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 겨울 간식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00-3

by 두지

귤.


귤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고3때의 겨울이다.

수능이 끝나고 난 일본 만화책에 푹 빠져 살았는데,

그 전까지 가끔 읽던 만화를

매일, 수십권을 쌓아놓고 읽었다.

귤과 함께.


애초에 올빼미형 인간이다.

수능도 끝났지

시간도 많지

겨울밤은 길고 길지

밤을 지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 나는 매일 밤을 꼬박새며 만화책 ‘유리가면’을 읽었다.


방이 추워서

‘온’ 스위치를 누르면 벌겋게 달아오르는

선풍기 모양의 전기 온열기를 틀곤했다.

따뜻하기도 한 것이 가끔 뜨겁기도 하고,

또 꽤 밝기도 해서

형광등은 끄고

온열기, 어둠, 만화책, 그렇게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귤.


유리가면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엄청 두꺼운 만화책계의 대서사시라고나 할까..

캔디풍의 극적인 그림 스타일인데 내용도 극적이다.

네이버에 쳐보면 만화 소개가 이렇게 나온다.


‘운명처럼 연기에 끌리는 소녀 마야. 그리고 그녀의 라이벌 소녀 아유미. 전설의 대작 <홍천년>을 향한 두 소녀의 집념과 열정의 드라마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친다!’


어떤가.

엄청 비장하지 않은가?

나는 비장한 마야의 삶과 사랑과 비애를 밤새 읽으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가

행복해했다가

다시 꺼이꺼이 숨도 못쉬고 울기를 반복했다.

가끔 까먹는 시큼한 귤로 위로하며.


그게 10년도 지난 일인데

마야의 대서사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렀는데

작가가 마지막 권을 몇년째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50권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난 또 그 겨울은 잊어버린 채 하루를, 1년을, 또 몇년을 살겠지만.

나오게 되면

귤을 한 박스 준비해두고,

전기 온열기를 키고

불은 끈 채로,

이불을 둘러쓰고 눈물을 흘리며

마야의 인생여정을 1권부터 50권까지 다시 정주행해보는,

나만의 셀레브레이션 나잇을 가져보고 싶다.


그러니까 빨리 마지막권 내주세요 작가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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