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00-2
나의 출근길은 스릴러다. 9시 세이프냐 아웃이냐.
7시 45분 첫번째 알람이울린다. 잔다. 7시 50분두번째 알람이 울린다. 10분 정도 더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8시 알람이 울린다. 망설이다 조금 더 잔다. 8시 5분에 일어나(면다행) 끔찍한 기분으로 화장실에 간다. 소변을 보고, 양치를 하고, 물로 대충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다.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옷 중 ‘21세기 한국의 직장인’에 걸맞는 옷차림은 못되더라도, 그나마 사람들이 쳐다보진 않을 정도의옷을 골라 입는다. 이때가 지각이냐 아니냐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데, 입을만한 옷이 모두 빨래 바구니에 구겨져 있다거나, 빨래가 아직마르지 않았다거나 하면 지각이다. 온 집을 뒤져 입을만한 옷을 찾아야하니까.
(옷 입기까지 제 시간에 성공을 하면) 8시 15분.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머리를 빗고, 선크림을 바른다. 썬크림을 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열려버리면, 게다가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다면 멋쩍어하며 썬크림을 주머니에 넣는다. 썬크림 바르기는 횡단보도나 지하철 플랫폼에서하는 걸로 미뤄둔다. 그럴바에야 썬크림을 안 바르면 어떻겠느냐, 썬크림에너무 집착하는거 아니냐, 하는 의견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남들은 아침에 샤워도 하고, 머리도 말리고, 풀메이크업을하고, 고데기까지 하고 출근을 하는 상황에서 썬크림은 뭐랄까, ‘그래도인간적으로 이건 하자’라는 출근에 대한 나의 마지노선이다.
8시 20분까지 지하철플랫폼에 도착하면 성공이다. 사실 23분까지도 괜찮다. 23분까지 괜찮다는걸 알고 나서는 기준이 23분으로 바뀌어버려 요새는 25분에 도착하는 일도 잦다. (젠장) 출근하는 길 역시 스릴 있게 플랫폼에서 정한다. 합정 방향으로 오는전철이 먼저 오면 그걸 타고 합정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불광방향으로 오는 전철이 먼저 오면 불광에서 3호선을 갈아탄다. 보통두 번째 안을 선택하는데, 3호선을 타면 경복궁역에서 택시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는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치면, 어제 퇴근길에 읽다만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 호주 여행 이야기,죽음에 대한 생각,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무페이지 남짓 읽으면 정착역인데, 지하철 문이 열리고 플랫폼에오르면 내가 경복궁역에 있는건지, 파리 골목을 배회하고 있는건지 아주 잠깐 헛갈린다.
경복궁역에 45분 정도에 도착하면 택시를 타지 않아도 9시 전에 출근카드를 찍을 수 있다. 단, 뛰어야 한다. 따라서 8시59분 출근에 성공한 내 등짝은 늘 땀으로 젖어있다.
9시에 자리에 도착하면 전혀 굿모닝하지 않음에도 예의상 “굿모닝”하고 동료들에게 인사한다. 동료들도아침 11시 전 내 상태를 아는지라 더 이상 눈이 부엇다느니, 피곤해보인다느니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르면 새벽 1시, 늦으면 3시 (어떨땐4시) 즈음 잠에 들기 때문에 아침 컨디션은 늘 최악이다. 조금 빨리 자면 되지 않느냐고? 글쎄. 그건 나에게 월요병 예방을 위해 일요일에 출근을 해보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