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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Oct 24. 2021

트레킹 동료와 함께, 와인 파티

허머스, 바다, 그리고 사막: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1,000km 12

“저기…. 물을 좀 얻을 수 있을지….”      

시냇가 옆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일부는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먹고 있고, 일부는 썬베드에 누운 듯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다.      


물? 어이 사라, 식수 어디 있는지 알아? …. 식수? 그건 주인장이 알 텐데. 사라가 히브리어로 주인장을 부른다. 마당 한쪽에 작은 부스 같은 공간에서 젊은 남자가 고개를 내민다. 남자가 마당 아래 연못으로 나를 데라고 간다. 대나무로 만든 호수에서 물이 졸졸 흘러나온다. 대나무 끝에는 필터 기능을 하는 망이 달려있다. 대나무 주둥이에 물병을 대면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주인장이 몸짓으로 시늉한다. 토다(Toda, 감사해요).    

   

트레킹을 시작했던 단 마을에서부터 가지고 다닌 생수병 네 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구깃구깃하던 플라스틱 통이 맑은 물로 가득 채워졌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마당으로 올라갔다. 근데 이 사람들은 뭐지. 와인을 마시며 먹고 떠들고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드는 그녀들. 신나고,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걷고 있는 거야?”

노아라고 본인을 소개한 짧은 머리의 여자가 물었다. 

“응. 오늘은 카파 키쉬(Kfar Kisch)까지 걸으려고. 아직 3시간은 더 걸어야 할 것 같아.”

“우리도 그 트레일 걷고 있는데.” 

“아, 그래? 오늘 어디까지 가?”

“오늘은 끝. 조금 있다가 텔아비브로 돌아가. 다들 직업도 있고 가정도 있는 친구들이라 장기 트레킹을 할 수는 없거든. 그래서 주말마다 만나서, 그 전 주에 걸음을 끝냈던 곳으로 가서 이어서 걸어.”

“아…. 그런 방법도 있네…. 북에서 남으로 걸어, 남에서 북으로 걸어?”

“북에서 남으로. 단에서 시작해서 몇 달 만에 고작 여기에 왔어. 다 끝내려면 아마 1년은 더 걸릴걸? 으하하!” 

“그럼 다음 주에 이곳으로 와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렇지.”

“그것도 괜찮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아, 말린 대추 좀 먹을래? 우린 어차피 오늘 집으로 돌아갈 거라, 트레일 음식이 필요가 없어서.”      

말린 대추, 아몬드, 에너지 바를 얻었다. 신난다. 나무 테이블에 앉아 대추를 집어 먹었다. 자두처럼 큰 이스라엘 대추다. 맛있다.      


우연히 마주친 공간. 그 곳에서 즐긴 동료 트레커들과의 와인 파티.


“어? 카렌, 랄프!”


60대 독일 트레커 커플이 마당으로 들어선다. 카렌과 랄프와는 사흘 전, 미그달 마을로 이어지는 바위산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세 시간 전, 요르단 강을 지나 잠시 쉬어가던 황량한 들판에서 두 번째로 만났다. 지금, 이렇게 세 번째로 다시 마주한다.      


“우린 여기서 묵으려고. 마당 텐트에서 잘 수 있대.”

카렌이 말했다. D와 나의 계획은 이곳을 떠나 카파 키쉬로 가는 거다. 아직 오후 1시. 지금부터 걸으면 해 지기 전까지 카파 키쉬로 갈 수 있을 거다. 여자들이 와인 잔을 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주인장이 음악 소리를 키웠다. 갑자기 파티 분위기다. 살짝 취해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니 카파 키쉬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흐물흐물 녹아버린다. 우리도 오늘은 여기서 멈추고 놀아버릴까….     

 

“자, 다들 일자로 서봐. 내일이 우리 쌍둥이들 생일이거든. 미국에 살고 있어서 영상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려고 해. 다 같이 불러줬으면 좋겠어. 자, S랑 D도. 캐럴이랑 랄프도. 언어가 다 다르니까 영어로 노래합시다, 영어로. 자, 하나, 둘, 셋, 넷!”     

해피 버스데이 투유. 해피 버스데이 투유…. 땀을 뻘뻘 흘리며 황량한 언덕길을 걷다 발견한 오아시스 같은 공간.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느닷없이 부르는, 미국에 사는 쌍둥이를 위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다들 잘했어! 완벽했어!      


