을 동시에 찔러대는 거지. 그럼 뭐랄까…. 벼락 맞은 기분이랄까. 온몸에 전기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랄까.”
온몸을 바늘 삼백 개로 찔리고 있는 사람치고는 얼굴이 평온하고 말도 침착하다. 스무 발자국 정도 더 걸었을 무렵. 더스틴이 길가에 멈춰 섰다.
“뭐 하려고?”
“쪼리로 갈아 신으려고.”
“진짜?”
“어. 내 배낭에서 쪼리 좀 꺼내 줘.”
더스틴 배낭 겉주머니에 꽂혀 있는 쪼리를 꺼내 땅바닥에 내던졌다. 더스틴이 트레킹화를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양말을 트레킹화에 구겨 넣고 양손으로 집어 들었다.
“쪼리 신으면 더 아프지 않겠어? 등산화랑 양말을 신어야 그나마 쿠션감이 있지.”
“더 아프라고 신는 거야. 물집과 신발, 신발과 도로 사이 간격을 최소화해서 물집이 가능한 한 땅에 더 많이 디디도록 하려고. 트레킹화를 신었을 때는 바늘 삼백 개가 발에 꽂히는 느낌이었다면, 쪼리를 신으면 한 천 개쯤 꽂히는 느낌일 거 아냐. 계속 그렇게 아파야 해. 그래야 익숙해지지. 익숙해지면 아픔에 무뎌질 테고.”
“…. 난 네가 이상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소리를 할 땐 정말…. 좀 살짝 말이지. 또라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스틴이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걸을수록 앞으로 굽어져가는 그의 등허리. 한 발 두 발 내밀 때마다 펄쩍펄쩍 뛰는, 등산화를 쥔 두 손. 뒤에서 지켜보는 내 등짝이 다 짜릿짜릿하다.
한 시간 가량을 더 걸으니 문혜리다. 속셈학원, 컴퓨터 수리점 등이 있는 걸 보니 꽤 큰 마을인 것 같다. 작은 상점이 보였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어둑한 상점에 들어가 2L짜리 물을 샀다. 목이 너무 말라 빨리 마시고 싶은 마음에 손이 덜덜 떨리는데 뚜껑이 잘 열리지 않는다. 기어코 뚜껑을 열자 병에서 물이 철철 흘러넘쳤다. 물을 입안에 들이부었다. 오른쪽 볼 위로 물이 잔뜩 흘러내렸다. 살 것 같다.
“여행하는 중이에요?”
상점 안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와 물었다. 네. 더스틴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틈을 타 내가 답했다.
“응…. 저기. 옥수수 삶아 놓은 거 있는데 좀 줄까요?”
“네? 아…. 네.”
답해놓고 나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낯선 사람의 호의를 이렇게 덥석 받아버리다니. 나는 낯을 가리는 사람인데. 낯선 사람이 친절을 받아들이면 폐가 될까 하는 마음에,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에 거절하는 사람인데.
“그럼 오케이! 여기 조금만 있어 봐요. 집이 바로 요 앞이라, 금방 다녀올게.”
“아…. 네, 감사해요.”
아주머니가 길을 건넜다. 힘찬 발걸음에 꽃무늬 원피스의 끝자락이 나풀댔다. 일부러 집에 가서 가져오셔야 하는 건지는 몰랐는데. 죄송하다.
“여기. 아침에 삶은 거라서 조금 딱딱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아직 먹을만 할거야. 자.”
다시 나타난 아주머니가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와.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손을 내젓더니 집으로 들어가신다. 검은 봉지 안에는 투명한 비닐봉지가 들어있다. 안에 담긴 노란 옥수수 하나, 까만 옥수수 하나. 아주머니 말대로 조금 딱딱하지만, 배고픈 몸에는 꿀맛이다. 순식간에 옥수수 하나를 해치우고, 아직 반병 정도 남은 물통의 물을 꿀떡꿀떡 마셨다. 이제 갈까? 더스틴이 말했다. 응 가자. 자등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