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다고 술 미루지 마라 당신에게 동남아 맥주를 권한다
맥주의 계절이다. 추워 죽겠는데 무슨 소리냐고? 맥주가 맛있는 계절은 다 맥주의 계절 아니겠는가.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고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나이만 한 살 더 먹어 억울해도, 차가운 맥주는 오늘도 맛있다. 고로 오늘도 맥주의 계절이다. 맥주 좀 마시는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또한 여행의 계절이다. 겨울 여행지 하면 따뜻한 남쪽나라, 동남아다. 동남아 맥주는 싸다. 그리고 맛있다. 진득한 동남아 한낮의 날씨에 지쳐있다 찾은 한 캔의 시원한 맥주라면 그 맛이 더하다. 하늘같이 파란 바다에 부드럽고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 게다가 인적까지 드문 캄보디아의 코롱 아일랜드 같은 곳에서 아무런 일정 없이, 계획 없이, 그저 드러누워 마시는 맥주. 비행기 시간을 맞추느라 아무거나 집어온 소설책이 마침 흥미진진하다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재미있는 소설책과 차가운 맥주의 궁합만큼 멋진 건 없으니까.
동남아의 맥주, 그 맥주를 마실만한 곳, 곁들일 안주 등을 (일부) 나라별로 정리했다. 필자가 가 본 나라 위주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니 나중에 따지기 없기.
미얀마는 일몰이 멋진 나라다. 낮 내내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을 견뎠으니 이 정도 일몰은 즐겨 마땅하다. 미얀마의 역사와 경제와 문화는 나라를 남과 북으로 연결하는 이라와디 강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도시는 이라와디 강가에 자리 잡았다. 햇살에 데워진 뜨뜻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며 오후 내내 몸에 달라붙어있던 땀을 씻어버리고 강가로 나가보자. 한 캔에 600짯(한화 약 600원) 꼴 하는 맥주와 한 꼬치에 200짯(한화 약 200원)하는 바비큐 꼬치는 아무리 먹고 마셔도 주머니 털릴 걱정이 없다.
어디서 마실까
강가를 어슬렁거려보자. 꼬치와 생맥주를 주로 하는 강가 맥주집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양곤이나 만달레이 같은 도심에 있다면 ‘Myanmmar’ 같은 맥주 브랜드를 간판으로 거는 식당에 들어가보자. 축구에 온 마음을 쏟는 순박한 미얀마 아저씨들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 챠우민을 안주 삼아 600원 치고 꽤 맛있는 생맥주를 즐길 수 있다.
무엇을 마실까
Myanmar : 미얀마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맥주. 알코올 함량 5%, 더블 스트롱 7.7%. 병맥, 생맥 형태로 판다.
Dagon : 쌀로 만든 맥주. ‘Myanmar’ 맥주보다 좀 더 강한 맛. 병맥, 캔맥, 생맥 형태로 판다.
ABC : 5% 알코올 따위는 성에 안 찬다면 ABC. 알코올 농도 8%. 도수가 높은 만큼 맛은 쓰다.
라오스는 더 이상 Off the beaten track(여행자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 아니다. 시판돈, 방비엥 같은 여행자 파티로 유명한 지역은 이미 발만 닿아도 술냄새가 날 정도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자. 조금만 발 품을 팔면 조용하고 아늑한 나만의 맥주 파라다이스를 발견할 수 있다.
어디서 마실까
여행자 발길이 닿는 웬만한 곳이라면 맥주가 있다. 여행자 숙소 근처 식당으로 가보자. 1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메뉴에는 없는 음식이 없고 당연 맥주도 있다. 다만, 아무리 여행자가 많은 지역이라도 전기 공급이 잘 안되어 미지근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은 감안하자. 라오스까지 가서 여행자 식당 따위는 가고 싶지 않다는 고집 있는 여행자라면 로컬 펍으로 가보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펍은 라이브 밴드 공연도 한다. 케이팝 스타에 비하면 실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열정만큼은 지지 않는 밴드 노래를 들으며 미지근한 라오 비어를 기울여보자.