“S랑 D는 그럼 엘랏(Eilat, 이스라엘 남쪽 끝 도시)까지 걸어?” 

아델이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다들 환호를 보낸다. 존경스럽네 존경스러워! 대단해! 그녀들의 호들갑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용기가 된다.      


친한 친구들이라는 여자들은 직업이 같다. 작은 보트의 선장(skipper). 텔아비브에서 보트를 타고 여기저기 다닌다. 그래서 하나같이 자유로운 기운이 넘치는 건가. 주중에는 보트를 타고, 주말에는 트레일을 걷는 기운 넘치는 사람들.      


“텔아비브에 도착하면 연락 줘.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재워줄게.”

아델이 내 핸드폰에 번호를 찍었다. 연락처와 대추와 아몬드와 기타 등등의 간식거리를 잔뜩 베풀고 여자들이 떠났다. 휑한 마당에 카렌과 랄프, D와 나, 그리고 영어가 안 통하는 주인장만 남았다.      



“근데,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알아?”

내가 물었다.      


“우리가 가진 모바일 지도에 트레일 엔젤이라고 표시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왔어. 근데 뭘 팔거나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가정집도 아니어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팁(tip)을 넣을 수 있는 돈 통이 있던데 거기에 숙박비를 알아서 좀 넣으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랄프가 말했다. 카렌이 몸짓 발짓으로 주인장에게 커피 네 잔과 와인 한 병을 공수해왔다. 카디멈과 함께 끓여낸 진한 중동식 커피. 커피를 다 마실 때 즈음 트레일 엔젤이 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났다. 고요한 마당에 트레커 네 명과 와인 한 병이 남았다. 커피를 마시던 종이컵에 보랏빛 와인을 따랐다. 각자 가지고 있는 먹을거리들을 꺼냈다. D와 나는 빵과 쿠스쿠스를, 카렌과 랄프는 치즈, 올리브, 햄을 내놓았다.      


“나눌 게 빵과 쿠스쿠스 따위 밖에 없어서 미안해…. 우리가 너무 대충 먹고 다니나 봐.”

D가 말했다. 아니야, S랑 D는 젊으니까. 우리처럼 나이가 들면, 어디서 뭘 하든 잘 먹고 다녀야 하거든. 안 그러면 숨 쉴 힘도 안 나와.      


“근데 이 햄은 무슨 햄이야? 햄을 냉동보관 안 하고 이렇게 가지고 다녀도 돼?” 

“독일에서 가지고 온 건데. 딱딱한 살라미 햄이라서 오랫동안 들고 다녀도 돼. 원래 냉장보관 안 하는 햄이야 이건.”     

신기하다. 지방이 많다. 아주 맛있다. 평소 같으면 지방이 너무 많고 기름지다고 싫어했을 음식인데. 몇 날 며칠을 걸어 다녔더니 입에 지방이 들어가니 꿀맛이다.      


안주거리와 와인을 가운데 두고 많이 이야기가 오갔다. 이스라엘 트레킹을 온 건, 랄프가 트레킹 여행을 좋아하는 카렌에게 생일선물로 사 준 책 때문이다.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을 걸은 젊은 독일 여자가 쓴 독일 베스트셀러. 카렌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고, 뉴질랜드 종주 트레일인 테 아라로아도 걸은 트레킹 베테랑이다. 취미는 암벽등반이다.      


“아! 내 다음 여행 아이디어를 말해줄까?”

카렌이 갑자기 생각난 듯 얼굴을 밝히며 벌떡 일어났다. 텐트로 들어가더니 책을 하나 들고 나온다. 미국의 3대 장기 트레일(PCT, AT, CDT)을 완주한 독일 여자가 쓴, 또 다른 독일 베스트셀러다.      


“오! 우리도 그거 하고 싶은데!” 

“진짜? 정말?” 

나의 말에 카렌의 표정이 해바라기처럼 활짝 폈다. 랄프가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젓는다.     

“한 달이나 3개월도 아니고…. PCT 하나만 걸어도 6개월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 카렌이 하고 싶다면 생각은 해보겠지만, 난 그 정도 열정까지는 없어.” 

“랄프가 안 간다면 나 혼자라도 갈 거야. 내 꿈이야.” 

“그럼 우리랑 가자.”

“정말? 그래, 그러자!”      




