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어깨

세 자매의 연휴

by 박윤희

작년 이맘때쯤, 강원도로 급히 떠난 언니와는 떨어져 지내는 것이 익숙해졌다. 주말 외에는 얼굴을 볼 기회가 없으니 전처럼 싸우는 일도 적어졌고 정말 사이가 좋아졌다. 타지에서 고생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안쓰럽다는 생각이 컸지만, 언니가 그곳에서 회사 사람들과 매일매일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또 안심이 되었다.



동생이 일을 그만두고 난 후 언제부턴가 언니를 따라서 평일에는 강원도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는 언니와 같이 서울 집에 왔다. 동생이 강원도를 따라가기 전에도 사실 내가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말을 많이 섞으려 하지도 않았다. 동생이 언니와 함께 강원도 생활을 하고 난 후부터는 정말 대화가 거의 단절되었다. 평일에 떨어져 있는 시간이나 주말에 내가 약속이 있을 때들 제외하고도 사실 동생이 말을 걸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내가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가장 클 때도 내게 가장 만만한 대상은 동생이었다. 내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는 온전히 회사에서 받은 것인데, 나도 모르게 동생에게 화풀이를 했었고 한 번은 혼자 있고 싶은데 동생이 자꾸 말을 건다는 이유로 소리를 버럭 지르고 하루 종일 집을 나갔다가 밤늦게 기어들어온 적도 있었다. 동생 잘못이 절대 아닌데, 왜 그랬는지 정말 후회스럽고 그동안 동생에게 상처 줬던 일들만 자꾸 떠올라서 괴로운 요즘이다.



그렇게 대화가 거의 단절된 상황에서 동생이 언니를 따라 강원도 생활을 하니, 평일에는 방을 혼자 쓸 수 있다는 것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생각에 마냥 좋아하기만 했다. 그렇게 외동딸 마냥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이번 추석 연휴에 언니와 동생이 강원도에 놀러 오라고 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화요일에 조기퇴근 후 강원도에 갔다. 강원도에 가면 혼자 있지는 못하지만 부모님의 시야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서 자매들과 신나는 시간을 보내보자 하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연휴 내내 방탕한 삶을 즐기러 떠났다.


고속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터미널 역에 도착하니 강원도 주민이 다 된 언니와 동생이 추리닝 차림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동생은 내 가방이 무겁지 않냐며 들어주었고 둘은 나를 데리고 이마트에 갔다. 저녁은 먹었냐며, 평소에 이마트에 사람이 별로 없는데 오늘은 많다며, 나를 기쁘게 맞이해주는 언니와 동생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분명 더 반가운데,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알 수 없는 약간의 어색함도 느껴졌다. 타지에서 만나서 그런 걸까?

아무튼 우리는 이마트에 가서 먹거리를 사 와서 집에 와서 TV를 틀어놓고 새벽까지 먹고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첫날 버스에서 이동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무지하게 피곤했던 나는 씻자마자 동생 침대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동생은 옆에 이불을 깔고 곤히 자고 있었고, 내 폰도 충전기에 꼽아주고 내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런 동생을 보니 고마운 마음이 크면서도 미안한 마음도 컸다.


언니는 내가 놀러 왔다고 나를 데리고 바닷가가 보이는 고성의 멋진 카페에 데려가 주었다. 동생은 피곤하다 해서 언니와 둘이 다녀왔는데, 언니가 저녁 약속이 있다 하여 저녁쯤에 돌아오니 동생이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보고 곧 다 된다며 TV를 보면서 쉬고 있으라 했다. 마음 한켠에 미안한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TV를 보는데도 자꾸만 부엌으로 시선이 갔다. 동생은 저녁상을 다 차린 후 본인이 만든 요리에 스스로 평을 하며 나에게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놓았다. 저녁을 다 먹은 후 동생은 또 자연스레 부엌으로 가서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빨래 돌려둔 것을 꺼내며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었다. 내가 서울에서 편히 지내는 사이에 동생은 이렇게 집안일하며 외롭게 혼자 보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할 일이 많아서 강원도에서도 바쁘다며 군말 없이 언니를 따라 매번 강원도에 오지만, 동생으로서 언니를 보살피기 위해 따라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에는 언니는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갔고 동생이 저녁쯤 본인이 가끔 강아지 간식을 주러 가는 곳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동생을 따라가니 웬 귀여운 개들이 우릴 보며 신나게 맞이해주었다. 동생은 자연스레 강아지들에게 간식을 주고 각각 특징을 알려주었다. 같이 간식을 주고 옆 동네를 함께 거닐었다. 언제 그 지역 주민이 다 된 건지, 길을 잘 알고 있는 게 신기한 생각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컸다. 언니가 바빠서 없을 땐 항상 혼자 그 길을 거닐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동생과 함께 타지를 산책하는 기분은 참 묘했다. 뱃속에서부터 함께해서 25년 동안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둘도 없는 친구인데,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동네를 같이 거닐고 있으니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연휴가 끝나면 나는 또 동생과 떨어져 지낼 테고 동생은 또 혼자 이 거리를 거닐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싱숭생숭 해졌다.

오랜만에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그 동네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재밌게 볼링도 치고 왔다. 집에 와서는 곱창을 시켜서 TV를 보며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서울 집으로 출발하기 전 나의 마지막 휴일 금요일에는 고성의 한 해변가에서 캠핑으로 마무리했다. 언니가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온 덕에 텐트를 쳐놓고 라면도 끓여먹고 핫도그도 구워 먹었다. 해변가에서 끓여먹는 라면은 정말 꿀맛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또 한 번 우리 세 자매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이번 연휴는 나에게 정말 소중했다. 단순히 잘 쉬어서가 아니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연휴였다. 언제 이렇게 또 언니와 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나중에 우리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없을 텐데 나는 왜 그동안 이 소중함을 몰랐을까?


휴일이 끝나고 나면 휴일 후유증에 시달리고 더군다나 월요일이라 더 힘들 줄 알았는데 월요일 아침이 이상하게도 개운했다. 잘 쉬고 온 것에 소중했던 연휴였기 때문일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미소와 눈물이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