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시작과 씁쓸한 끝이 담긴, 하나의 완고한 세계

by 두지

“짜장면 먹고 갈래?”

더스틴이 물었다. 쌀 도정장을 나와 한 시간쯤 걸었을 무렵, 짜장면집이 보였다. 그것도 무려 ‘녹차 브로콜리 웰빙 짜장’.

“4천 원이면 먹자.”

내가 말했다.

“5천 원이면?”

“그럼 안 먹어.”

짜장면집으로 다가가 가게 안에 달린 메뉴를 슬쩍 살폈다. 4천 원이야! 내가 외쳤다. 우리는 춤을 추듯 짜장면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니 달콤한 기름 냄새가 콧속으로 달려들었다. 짜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윤기 나는 검은 소스가 잔뜩 뿌려진 짜장면 두 그릇이 우리 앞에 당도했다.

“이 집 이름대로 녹차, 브로콜리, 웰빙, 짜장면 맞네.”

젓가락으로 면발을 비비며 내가 말했다. 녹색 빛이 나는 면발, 소스 위에 얹힌 브로콜리, 아낌없이 들어있는 야채와 고기. 짜장면을 가져다주신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옆에 서서 우리를 지켜봤다. 많이 걸어서 땀을 많이 흘리면,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염분 섭취도 중요한 거 알아? 더스틴이 말했다. 이 짜장면은 걸어서 여행하는 우리에게는 완전식품이나 다름없어. 염분이 많고, 야채도 많고, 콩도 들어있고, 고기도 있고, 이렇게 물도 실컷 마실 수 있고. 야 완전 맛있다. 야 무슨, 지금까지 먹어본 짜장면 중 제일 맛있어. 더스틴이 휴지로 입가의 검은 소스를 닦아내며 말했다. 사장님, 얘가 너무 맛있대요. 먹어본 짜장면 중 제일 맛있대요. 어머 정말? 빨간 앞치마를 입은 사장님이 활짝 웃으신다.

“우리 동네 있던 짜장면집 기억나? 우리 엄마가 너 거기 데리고 갔었잖아. 우리 사위라고, 인사시킨다고.”

“길가에 있던 집 말하는 건가?”

“1층에 있던 곳? 거긴 감자탕집이고. 거기도 가긴 했지. 내가 말하는 데는 2층에 있던 곳. 시멘트 계단이 아주 가파른 곳.”

“아.”

그 중국집이 엄마 아빠가 하던 식당 옆옆에 있었거든. 그래서 엄마 아빠랑 중국집 아줌마 아저씨랑 잘 어울렸어. 근데 엄마 아빠 식당 하기 전에, 그러니까 금은방 할 때는 서로 얼굴만 알았대. 그때는 엄마가 점심시간마다 빨간 바구니에 아빠 점심 담아서 가져다주고 그랬는데, 중국집 아줌마가 2층 창문에서 그런 엄마를 내려다보면서 참 부지런도 한 여자라고 생각했대. 거기도 짜장면 맛있었는데…. 그 아줌마도 여기 사장님처럼 짧은 파마머리에 키가 작았어. 내가 가면 아줌마가 짜장면도 주시고 짬뽕도 주시고….

“그 중국집이랑 식당 중간에 철물점이 있었거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곳이야. 엄마 아빠보다 연배가 조금 더 있으신 내외분이 하던 곳이었는데, 엄마 아빠 식당 차리고 얼마 후 거기 아저씨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어. 그러고 나서 아주머니도 가게에 안 나오셨는데, 몇 년 후에 엄마가 그 아주머니를 길에서 만났나 봐. 아저씨가 없어 너무 쓸쓸하다고 엄마를 붙잡고 울었대. 부드럽게 말아 올린 은발 파마머리가 우아하던 분이었는데…. 그 얘기 들을 때 뭔가 울컥하더라고. 나름의 걱정거리야 다들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소식 주고받으며 늘 곁에 있던 건강한 이웃들이었는데. 병들고, 죽고, 홀로 남겨지고…. 사람 병들고 죽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뭔가 마음이 쓸쓸해. 그런 거 생각하면.”

나 대학교 1학년 때 과외하던 애가 있었거든. 내가 말을 이었다. 더스틴이 나를 바라보며 노란 단무지를 베어 물었다. 나보다 4살 어린애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알던 애였어. 엄마 심부름으로 자주 들르던 시장 쌀집 아들이었으니까. 네발자전거로 시장터를 활주하던 꼬마 시절부터 알던 애가 고등학생이 돼서 내 과외 학생이 된 거지. 이제 대학 졸업한 지도 한참 됐겠다. 근데 걔네 아버지도 재작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 엄마 심부름으로 시장 갈 때마다 얼굴 뵙던 분이었는데…. 걔네 어머니도 나한테 정말 상냥하고 다정하셨어. 아주머니께 안부 인사도 못 드리고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네.

“그 집도 있잖아. 네가 나 데리고 갔던 통닭집.”

더스틴이 말했다. 더스틴은 어느새 그릇의 반을 비웠다. 혹여나 내걸 뺏어 먹을까 싶어 나도 얼른 두 젓가락을 후루룩, 흡입했다.

