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아이도, 나도 성장하더라
이 글은 복직한 지 1년 차 되는 달에 기록한 일기를 편집한 것입니다.
얼마 전 회사 후배랑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고민상담까지 하게 되었다. 복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는 일도, 아이도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어서 우울하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일에 있어서 완벽했고, 일을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고, 야근과 철야도 불사하면서 일을 하던 완벽주의자였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복직을 하고 나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느라고 매일 아침 5분, 10분 지각은 일상이고,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남편에게 일찍 들어가라고 종용해야 하고, 이도 저도 안되면 뒤통수 뜨거워지도록 눈치 받으며 퇴근을 해야 하고, 복직을 한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일보다는 아이가 우선순위가 되어버린 자신이 익숙하지 않아서 혼란스럽다는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잘 돌보는 것 같지도 않다. 아직도 아이는 월요일마다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하고, 아이가 아픈데도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면 내가 무엇을 바라고 이 고생을 하는가 회의감이 밀려올 때도 많다는 것이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작년에 하던 고민들, 혼란들을 그녀 역시 똑같이 겪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라고... 너의 고민은 누구나 겪는 것이라고...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게 될 거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성장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단 사람들은 대부분 일이 주어지면 200% 정도의 일을 해주던 스타일들이다. 사실 고객들이 원하는 건 100%도 아니고 80%정 도일 때도 많다. 워킹맘이랑 워킹 + 맘의 신조어다. 즉 일하는 역할, 엄마의 역할이 주어진 사람들이란 뜻이다.
작년 이맘때쯤, 내가 분신술을 부려서 내 몸이 두 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더랬다. 복직을 하고 보니 같이 입사한 남자 동기들은 내가 커리어를 멈춘 동안 승승장구하며 조직 속에서 그들만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팀장으로 발탁된 사람도 있고, 해외 발령으로 가족들 모두 이주한 사람도 있고, 차장으로 승진한 후배들은 다수였다.
한때는 내가 저들보다 잘 나갔었는데... 웬만한 남자 부럽지 않게 일했었는데... 하는 내가 루저 같다는 생각... 참 많이도 했었다. 그러면서 집에 가서 자는 아이들 얼굴 보면 내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걱정과 함께 잠든 아이들 옆에서 베개에 눈물을 적시며 잠든 날도 많았다. 아침에 혹시라도 깨서 엄마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 붙들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나오는 날이라도 되는 날에는 울면서 지하철 타러 뛰어가던 날도 많았다. 지난 일기들을 보니 그렇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어느샌가 나도, 아이들도 적응이 되었다. 나는 일에 적응이 되었고, 아들은 성장했다. 남들보다 예민해서 어린이집 적응이 두배로 힘들었던 큰 아이는 이제 주말에 심심하면 어린이집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친구를 아는 나이가 되었고, 둘째는 간혹 출근하는 나에게 당연하듯 빠이빠이~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일에 있어서는 많이 적응이 되었지만, 욕심을 많이 버리기도 했다. 행복하려고 하는 일인데, 아이를 낳기 전에는 행복보다는 성취, 성공, 일 욕심에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저돌적이고, 일을 잘한다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조직 속에서 좌충우돌도 많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철학이 생겼다. 나만 행복해서는 안되고,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생겼다. 일은 나에게 성취감뿐만이 아니라 돈을 주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고,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해 준다.
물질만능주의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일이 지나쳐서 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다면 일을 통해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일을 통해서 나와 내 가족이 행복을 얻으려면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한 가지를 잃으면 한 가지를 얻는다. 남자 동기들처럼 빠르게 조직 속에서 인정받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일을 즐기면서 하는 법을 깨달았고,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제일 즐겁고, 그 기준을 조금 낮추어도 불편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동차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아이를 낳기 전에는 포장도로를 엑셀을 밟기만 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면, 아이를 낳고 나서는 비포장도로를 엑셀과 브레이크를 조절하며 달리는 느낌이다. 아이를 싣고 달리기 때문에 늦게 달려야 하는 자동차처럼... 그리고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인생의 다양한 풍경들...
오늘도 수많은 워킹맘들은 많은 갈등을 안고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그 갈팡질팡 하는 와중에 경험하는 것들도 인생에서 의미가 있음을... 의미 없는 고민은 아니다. 아마 워킹맘 생활을 유지하는 한 나도 아이들도 크면서 또 다른 고민 앞에서 휘청거리겠지만, 그땐 또 그 나름대로 인생이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가 보다, 생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