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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Jun 15. 2023

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버티거나 벗어나거나.

좁혀도 좁혀도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이, 아무리 외쳐봐도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내 목소리,

대화는 시작과 동시에 그 어떤 말도 산산조각 나서 공중으로 분해되는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결혼생활을 10년째 버티고 있다.


내가 버티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게 버텨지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른 채 10년째 이 자리에 더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서로 마음속에 온전히 자리하지 못하고 튕겨져만 나갔다.

서로 호칭을 부르는 한마디 그 이상은 서로 해가 되는 말 뿐이었다. 사실 글로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 더럽고 수치스럽고 악랄한 말들을 주로 일방적으로 들어왔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몇 안 되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마저 집어삼켰다.

그렇게 우리는 사방에 벽이 막혀 서로에 대한 어떠한 소리도 듣지고 못하고 어떠한 마음도 보지 못했다.


나는 한때 바꾸려 애를 썼고 이해받으려 싸웠고 이해해 보려고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바꿀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고 싸워도 소용없으며 이해하려 해서도 안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은 자기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나르시시스트였다.


이 세상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다는 것들도 사실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뿐.

그 사람에게도 명백한 이유가 있었는데 모르고 10년을 살았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해는 했지만 용서할 순 없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밉다.


남편을 미워할수록 아이들에게 드는 죄책감은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꽤 큰 대가 중 하나다.

나를 해치는 그토록 미운 사람을 아이들의 아빠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는 애써 좋게 포장하고 감싸주려 애쓰는 일, 아이들 앞에선 늘 괜찮은 척 태연하게 감춰내는 것도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남편의 납득 안 되는 행동들에 화가 나고 개선을 바라는 눈곱만큼의 기대가

모두 헛수고였다는 걸 알고 나니 허무했다. 한편으로는 이유가 있음에 차리리 후련했다. 또 한편으론 치료도, 답도 없다는 그 지독한 병에 걸린 당신과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더 숨 막히고 막막해졌다.


매사에 즉흥적이고 침착하지 못해 일단 지르고 보는 나라도 이 사람과 살다 보니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버티거나 벗어나거나 어쨌든 현명한 선택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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