“…. 어 맞아. 거기도 나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집이야. 어렸을 때 길 건너편에 수희네 엄마 옷가게가 있었거든. 수희 엄마랑 우리 엄마랑 친했어. 수희는 나랑 동갑이었는데 유치원도 같이 다녔어. 수희는 활발한 애였는데 나는 말 한마디도 안 하는 조용한 애였지…. 수희네 아빠였나, 여하튼 어떤 어른이 그 통닭집에 수희랑 나를 가끔 데리고 갔거든. 그 때 그 장면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 어둑한 통닭집 구석, 나무 테이블…. 거기에 조그마한 수희랑 그보다 더 조그만 내가 앉아서 유리컵 한가득 오렌지 주스를 마셨어. 다 크고 대학생 되고 나서는 선희나 민이, 혜진이 같은 친구들 데리고 가서 주스 대신 생맥주 마시고…. 너랑도 가서 생맥주 마시고…. 그 사장 아저씨 정말 성실한 분이셨거든. 그 집 지나갈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아저씨가 닭 튀기고 있는 모습이 늘 보였었는데. 언제까지고 그 유리창 너머로 닭을 튀기고 계실 것 같았는데. 그렇게 자살하실 줄이야….”

짜장면 그릇을 비우고 물을 두 컵 더 마신 후 식당에서 나왔다. 미리 알아둔 캠핑장까지는 3km가 남았다. 우리는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 통닭집, 이제 다시는 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

징검다리를 건너는 더스틴의 등에 대고 내가 말했다. 세찬 물살 소리에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한 발 한 발 징검다리를 짚어 나가는 데 집중을 하느라 그러는 건지, 더스틴은 내 말에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더스틴에게로 전해지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한 번 꺼낸 묵은 기억들이 구멍 난 주머니 안에 든 물처럼 철철 새어 나왔다. 한동네에 오래 살지 않고 일찌감치 동네를 떠났다면 철물점 아저씨의 중년만, 쌀집 아저씨의 웃음만, 통닭집 아저씨의 성실한 모습만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오래 머물다 보니 변화가 보인다. 끝이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 변화나 끝이라는 건, 대부분 쓸쓸한 것들이다. 어린 나에게 세계의 전부였던 우리 동네는 이제, 하나의 완고한 세계가 되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웃음과 기쁨도 있지만 아쉬움과 쓸쓸함, 그을음과 고통이 더 많은, 찬란한 시작과 씁쓸한 끝이 모두 담긴 하나의 완고한 세계.





“뉘 집 딸이여?”

언제 끝날지 모를 걸음이었는데, 걷다 보니 어느새 장흥리에 가까워져 있다. 도로 한쪽에서 텃밭을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우리가 가까워지자 할머니가 챙이 긴 모자 아래 작은 눈을 들어 우리를 올려다봤다.

“이 동네 딸 아니에요 할머니. 그냥 지나가는 길이에요.”

“으잉?"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진 셔츠. 흙 묻은 바지. 바지를 감싼 장화. 팔에 낀 토시와 장갑 낀 손에 든 호미.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으잉? 그럼 어디 마을 사람이야? 오덕리?”

“아니요 할머니! 이 근처 사람 아니고. 서! 울! 서, 울, 에서! 왔어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쳐 또박또박 말해본다.

“이이잉? 여 사람도 아님서. 여긴 왜 왔어?”

“철원에서 부산까지 걸으려고요.”

“으잉? 철원에서 서울까지 걸어간다고?”

“아니요 할머니! 서울에서 철원까지는 버스 타고 왔고! 철원부터 걸어서 부산까지 가려고요!”

“으으으잉? 허이쿠…! 아이 여기 연고지는 있겄지….”

“연고지요? 철원에? 없어요!”

“허이쿠! …. 아아아. 서울 아가씨여어어?”

“네.”

“응. 나도오.”

“아, 할머니도 서울에서 오셨어요?”

“으잉. 나도 서울서 살았어. 10녀언. 글케 살다 다시 고향 왔지. 고향이라 해봤자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서도…. 여가 우리 집이여. 집에 앉아있다가 하도 적적해서 나왔어. 티비도 봤다가 가만히 누워서 천장에 그려진 벽지 무늬도 봤다가…. 워낙 적적해야지…. 아 사람 구경을 못 하니까…. 만날 있어 봐야 사람 구경을 못혀. 그래 이렇게 이쁘게 걸어 다니는구만. 외국 아저씨랑 같이, 응? 하도 보기 좋아서. 그래서 물어봤어.”

…. 아무도 말이 없자 으흥-, 하고 할머니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더스틴이 배낭을 고쳐 멨다. 큼, 흐음. 목 안에 생겨난 뜨겁고 묵직한 것을 풀어내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할머니. 응-. 할머니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나 같은 늙은이는 찍어서 뭐해.”

“할머니가 너무 예쁘셔서요.”

“에이 별말을…. 히히히…. 그럼, 모자는 벗을까?”

아니 모자 안 벗어도 예뻐요. 할머니가 머리를 다듬고 모자를 바로 썼다. 할머니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할머니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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