해가 지고 주인장이 돌아왔다. 이스라엘 친구 다섯 명과 함께. 친구 중 두 명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오늘 이곳에서 같이 피자를 해 먹기로 했단다. 덕분에 와인 한 병, 그리고 올리브 오일에 절인 신선하고 맛있는 샐러드를 얻었다.      


이스라엘, 독일, 미국, 한국인이 한 자리에 모이니 대화가 흥미진진하다. 캐런과 랄프는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기 전 동독에서 살았다. 통일되기 전에는 삶이 정말 힘들었다. 돈이 있어도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를 구하려면 14년을 기다려야 했고, 전화를 구하려면 9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의 남한 북한과 달리 서독과 동독은 교류가 어느 정도 허용됐다. 당시 동독에서 바나나 따위는 전혀 구할 수 없었는데, 서독에 사는 랄프의 할머니가 랄프의 가족을 만나러 올 때 바나나를 가져다줘서 신이 났었단다. 생활의 모든 영역에 정부의 규율과 감시가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난 이해가 잘 안가. 어떻게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독재를 그리워해? …. 하긴. 그때가 나았던 게 아주 없었던 건 아니긴 해. 킨더가든(kindergarten, 유치원)이라는 말이 동독에서 나온 말인데.... 그런 유치원 보육 시스템이라든가…. 나는 여성으로서 동독에서도, 그리고 통일된 독일에서도 살아봤는데, 생각해보면 여성권도 그때가 훨씬 보장받았던 것 같아. 지금보다 그때가 오히려 남녀가 더 평등했지. 근데 통일하고 나서 그런 동독이 가졌던 장점은 다 사라졌어. 서유럽이 동유럽을 장악하고 동유럽의 것들은 거의 다 사라졌거든.”     

 

20대인 아밋의 할머니는 나치 독일 시절을 생존해 낸 유대인이다.      

“할머니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나서 이스라엘의 시민이 됐어. 유대인의 피가 어느 정도 섞여 있으면 이스라엘 시민이 될 수 있는데…. 할머니가 100프로 유대인 순수 혈통은 아니었겠지. 나한테도 독일인의 피가 어느 정도 흐르고 있을걸.”

“근데,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 유대 민족이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 지가 몇 천년인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가족력 같은 걸 보겠지.”

“그럼 피가 안 섞여 있으면, 결혼을 해도 시민이 될 수 없어?”

“안될 걸.”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이라, 뭐든 질문하면 대답해줄 것 같다. 한국인, 독일인, 미국인이 아밋을 둘러싸고 질문을 퍼부어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스라엘에 살잖아. 그 사람들도 군대에 가?”

“아니. 팔레스타인들은 군대에 갈 수 없어. 자기 가족과 친구를 적으로 삼으라고 할 순 없잖아.”

“팔레스타인인데 유대교도이면?”

“그러면…. 가나? 잘 모르겠어. 아무튼. 뉴스에 늘 나오는 전쟁, 갈등, 긴장…. 그런 건 내가 봤을 땐 좀 과장된 이야기야. 긴장만 고조시키지. 이스라엘 사람이고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다들 평화를 원해. 실제로 함께 살아가기도 하잖아. 이스라엘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아랍 구역들이 여러 곳 있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테러를 하나? 안 그래. 거기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나? 그렇지 않아.”     


팔레스타인을 여행했을 때에도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들었던 말이다. 모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평화라고.     


주인장의 친구들이 떠나고,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다 비어버린 와인 병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독일에 오면 연락 줘. 다시 만나면 참 좋을 것 같아. 카렌이 말했다. 오늘 낯선 이에게 환대를 여러 번 받은 날이다. 독일에서의 환대도 적립해두었다. 오래간만에 포식도 하고, 와인도 마셨다. 행복한 날이었다고 일기장에 적어둬야겠다.    

  

8시인데 날이 깜깜하다. 마당 한쪽에 쳐진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더럽지만 나름 푹신한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눕자마자 잠이 찾아왔다가가, 뭔가 꿈틀대는 움직임에 깼다. 고양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의 온기에 기대어 자고 있다.     

 

환대해주자. 오늘 낯선 이들이 우리를 환대해 준 것처럼. 낯선 고양이가 오늘 밤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내 발의 온기를 내어주었다. 고양이 몸의 따스함도 내 발에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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