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흥이 깨져버린 캠핑장엔 아무도 없었다. 캠핑장은 펜션과 함께 운영되는 곳이었다. 캠핑장에 딸린 식당 옆 주방에서 주인아저씨가 나왔다.
“전기 쓰려면 이만 오천 원, 아니면 이만 원 그래요.”
전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싼 옵션을 선택했다. 값을 치르고 잔디밭으로 갔다. 작은 원룸 하나가 들어서도 될 만큼 거대하다.
“우리 텐트 네 개는 들어가겠다.”
내가 말했다. 더스틴이 배낭을 내려놓고 텐트를 꺼냈다. 공간 4분의 1만 쓸 테니까 반만 깎아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말이 되냐. 이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쳇. …. 그래. 이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 우리 같은 사람들 오라고 만들어 놓은 데도 아닐 테고. 도시에서 일하다 놀러 나온 사람들 지내라고 만든 시설이지. 우리같이 작은 텐트를 칠 아주 작은 공간만 필요한 손님은 사장님 입장에서도 좀 귀찮을 거야.”
“무리했으면 여기 캠핑장 아니고 다른 한적한 곳 아무 데나 텐트를 쳤어도 됐겠지만, 첫날이잖아. 첫날밤부터 자다가 쫓겨나거나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건 좀 그래. 앞으로 캠핑장 아닌 데서 캠핑하는 일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워밍업하는 차원에서 좀 안전하게, 정해진 데서 잔다고 생각하자. 돈은 좀 들지만.”
텐트 폴을 천 안에 끼어 넣었다. 탈모가 진행된 정수리처럼 시든 잔디가 듬성듬성 난 흙바닥 위로 고정대를 단단히 박았다. 고리를 끼우니 주황색 텐트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됐다. 집 완성.”
더스틴이 말했다. 응. 집 완성. 앞으로 당분간은 이게 우리 집이야. 두 사람이 들어가면 꼭 끼는, 형광 주황색 텐트. 밝은 카키색 타르프를 두르면 웅크린 벌레 같아 보이는. 우리 집.
텐트 안에 침낭을 깔았다. 오늘 별로 안 춥겠지? 침낭 하나만 꺼내자. 요 용도로 깔자. 침낭 뺐다가 다시 개어 넣는 것도 일이니까. 침낭을 활짝 편 후 손으로 먼지를 털며 내가 말했다. 더스틴이 제 에어 쿠션에 공기를 불어 넣었다. 마트에서 삼천 원 주고 산 싸구려 베개…. 점점 부풀어 오르는 베개를 슬쩍 쳐다봤다. 너 혼자 쓸 거야? 내가 너도 사라고 했잖아. 갈팡질팡하다가 안 샀잖아. 공기를 불어 넣는 주둥이에서 입을 떼고, 더스틴이 말했다. 치사하게…. 됐어. 베개 쓰면 어깨만 아파. 배낭에서 스포츠 타월을 꺼내 돌돌 말았다. 이걸로 어떻게 되겠지.
“그럼 어디, 누워볼까요. 후후.”
궁둥이를 쭉 빼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차게 식은 침낭이 내 몸을 맞이했다. 온종일 짐을 나른 내 가여운 등을 땅 위에 뉘었다. 잔디밭이라 푹신할 줄 알았는데 꽤 딱딱하다. 아, 좋다. 내가 말했다. 딱딱한데, 그래도 누우니까 좋아. 이것도 집이라고 아늑하네. 바늘로 쿡 찌르면 뽁 하고 찢어져 버릴 이 천도 벽이라고 안심이 된다는 게 웃기다. 네온 색 텐트 천 사이로 저무는 햇살이 스며들었다. 집에 다 왔다. 아늑하다.
쿵!
소리 들었어? 더스틴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 텐트 안에 엎드려 누워 일기를 쓰고 있는 참이었다. 그럼 들었지. 땅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는데. 대포 소리지? 더스틴이 다시 묻는다. 응 소리가 저렇게 큰 걸 보니…. 최전방 지역이라 훈련하나 봐. 아까 낮에도 계속 들리더니 밤에도 하나 보네…. 오늘 걷는 길 내내 군용 차량도 지나가고…. 지뢰 경고도 계속 보이고….
쿵!
“계속 이럴 건가.”
내가 말했다. '대포 소리가 들린다’라고 일기에 적었다. 희한한 일이야. 더스틴이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여기는 최전방이니까, 거의 매일 이렇게 총 쏘고 대포 쏘는 훈련을 할 거 아냐. 근데 고작 차로 한두 시간 거리인 서울에서 살 때는 그런 생각 안 하고 살았잖아. 가끔 미국에 있는 우리 가족이 북한의 도발이 심해졌다고, 안전하냐고 메일로 물어볼 때 빼고는…. 그렇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말을 받았다. 잊어버리고 사는 게 마음 편하지. 북한이 바로 위에 있다고, 곧 전쟁이 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철원 땅에는 아직 제거되지 않은 지뢰들이 많다고, 그런 생각을 매일 하면서 어떻게 일상을 살아. 의식적으로 안 보고, 안 듣는 거지. 근데 사실은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거지. 잊어버리고 있을 뿐.
계속 일기를 썼다. 오늘 많은 일이 있었다, 라고 적는다. 백마고지 기념관도 보고, 노동당사도 보고, 관광 온 할머니 할아버지분들도 만나고, 쌀 도정장에서 할아버지와 ‘치프’도 만나고, 짜장면을 먹고, 오덕리 도롯가에서 할머니를 만난 후, 이곳 캠핑장까지 왔다. 총 걸은 거리 17km. 소요 시간 7시간 22분.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엎드려 누워, 혹시나 모를 공격에 대비한 대포 훈련 소리를 들으며 맞이하는 이상한 저녁. 내일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누구를 만나려나. 아침에는 가지고 온 캠핑용 버너로 뭔가 해 먹어야지. 오늘처럼 물이 부족한 상황이 또 닥치면 안 되는데. 오늘은 운 좋게 유료 캠핑장을 찾았는데, 내일도 잠잘만한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내일, 어디쯤 도달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