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 글쓰는 이유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00-1

by 두지

“불을 피우거나 쓰러진 나무로 초보적인 카누를 만들려고 애쓰던 인간 역사의 초기에, 우리가 인간을 달로 보내고 비행기를 오스트레일리아에 보내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견뎌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불끈 성질을 낸 것을 사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이렇게 고생을 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알랭 드 보통이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쓴 에세이, ‘공항에서 일주일을’의 한 구절이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이 구절에 들어있다. 우리는 지금 새처럼 하늘을 날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행기, 스마트폰, 슈퍼 컴퓨터 같은 대단한 테크놀로지 때문에 우리는 더 깊은 공허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인류는 이토록 위대한 발명을 이루어냈는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토록 풍족하고 발달되어 있는데, 우리는 아직 외롭고, 혼란스럽고, 나 자신을 모른다. 기술은 내 안에 있는 인간적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난 그런 바람은 갖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 바람들은 오히려 나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에의 시도를 차단할 수 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부끄러움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걸, 타인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걸 늘 돌아보고 생각하기 위해 글을 쓴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같은 극단의 한 쪽이 아니라, 그 중간 어디 즈음에서 서성이는게 나이고 타인이다. 그 간극을 표현하는 글을 쓰고 싶다.


매일 글을 쓰는 100일 동안 내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닥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깊은, 다양한 각도의 들여다보기를 통해, 나를, 타인을, 사람이라는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100일 동안 하나의 기준을 두고 연습을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의 나의 글은 나의 생각들을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다소 일방적인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다. 엄청 획기적인게 아니라면 내 생각 같은거 글쎄,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려나. 그 얕은 바닥도 금방 드러나버릴테고. 그 대신 내 느낌을 이야기하는 글, 설명하기보다는 보여주는 글, 그런 글을 쓰는 연습을 100일 동안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