무엇을 마실까
Beer Lao : 라오스 하면 라오 비어. 재스민 쌀로 빚은 맥주로 라오스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맥주다. 종류는 오리지널, 블랙, 골드가 있다. 블랙은 6.5%의 알코올 함량을 가진 흑맥주이며, 골드는 ‘khao kai noy’라는 쌀로 빚은 스페셜 비어다. 맛도 스페셜 하다. 블랙, 특히 골드는 잘 보이지 않으니 발견했다 하면 일단 한 병이라도 쟁여 놓을 것을 추천한다.
Namkhong : 라오스 남쪽 시판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맥주. 라오 비어와 도수, 맛, 가격이 비슷하다.
캄보디아 땅은 평평하다. 무슨 말이냐면…. 문자 그대로 땅이 평평하다는 말이다. 옥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라. 마치 태평양 바다와 같이 평평한 땅이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져있다. 사실 캄보디아 맥주는 맛이 그냥 그런데, 캄보디아의 평평한 땅에는 이 평범한 맥주를 지상 최고의 맥주를 격상시켜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자전거다.
캄보디아는 나 같은 자전거 초보자도 자전거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언덕이 나오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어야 하고 코너를 돌아야 할 시점에도 자전거를 끌고 걸어야 하는 자전거 초보자의 비참함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 땅이 바다처럼 평평하니 그냥 쭉, 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진짜다. 나 같은 사람도 자전거만 타고 앙코르 와트를 사흘, 메콩강 유역을 나흘 동안 여행했다.
캄보디아 맥주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자전거를 끌고 캄보디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강가로 나가보자. 그 강이 메콩강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끝이 없이 이어지니까. 한낮의 더위를 무릎 쓰고 달려보자. 가다가 지쳐 잠시 쉬다 보면 동네 할머니가 나와 망고 나무에 열린 망고도 따준다. 오후 4시까지 자전거를 타자. 샤워를 하고, 잠시 침대에 몸을 내동댕이 쳐 놓고 있다가 6시 무렵, 숙소 옥상으로 나가자. 캄보디아 왕자가 먹는 안주도 부럽지 않을 멋있고 맛있는 캄보디아의 일몰과 차가운 맥주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서 마실까
캄보디아에서 맥주가 가장 맛있는 곳은 코롱 섬이다. 파는 맥주는 똑같다. 다만 풍경이 다르다. 코롱 섬에서도 사람들이 (아직) 잘 찾지 않는 코롱 샌롬까지 들어가보자. 캄보디아는 바다와 닿는 국토의 면적이 많지 않아 이웃한 태국처럼 관광으로 특화된 섬들이 많지 않다. 캄보디아 해변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 술 취한 배낭여행객들이 점령하지 않은, 하지만 물과 하늘과 모래는 맥주의 하얀 거품처럼 깨끗하고 상쾌한 해변으로 가자. 그리고 드러눕자. 얼굴과 몸이 얼마나 타 들어가든 얼마나 늙든 나중에 걱정하고,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왼손에는 소설책을, 오른손에는 Klong 맥주를 들고 인생을 즐기자. 이곳이 천국이다.
무엇을 마실까
Cambodia : 맥주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맥주다. 캔맥, 생맥 형태로 판다. ‘Cambodia’라는 싸인이 있는 식당에서 서빙한다. 물 탄 맛이 나긴 하지만 차갑게 마시면 마실만하다.
Angkor : 캄보디아 국민들은 앙코르 와트를 정신적 지주처럼 생각한다. 캄보디아 국기에, 심지어 맥주에까지 그 이름과 상징물이 그려져 있는 건 그 까닭이다. 싱가포르 Anchor 맥주와 디자인과 이름이 비슷해 헛갈리는데…. 헛갈리면 어떤가. 아무거나 마시자.
Klang : 알코올 6% 함량의 페일 라거. Cambodia, Angkor 맥주에 비해 물맛이 덜하다. 코롱 섬에서 주로 파는 맥주.
Black Panther : 알코올 도수 8% 함량의 스타우트. 흑맥주다운 쓰고 강한 맛에 커피 향이 돈다. 캔맥으로 판다.
똠양꿍, 팟타이, 그린커리, 레드커리, 뿌빳퐁커리, 얌운센…. 그리고 비치. 말해 뭐하나. 태국에서 맥주는, 그저 거들뿐이다.
말이 필요없다.
어디서 마실까
방콕에 있다면 야시장으로, 해변가에 있다면 아무 데나 가자. 맥주는 어디든 있다.
