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 (1)
기억하기로, 내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사과를 한 건 8년 전 겨울 무렵이었다. 어려서 오빠랑 매일매일 싸우면서 '잘못했습니다'를 숱하게 뱉었지만, 꼬마 아이가 엄마에게 미안해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엄마에게 툭하면 짜증을 낼 때는 가족이니까 이해해주면 그만일 일, 성인이 되어 남자친구와의 동거 사실을 들켰을 때는 시간에 묻어갈 일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가족에게는 구태여 사과할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해 겨울에는 엄마에게 정중히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 잘못은 내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보는 일에 서툰 데에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우리 집은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었다. 등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무실에서 안내 방송으로 나를 찾았고, 집에 급한 일이 생겼으니 다시 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날은 토마토를 출하하는 날이었고, 일손이 부족해진 아빠가 토마토를 같이 따자고 나를 부른 것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미안해서인지 토마토를 따며 울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런 일은 꽤나 재밌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당시 열한 살, 열두 살쯤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오빠는 군대에 갔다. 얼마 후 아들의 물품을 택배로 받은 엄마는 거실에 앉아 엉엉 울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생 때와는 달라져서 우는 엄마를 못 본척하고 집에서 나왔다. 그 즈음부터 내가 슬픈 엄마를 어려워한다는 걸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툭 건들면 눈물이 주륵 흐를 것처럼, 한과 응어리를 꼭꼭 껴안고 곰삭은 마음으로 사는 엄마를 보는 일이 버거워졌다. 그때 엄마가 '학교 땡땡이 치는 날'이라며 오히려 장난을 쳐줬다면, 아들이 보고 싶으니까 오늘은 우리끼리 더 맛있는 걸 먹자고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일에는 그러면 안 됐는데 그랬다. 전화로 울면서 아빠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하는 엄마를 위로해주지 않았고, 화장터 앞에서 자지러지며 목 놓아 우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싫었고, 아빠가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이한 오빠의 결혼식장에서 자꾸만 울먹이는 엄마를 나무랐다. 다른 딸들처럼 엄마한테 괜찮냐고 물어봐주지 않았고, 괜찮다고 토닥여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엄마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펑펑 우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엄마는 내가 있을 때는 그리움을 켜이켜이 쌓아두고 내가 없는 데서 많이 많이 울었을 것이다.
엄마의 슬픔이 한풀 꺾일 즈음, 나 역시 아빠가 돌아가신 일을 찬찬히 돌아보게 될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내가 엄마의 마음을 존중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서러우면 서러운 대로 지켜봐줄걸, 그게 내가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였을 텐데. 그래서 다짐을 했다. 엄마에게 꼭 사과를 해야지.
늘 타이밍을 한 발짝씩 놓치며 사는 나는 그렇게 잘못을 깨닫는 데에 한 해가 걸렸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는 데 또 다시 몇 개월이 걸렸다. 엄마랑 밥을 먹으면서도, 커피를 마시자며 붙잡고 앉아 있을 때도, 배웅을 핑계로 나온 산책길에서도 그 말이 선뜻 나오지 못했다. 그럼 서울 자취방으로 올라오는 버스 창밖을 보며 다시 다짐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엄마한테 꼭 사과를 해야지. 그렇게 매번 미안하다는 말을 머금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터미널에 가기 위해, 엄마는 장사를 하러 가기 위해 함께 시내 버스를 탔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전날부터 머뭇거리고만 있던 말이었는데 버스가 흔들거려 자꾸만 비틀거리는 몸에, 쿵쾅거리는 버스 소음에 기대니 되려 말할 수 있었다. 엄마가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해서 미안했다고 얘기했다. 뜬금없고 산만한 사과였지만, 엄마는 그 한 마디로도 충분히 내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손사레 치는 엄마를 두고 나 먼저 도착한 정류장에 내렸다. 눈물이 많은 엄마는 울먹울먹한 채 서너 정거장을 더 갔을 것이고, 내가 한 말을 곱씹으며 평소처럼 장사를 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정말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그게 내가 엄마에게 한 첫 사과였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보다, 잘못을 해도 사과를 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홀가분함이 더 크게 와닿았던 탓인지, 그후 지금까지도 나는 엄마에게 매번 상처를 주고 사과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왜인지 나는 점점 더 매우매우 예민하고 매우매우 까칠한 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조잘대던, 틈만 나면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내가 완전히 사라졌을까 봐 무섭다. 지금의 나는 엄마 앞에서 너무 많이 비뚤어져 있다. 시간이 자꾸만 자꾸만 흐른다. 너무 늦은 사과가 되지 않도록, 이제는 엄마와 진짜 화해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