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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Jun 15. 2023

죽지 못해 사는 줄 알았는데

살고 싶어 죽지 못하는 거였다.

잘 살고 싶었다.

잘 살고 싶고, 앞으로도 잘 살고 싶을 것이다.


죽고 싶다는 건, 잘 살고 싶은 간절함이 극에 달해 그것 말고는 다른 표현할 방법이 없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함께 잘 사는 건 나 혼자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 혼자 잘살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게 된 건, 내가 이 가정에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남기고 싶어 져서였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간 애써온 시간들이 흩어지고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기도 했다.

무시받고 짓밟혔던 시간들 속에 나도 꽤 쓸모 있는 사람이었다고, 나의 가치를 누군가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어 졌다고 해야 할까.

그래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글로라도 털어내야 풀리지 않는 응어리지만 숨은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누군가의 위로는 둘째치고 내 글로 내가 위로받고 싶기도 해서.


변화무쌍했던 나의 결혼 생활이, 그리고 그 안에 늘 결핍되어 있던 나 자신이 눈물겨운 지금,

이제라도 나를 위해 애쓰고 싶어졌다.

그게 무엇이라도 내가 나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졌다.


지난 10년이라는 지옥 같은 결혼생활이 지나고 보니 값진 경험이었다고, 헛된 시간은 아니었노라

나의 기록이 나에게 주는 훈장이 돼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한 기대감일지라도 설레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남겨두었던 육아일기는 그 당시 암흑 속에 있었던 나를 이제 와서 빛나던 시절로 착각하게 해주기도 하고, 힘들 때마다 내 심정을 털어놓았던 글들이 위로가 되어 줄 때도 많았다.

그때의 내가 처량하기도, 안쓰럽기도 했지만 잘 버텨온 지금의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 글로 내가 위로받고 있었다. 남겨놓길 잘했다.


글은 꾸준히 쓴 지 오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이곳에 내 얘기를 남겨보려 한다.

사실 블로그는 지인들에게도 공개된 곳이라 사적인 이야기를 솔직히 남길 수 없었다. 그래서 갈증이 더했다. 허심탄회하게 내 이야기를 할 곳이 필요했다.

 

잊힌 시간들은 종종 글로써 다시 만나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잘 지나왔다고... 대단하다고 토닥여 주는 것 같다.

지난날의 나를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추억을 선물 받는 일이다. 그게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무엇이든 지나고 나면 애틋해지기 마련이고 잃고 나서야 소중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첫째를 키우며 울며불며 살고 싶어, 살기 위해 썼던 육아일기도 지금 읽어보면 재산이고 보물이다.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잘한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첫째가 어느 정도 크고 나니 나도 경제활동이 하고 싶어졌다.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캘리그래피를 배우게 되었고 강사가 되어 작게나마 인정도 받았다. 재미도 느끼며 조금씩 성취감도 쌓여갔다. 그러던 중 둘째가 찾아오면서 공백은 그 후로 4년째 이어졌다. 몸에서 멀어면 마음에서 멀어 듯 손 놓은 지 오래된 일은 그 사이 열정이 식어버렸다.


가정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소비로 풀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눈만 뜨면 인스타로 끊임없이 사고 싶은 것을 찾았고, 갖고 싶은 것은 사야 할 이유를, 쓸모를, 핑계를 찾아가며 사들였다. 비록 세제나 청소용품과 같은 생활용품들 또는 아이들 교구나 책이었지만 가랑비 옷 젖듯 큰 한방보다 무서운 자질구레한 작은 것들을 결제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그럴수록 내 가정은 더 흔들렸다.

꽤 잘 벌고 잘 나가는 사업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폭력 아닌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살고 있으니까.


남편이 돈으로 내 목을 조르면 조를수록 나는 더 정서적으로 굶주리고 그 허기는 소비로 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무언가를 사도사도 해소되지 않는 내 심리상태를 직면하게 된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선 나 자신이 떳떳해야 했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했고, 상대에게 큰소리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그 당당함과 떳떳함의 기준은 돈이었다. 10년째 귀에 박히도록 돈타령을 들어온 나로서는 돈이 원수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서는 안 될, 이 현실에서 날 구제 해줄 유일한 수단이었다.

돈은 남편이 화가 날 때면 매번 무기로 돌변했다. 비참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날 구해 줄 수 있는 것도 돈이라서, 밉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내 남편에게 나란 사람은 본인 등골 빼먹는 여자, 애 봐주는 여자 그 이상의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사치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사치의 기준은 다를 테지만 여전히 결혼반지하나 없고 명품백은 커녕 브랜드 옷, 가방도 사본 적 없기 때문에 사치스러운 사람은 아니라 생각한다. 아빠가 명색이 사장님이지만 우리 아이들도 브랜드옷 한번 사 입혀본 적 없고, 주말에 독박육아 버티느라 아이 둘 데리고 나가 키즈카페나 외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돈 쓰고 돌아다닌다고 면박을 줬다.


난 그런 취급을 받는 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든 돈이라는 연결고리를 끊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조금이나마 숨통을 열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 중이다.

무엇이라도 꼭 해내려 한다.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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