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이냐, 워킹맘이냐, 선택보다 중요한 것

엄마인 자신의 재능을 아는 것이 먼저다

by 이틀

“전 회사가 좋거든요. 모든 업무가 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일도 좋고 회사도 좋은데, 그만두기 너무 아까운데, 방법이 없어요.”


예전에 육아휴직 중인 후배를 만났을 때 후배가 했던 말이다. 후배는 복직은 앞두고 있었다. 업무강도가 세고 경쟁이 치열한 부서에서 일을 하다가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아이 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복직을 앞두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후배는 파트타임이나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업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아마 파트타임이나 재택근무도 지금만큼의 업무 만족도를 줄 수 있을지도 고민이라고 했다. 고민은 고민을 낳았다.


고민을 하는 이유는 ‘일이 미치도록 좋은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승승장구 하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만을 바라보고 있는 예쁜 아기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것인가‘가 포인트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돌아가지만, 아기는 오로지 엄마다.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본 경험은 여자를 일과 육아의 선택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이 미치도록 좋지 않아도, 회사에서 승승장구 하지 않아도, 일을 선택해도 된다. 육아가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전업맘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의 기준은 아이가 좋은가, 회사가 좋은가의 차원이 아니다. 이런 질문은 마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것과 같지 않을까?


선택의 기준은 내가 무엇을 할 때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가이다. 단순히 월급이 좋아서 회사를 다녀도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중요하다. 월급 없이 일만 좋아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이와 뒹굴 거리다가 아침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느릿느릿 산책을 하는 것이 좋다면 육아를 선택해도 된다. 게으른 게 나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조금 느리고 게을러도 괜찮다. 오히려 게으른 엄마가 아이와 호흡을 맞추기엔 더 좋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복직 전후로 치열하게 이 문제를 고민했다. 아기를 재워놓고 밤을 새워가며 인터넷에서 비슷한 고민을 찾았다. 유사사례를 찾고, 비슷한 엄마들의 고민을 읽고, 댓글들을 읽다가 날이 새곤 했다. 누군가는 아이 어릴 때는 정말 중요한 시기라며, 다시 오지 않을 시기에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고, 누군가는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많다며 엄마도 돈을 벌어야 하는 세상이라고 충고했다.


어쩌다가 뉴스에서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나, 주 양육자의 폭력사건 뉴스라도 나오면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세상모르고 엄마만 보면 좋다고 웃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지곤 했다. 아이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복직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켜야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데, 아이가 필사적으로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는 길, 아이 울음이 그칠까 싶어 기다리다가 나도 어린이집 담벼락 밑에서 한참을 울다가 돌아서곤 했다.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흘렀다. 나는 결국 일을 선택했다. 내 선택의 기준은 경제적인 이유였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졌고, 나는 돈이 없어 궁핍한 생활이 싫었다. 누군가는 돈이 없어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했지만, 나는 적당히 먹고 살 돈이 없으면 불안한 인간이었다. 지독히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가난이 얼마나 사람을 치졸하고 불편하게 만드는지 알았다. 아이에게 그 시절을 경험해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엄마인 내가 가난이 싫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나는 집안일보다 회사일이 좋았다. 늘 퍼져서 집안에 있는 것보다 아침마다 화장하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출근하는 게 좋았다. 비록 아이 아침밥 차리느라, 준비물 차리느라 정신없을 지언 정 회사로 출근하면 직장인으로 변신된 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나는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조직 속에서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빛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한다는 건 어벤져스가 와도 힘들지 않을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보면 스타크도 마지막 미션과 가족과의 행복 사이에서 깊은 번뇌를 하지 않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일하는 엄마는 이 번뇌를 수년 동안 매일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도, 사회도 엄마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투덜대기도 여러 번, 울기도 여러 번이었다. 분노가 내 안에 겹겹이 쌓였다. 그렇게 쓴 것이 오마이뉴스 기사였다.


간혹 내가 전업맘의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나는 집안일만 하거나 육아를 하면서 만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간혹,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요리를 잘하거나, 집안 DIY를 잘하거나, 엄마표 학습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장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도 분명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잘 파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덤이다.


간혹,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후배들을 만난다. 나는 그럴 경우는 일단 버티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생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도 끝에 만날 수 있는 것이 자신이라는 사람인데, 보통 아이가 어릴 때는 수많은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오늘 하루 뭐했는지 모르게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니까.

육아에 몇 년 동안 집중하다가 다시 자신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하면 베스트인데, 주변에서 봤을 때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만큼, 남편의 뒤에서 2인자로 머무는 경우도 많았다. 더 큰 사업을 할 수 있는 그릇임에도 불구하고, ‘난 이만큼만 해도 돼’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봤다. 또는 더 큰 용기를 내지 못해서 계속 집안에 머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당장은 일을 하고 있다면, 일을 놓지 않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전업맘이든 워킹맘이든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생각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재능과 적성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엄마인 나의 재능과 적성은 무엇인지 그것부터 아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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