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어깨

나의 사람들

by 박윤희

작년 9월 즈음, 언니의 회사는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언니는 급하게 살 집을 구하게 되었고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강원도 생활을 시작했다.


주말에는 항상 서울 집에 오지만, 주말이 끝나고 나면 출근을 위해 떠나는 언니의 표정이나 기운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종종 얘기를 들어보면 회사 직원들 또한 급하게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에 혼자 자취를 하는 직원들끼리는 주말에도 모여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언니가 강원도로 가기 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게 싸우고, 늘 신경전을 벌였다. 고작 내 옷을 맘대로 입는다는 이유와, 집안일을 잘하지 않는다는 이유, 그 외에도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은근히 짜증을 부렸었다. 정말 이러다가는 결혼하고 나서 남남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언니와 나 사이에 알게 모르게 벽이 생겨버렸다. 그러다가 언니는 급하게 떠나게 되었고 떨어져 산다는 안타까움이 급 몰려왔지만 막상 크게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떨어져 사는 덕분인지 우리 자매애는 더 좋아졌고 주말마다 오니깐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옷을 챙겨가는 게 조금은 짜증이 나도 집을 떠나 고생하니깐, 참을 수 있었고 당연히 빌려줘야 했다.


언니가 강원도로 떠나고 나서 2번 정도 놀러 갔었는데, 갈 때마다 가족들 중 누군가와 늘 같이 갔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 혼자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도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갔어서 짧은 시간 동안 무언가를 많이 해보기 위해 바삐 움직느라 혼자 있을 여유가 없었다.


두 달 전 즈음부터 언니가 계속 강원도에 놀러 오라고 했다. 맛있는 집과 예쁜 카페를 찾아두었다고. 같이 가자고, 휴가를 언제 쓸 수 있냐고 계속 물어봤다.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이번 6월에 기회가 생겨서 연차를 이틀 쓰고 언니네 집에 놀러 왔다. 일요일 저녁에는 언니가 맛있는 꽃게탕과 고등어구이를 사주었고, 예쁜 카페를 들려 사진도 많이 찍어주었다. 언니는 내가 놀러 왔다고 여기저기 구경시켜주려 했다.


집에 오니 언니는 씻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아서 또 노트북을 두드렸다. 내일 월요일인데 안 자냐고 물으니 회사일을 해야 된다고 열심히 보고서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누워서 열심히 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소파에 나가서 잠이 들었다. 한참 자다가 너무 더워서 깼는데 언니가 안 자고 있더라. 놀라서 왜 아직도 안 자냐고 물으니 이제 잘 거라고 하면서 침대로 가는데 그때 시간이 새벽 4시였다. 내일 출근하려면 피곤할 텐데.. 안쓰러웠지만 나도 졸렸기 때문에 다시 잠이 들었고 몇 시간 후에 언니가 부스럭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일요일 저녁에 떠날 때의 뒷모습, 어깨가 축 처진 뒷모습이 보였다. 매주 서울 집에 오기 위해 왕복 6시간씩 운전을 해서 늘 피곤한 언니가, 나를 위해 일이 많은데도 시내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예쁜 사진을 찍어주고 했던 것이다.


작년 9월에 언니가 떠날 때는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지금 이 순간, 오늘 아침 언니의 축 처진 어깨를 보고 흐르고 있다. 집을 떠나 고생을 하면서도, 동생이 못되게 굴었음에도 언니는 언니로서의 최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것을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깨달 내가, 많이 안타깝다.


언니를 위해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곧 다가오는 언니 생일에 좋은 선물을 사주는 것 외에는 언니의 회사를 옮겨줄 수도 없고 내 직장을 버리고 언니 사는 곳을 따라올 수도 없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생하는 언니를 알아주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것뿐이다.


혹시 가족들 중 누군가 집을 떠나 타지에서 일하게 된다면 꼭 알아주고 응원해주자. 집을 떠나면서 축 처진 어깨를 토닥여 주자. 정말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