무엇을 마실까
싱하 : 태국에 맥주가 처음 들어온 건 유럽인들에 의해서였지만 태국인들은 그 맛을 보자마자 곧바로 자신들만의 맥주를 제조했다. 그것이 1933년, 싱하 맥주의 시작이다. 독일 스타일의 라거 비어로 마일드하고 라이트 한 맛이 특징이다. 오래 사랑받아온 만큼 맛도 좋다. 기타 레오, 창 맥주보다 (아주) 조금 더 비싸다.
창 : ‘창’은 태국어로 ‘코끼리’란 뜻이다. 그래서 창 맥주병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보란 듯이 그려져 있다. 알코올 도수는 6.4%로 보통 맥주보다 조금 높은 편. 630ml짜리 병 하나를 마시면 딱 맞게 기분이 좋고 두 병을 마시면 취한다. 몰트(맥아) 맛이 조금 강한 편이라 개인적으로는 싱하를 더 선호한다. 클래식, 드래프트, 라이트 버전이 있다.
레오 : 가장 싼 맥주. 싱하나 창보다 싸 봤자 몇 백 원 차이 안나지만 그게 글쎄,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몇 백 원이라도 싼 맥주에 손이 가게 된다. 그래서 가장 많이 마셨던 맥주. 알코올 함량은 5%인데 왠지 도수 센 맛이 나서 돈 아끼는 기분이 드는 기분 좋은 맥주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살기 좋겠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맥주 마시며 살기 좋겠다.’ 싱가포르에서는 해가 지면, 그러니까 퇴근 시간 즈음 일부 도로에 차량을 제한한다. 그리고 장사판이 열린다. 무슨 장사냐면 꼬치 장사.
심각한 얼굴의 비즈니스맨들이 가득했던 거리에 사테(Satay, 싱가포르 꼬치)를 굽는 포장마차와 노란 테이블, 그리고 맥주를 기울이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득 찬 도심은 진풍경이다. 맥주 마시자고 매일같이 도로를 막아버리는 이들이야말로 퇴근 후 맥주 한 잔의 중요성을 아는 멋진 국민 아니겠는가!
어디서 마실까
싱가포르 분 탓 스트리트(Boon Tat St)는 매일 밤 변신한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야외 테이블과 맥주를 파는 삼촌, 이모들과 사테를 굽은 좁다란 노점상들이 와글와글 대는 사테스트리트(Stay Street)로. 사테 한 접시와 커다란 타이거 피쳐 병을 주문하고 위를 올려다보자. 싱가포르의 빌딩 숲이 당신을 부러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무엇을 마실까
Tiger: 가장 대중적인 맥주. 동남아 전역을 점령한 맥주인 만큼 누구나 ‘마실만 하다’라는 느낌 정도는 가질 수 있는 괜찮은 맥주다. 참고로 타이거는 원래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맥주라고 한다.
Anchor: 타이거와 마찬가지로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싱가포르 산 맥주. 보통은 간다.
동남아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온 여행자라면 말레이시아 맥주가 비싸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회교도 국가라 주류에 붙는 세금이 비싼 탓이다.
그렇다고 말레이시아가 술 마시기 나쁜 나라인 건 절대 아니다. 쿠알라룸푸르를 보라! 해질 무렵 번화가에 나가보라! 타이거니 칼스버그니 하는 맥주를 길이 1m가 넘는 비어타워에 잔뜩 채워놓고 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디서 마실까
쿠알라룸푸르에 있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고개를 돌리면 맥주가 있으니까. 외진 곳으로 왔다면, 특히 그곳이 말레이 구역(말레이시아의 모든 말레이 인종은 모두 회교도이다)이라면 맥주 얻기가 조금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중국식당에서는 맥주를 팔고, 어느 마을에나 중국식당은 한두 군데 정도 있으니까.
무엇을 마실까
Calsberg :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맥주는 덴마크산 칼스버그이다. 말레이시아에 등록된 합법적 맥주 공장이 기네스(Guinness Anchor Berhad (GAB))와 칼스버그(Carlsberg Brewery Malaysia Berhad) 둘 뿐이기 때문이다.
기타 : 칼스버그와 기네스만 있는 건 아니다. 타이거, 하이네켄, 코로나, 아사히 등 기타 수입 맥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