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백수가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나. 잠시 멈춰 선 김에 나의 지난 5년간의 커리어를 돌아보려고 한다.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중견 기업에서 약 2년, 중소기업에서 약 3년을 보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회사 모두 온라인 매체였다. 그리고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으나, 이직과 거의 동시에 퇴사했다.
첫 회사에서는 디지털 콘텐츠 PD로 재직하며 기획 영상, 인터뷰 영상 등 SNS에 특화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제작했다. 매체의 콘텐츠가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디지털 사이니지 업체와의 제휴 업무도 맡았다. 이외에도 회사가 주최하는 오프라인 포럼 행사에 사용되는 영상들도 만들었다.
2년을 조금 못 채우고 첫 회사와 이별을 택하게 된 것은 바로 ‘업무의 자율성’ 때문이었다.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를 이끌어주거나 가르쳐줄 사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선택과 판단은 내 몫이었다. 사회의 처음 발을 디딘 신입사원에게 이러한 업무 환경은 갈수록 독이 됐다.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두 번째 매체에서는 광고 콘텐츠로 업무 영역을 넓혔다. 매체의 광고 상품을 판매하고, 브랜디드 콘텐츠를 기획·제작해 광고 매출을 만들어냈다. 오가닉 콘텐츠만 다뤘던 이전 회사와 달리 광고 콘텐츠를 다루다 보니 대부분의 업무는 광고주, 대행사와 협력하여 진행됐다. 일하는 프로세스가 달라진 덕분에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업무적인 관계들이 생겼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 발행하는 모든 과정에서부터 독자뿐만 아니라 광고주의 니즈까지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콘텐츠의 성과를 광고주에게 보고하고 이를 통해 추가 광고를 수주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업무 능력을 한 층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영상 콘텐츠만 다뤘던 첫 회사와 달리 글, 영상, 카드뉴스 등 다루는 콘텐츠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그렇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 목표한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열심히 일했다. 초반 2년은 화장실 갈 시간도 쪼개며 일했다.(주로 모으고 모아(?) 하루 한 번 가는 날이 수두룩했고, 두 번 가면 양호한 날이었다…) 겨울에도 겨드랑이에서 땀이 났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일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업무 디테일도 좋아졌다. 업무가 한 번에 휘몰아쳐도 스스로 스케쥴링하고 우선순위에 맞게 쳐낼 줄도 알게 됐다.
입사 당시와 비교했을 때 월평균 광고 매출은 약 2배로 증가했고, 3년간 신규 광고주만 무려 120여 개나 늘었다.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목표한 매출을 채우고, 다양한 광고주와 일하며 느끼는 짜릿한 성취감이 내겐 좋은 진통제였다. 회사에 돈 벌어다 주는 재미도 느끼게 됐다. 그렇게 6년 차, 회사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대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한 번 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기존 회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사를 가더라도 내가 스스로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광고주들에게 잘 팔리는 광고 상품을 제공하는 다른 회사는 어떻게 일할까. 내가 만들어내는 광고 콘텐츠는 매력 있는 콘텐츠가 맞나. 콘텐츠 제작자, 콘텐츠 마케터, 광고 기획자, 기자, pd, 에디터 등 여러 가지로 불려 온 내게 가장 어울리는 옷은 무엇일까. 다양한 업무를 폭넓게 해온 나는 오히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트렌드에 뒤처져 구닥다리 콘텐츠밖에 만들지 못하면 어쩌지. 여러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업무에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느꼈다.
세 번째 회사를 찾다가, 론칭을 준비 중인 브랜드의 콘텐츠 마케터로 두 번째 이직을 결정했다. 실질적인 구매로 연결시키는 콘텐츠,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콘텐츠에 대해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광고주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콘텐츠 자체의 인터랙션을 주요 지표로 일했던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외에도 서브 프로젝트로 이제 막 시작하는 sns의 채널 운영도 맡았다. 회사는 궁극적으로는 해당 채널을 통해 광고 상품을 만들어 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광고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 전략을 만들고, 처음부터 오롯이 직접 시스템을 세팅해 수익을 내 볼 좋은 기회였다. 아쉽게도 삼 개월 천하로 끝나버렸지만.
지금까지 지나쳐온 회사와 해온 업무를 돌아보니 돌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커리어를 뾰족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온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 커리어가 참 뭉툭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나의 경험과 커리어도 높이 사줄 회사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한 회사 대표님의 인스타그램 글을 접했다. 채용에 대한 주관적인 기준을 기록해 둔 글이었다. 그중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내겐 너무나 매력적인, '점박이 지원자'들.
내 맘대로 '점박이 지원자'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게 뭐냐면 한 가지 길만 쭈욱 걸어온 게 아니라
전혀 접점이 없는 영역의 경험들을 점처럼 꾹꾹 찍으며 시간을 공고하게 쌓아온 이들을 부르는 말.
이런 본인을 알아가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성실하게, 멈추지 않으면서 다소 낯선 영역이라도
일단은 점을 꾹꾹 찍어온 이들의 스토리가 나는 가장 매력적인 것 같다.
(출처 인스타그램 @glant_jang)
오! 나도 그럼 이런 점박이 지원자가 아닐까. 또렷한 선이 아닌 다양한 점의 집합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니. 덕분에 불안함으로 꽉 찼던 내 마음에 한줄기 빛이 드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걱정에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점박이 지원자’를 찾는 대표님의 글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이런 나와 궁합이 맞는 회사를 만나게 될 날이 분명 오지 않을까.
앗 선배님 잠시만요!! 우연히 이 글을 보셨다고요?
고민 많은 후배에게 댓글로 어떤 조언이라도 남겨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