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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Aug 23. 2022

말실수 퍼레이드



입이 머리보다 빠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로 뇌를 거치지 않는 말실수가 튀어나오게 된다. 어려서는 생각이 여물지 못해서, 나이가 들어서는 생각이 많아서 말실수가 나오기도 한다. 말실수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의도한 생각의 내용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 표현과 일치하지 않는 언어적 표현이 생성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즉 생각과 발화된 표현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의 입과 머리의 부조화는 일상다반사다. 언젠가 친구 엄마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새 두 마리가 날아와 전깃줄에 앉았다. “**야, 저기 까마귀가 앉아있네. 저기 좀 봐봐.”,“네? 까마귀요? 어디요?”라고 했다. “저기, 안 보여? 전깃줄에 있잖아.”,“언니, 없는데….” ‘아니 왜 안 보이지?’라고 생각하다 말고 “아! 까마귀 말고 참새 말이야! 좋은 일이 있으려나. 아! 내가 아까 까마귀라고 했나? 아이코!”,“음…. 우리 언니, 까치를 말하는구나! 다 이해해요. 하하하!”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 엄마와 옛 기억을 두서없이 소환하며 해외 펜팔 경험담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사진 속 소녀의 얼굴을 묘사하면서 “전형적인 노르웨이의 바이칼(뇌가 멈칫)의 모습을 닮았어.”라고 했다. 그 순간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언니, 바이칼은 언니가 좋아하는 러시아 쪽 아니에요?”,“바…. 바이킹? 그래, 바이킹! 어쩐지 말하고도 뭔가 어색하더라.”,“괜찮아요. 전 다 알아들었어요! 척하면 척!”, “그래, 우린 정말 잘 통한다니까!”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바이킹이라는 단어를 너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인출을 하지 않아 벌어진 오류였다.      



아들이 학원에 갈 채비를 뭉그적거렸다. 늑장을 부리는 아들을 보고 마스크를 생각하다가 급한 마음에 “마우스 챙겨!”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잘못 나온 잔소리에 아들은 우습다며 놀렸다. 헛말의 잦은 빈도에 어디 문제라도 있는가 싶어 검색을 해봤다. 미국의 윌리엄 제임스가 발표한 심리학 용어인 설단 현상은 특정 단어나 사람 이름이 생각 날듯 말 듯하고, 입안에서만 빙빙 도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기억 속 정보의 인출 과정 실패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그 뭐냐 증후군”이 있다. 정식 명칭은 “인터넷 미아 증후군”으로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할 때 최초의 검색 목적을 잊어버리고 다른 링크로 옮겨 다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말한다. 나만 느끼는 불편한 현상이 아니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설단 현상’이든 ‘그 뭐냐 증후군’이든 일상에서 불편을 주느냐 웃음을 주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에게는 웃음의 요소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떠오르지 않는 단어나 인물에 대해, 마치 게임을 하듯 초성 맞추기, 스무고개를 통해 불편을 웃음으로 해결하니까 말이다. “어휘력이 부족하면 말이나 글에 지체구간이 생기고 늘어진다. 표현하고 싶은 용어나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것을 설명하느라 정작 하려던 말이나 글을 중단하고 곁가지 서술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라고 <<어른의 어휘력>>의 유선경 작가는 말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어휘들을 좀 더 활용하고 어휘력의 결핍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 말실수를 차츰 줄여 나가야겠다.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다. 대뜸 이러신다. “그거 먹으면 좋단다.” 또 시작이다. (중략)“그게 뭔데요?” “그거 있잖아, 그거 동남아 어디에서 난다던데.” “동남아가 하나둘이에요? 어느 나란데?” (중략) “그게 뭐더라.” 답답해 하시다 버럭 나무라신다. “아니, 넌 왜 모르니!” 억울하다 어머니한테 내가 들은 어휘라고는 그거와 거기 밖에 없다.
유선경<<어른의 어휘력>>



<<글쓰기 수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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