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미안 (1)
“씩씩하게 살아라.”라고 적은 8년 전 일기를 발견했다. 오빠도, 새언니도, 엄마도, 멀리서 온 할머니도 아빠를 보고 우는데, 나는 아빠 앞에서 농담을 던지고, 아빠의 까까머리를 놀리고, 상봉이를 데리고 와서 재롱을 떨었다. 혹시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거 같으면 얼른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훔치고 나와 다시 아빠 앞에서는 장난을 쳤다. 내가 아빠 앞에서 울면, 아빠가 곧 자신이 죽는다는 걸 눈치챌까 봐 그랬다.
하지만 자꾸만 사람들이 아빠를 보러 오니까 아빠는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을 이웃 아저씨에게는 자신이 키우던 소를 제값을 받고 잘 팔아달라고 당부했다. 상봉이에게는 당신이 늘 자신 있게 요리하던 오므라이스를 선보이지 못 해서 아쉽다고 했다. 상봉이는 고기를 좋아하니까 고기를 잔뜩 넣어서 만들어 줄 계획이었다고 했다. 아빠의 마지막 인사는 이렇게 어리고 작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시답지 않은 일들이 아빠에게는 안부가 되고, 잘 사는 일이었던 터라 그랬을 거다.
다들 아빠를 보고 우는데 나만 안 울어서 아빠에게 섭섭하냐고 물으니, 그때 아빠가 해준 말이었다.
“씩씩하게 살아라.”
그 말을 잊고 살다가 얼마 전에 옛 일기장을 발견하고 기억이 난 것이다. 이제 내게 아빠의 기억은 잊힐 것들만 남았다. 이야기를 늦게 꺼낼수록 아빠에 대해 쓸 수 있는 말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빠는 그날 왜 화가 나고 왜 그렇게 웃었는지,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아빠는 왜 슬프고 가여웠는지, 그럼에도 아빠는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너무 늦은 질문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나 혼자만 씩씩하고 즐겁게 노느라 묻지 못 했다.
아빠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